지난해 11월 가석방 후 3개월 만에 첫 해외 출장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첫 목적지로 찾은 곳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삼성 AI(인공지능) 센터였다. 토론토는 이른바 ‘북쪽의 실리콘밸리(the Silicon Valley of the North)’라 불리는 인공지능(AI)의 메카다. 당시 삼성전자 측은 “삼성의 미래 사업에서 AI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뿐 아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SK텔레콤의 미등기 회장직을 맡고 AI 사업을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AI가 기업들의 새로운 핵심 먹거리로 자리 잡으면서 그룹 총수가 미래를 위해 손수 챙기는 모습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EY한영이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319명을 대상으로 올 초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중복 응답)는 앞으로 2년간 디지털 전환을 위해 집중적으로 투자할 분야로 AI를 꼽았다.

①AI포럼에서 발언하는 승현준 삼성리서치 소장. ②세종 스마트시티에서 시험 주행하는 로보셔틀. ③SK텔레콤의 AI 스피커 ‘누구 캔들 SE’. ④AI 아티스트 틸다. /삼성·현대차·SK·LG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AI에 꽂힌 회장님들…”내가 직접 챙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20년 6월 삼성전자의 통합 연구 조직인 삼성리서치 소장으로 임명한 ‘AI 석학’ 세바스찬 승(승현준) 프린스턴대 교수를 2018년 캐나다 출장 당시 직접 영입할 정도로 AI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은 이어 2020년 11월엔 35세 이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상금 3만달러(약 3600만원)와 함께 ‘삼성 AI포럼’에서 강연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AI연구자상’도 제정했다. 작년 말 삼성전자 정기 임원 인사에서도 AI 분야 전문가가 전면에 대거 부상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정의선 회장의 관심 속에 AI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 회장은 올 신년사에서 “그룹이 추구하는 미래 최첨단 상품의 경쟁력은 AI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원천 기술 확보 여부에 달렸다”고 밝히고, AI 부문 투자를 이끌고 있다. 현대차는 작년 8~9월 세종 스마트시티에서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한 수요 응답형 다인승 로보셔틀(RoboShuttle) 시범 서비스를 진행한 데 이어 차량의 각종 기능과 시스템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차세대 인공지능 음성 인식 기술’ 연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1일 새로 회장을 맡은 SK텔레콤의 사내 게시판에 “글로벌 AI 컴퍼니로 혁신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도전을 위한 기회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SK텔레콤의 도전에 함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AI 스피커, 초거대 AI, 스마트 팩토리, AI 반도체, AI 메타버스 등 SK텔레콤의 ‘5대 AI 사업’을 직접 챙길 것으로 보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직접 AI 연구원 설립을 추진할 정도로 AI에 진심이다. 구 회장은 취임 초 열린 회의에서 “배터리·전장 등 10년 먹거리는 있지만, 그다음이 문제”라며 “AI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지난달 14일 열린 ‘2022 가을·겨울 뉴욕패션위크’에서 AI 아티스트 틸다를 선보였다. 대용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옷을 디자인할 수 있는 AI 아티스트다. 앞서 지난해에는 초거대 AI ‘엑사원’을 공개했다.

롯데그룹도 “인공지능과 같은 디지털 기술을 전 비즈니스에 적용해야 한다”는 신동빈 회장의 의지에 따라 2018년 상반기 공개 채용부터 AI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친환경·메타버스 등으로 미래 준비

각 기업은 AI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바탕으로 SMR(소형 모듈 원전),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다. 지난해 SMR 분야 선두 주자인 미국 뉴스케일에 지분을 투자한 데 이어 올 1월 포스코, 사우디아라비아국부펀드(PIF)와 함께 3자 간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그린 수소 생산·활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에서는 풍력·태양광발전 단지도 조성·운용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친환경 톱 티어’ 브랜드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를 위해 전동화 상품의 핵심인 모터, 배터리, 첨단 소재를 비롯한 차세대 분야에서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SK그룹은 그룹 차원의 넷 제로 경영 의지를 보이기 위해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 참여했다. SK에서 친환경 비즈니스에 주력하는 대표 기업인 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 E&S·SK하이닉스·SK에코플랜트 등 6사가 ‘그린 포리스트 파빌리온’이라는 자작나무 등으로 꾸민 전시 부스를 열고, 수소연료전지 파워팩 등 친환경 제품을 전시했다.

지난해 월풀을 꺾고 글로벌 가전 1위 기업에 오른 LG전자는 최근 ‘업(Up) 가전’을 선보였다. 업그레이드를 통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가전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올해 세탁기·건조기·워시타워·얼음정수기 냉장고·식기세척기·에어컨 휘센 타워·공기청정기·수제맥주 제조기 홈브루 등 약 20종에서 업 가전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수소·바이오·UAM(도심 항공 교통)에 더해 메타버스를 차세대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롯데지주 대표와 주요 사업군(HQ) 총괄대표, 사장급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그룹의 주요 현안과 사업을 논의하는 메타버스 회의도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신동빈 회장은 “화성보다 먼저 살아가야 할 메타버스 가상 융합 세상에선 롯데가 기준이 되도록 노력합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