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서 호프집을 하는 이모(40)씨는 1년 전부터 낮에는 무역 회사 서류 업무를 대행하는 회사에서 일한다. 오전 9시 출근했다가 오후 5시 퇴근해 호프집 문을 연다. 코로나 사태로 지난 2년간 이씨의 호프집은 많게는 한 달에 1000만원, 적게는 300만~400만원 손실이 났다. 이씨는 “회사에 나가며 한 달 180만원을 버는 정도지만 그 일이라도 안 하면 직원 월급도 못 줄 형편”이라며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됐지만 여전히 경기가 나아지지 않아 지금도 부업을 계속한다”고 했다.
3일 본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씨처럼 본업 외에 부업을 하는 ‘투잡족’이 지난해 50만6000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다. 5년 전인 2016년(40만9000명)과 비교하면 10만명 가까이 늘었다. 특히 가족 생계를 책임진 가장(家長) 부업자가 33만7000명으로 전체 3분의 2나 됐다.
부업자는 임금 근로자나 자영업자 구분 없이 모두 증가했다. 지난해 투잡 임금 근로자(30만2000명)는 5년 전보다 23.3% 증가했고, 투잡 자영업자(15만7000명)는 37.1% 늘었다. 나머지 4만7000명은 일용직 근로자 등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생업에 큰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잔업이 없어져 월급이 쪼그라든 중소기업 직원들이 모자라는 소득을 메우려고 부업에 뛰어든 현실이 통계로 나타난 것이다.
서울 관악구 코인 노래방 업주 김모(33)씨도 재작년 10월부터 배달을 시작했다. 코인 노래방 16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매출이 크게 감소한 탓이다. 어떻게든 사업을 유지하려고 시작한 배달은 일이 몰리면 하루 18~20시간도 뛰었다. 김씨는 배달비로 한 달 400만원 정도를 받았지만 손실을 감당할 수 없어 매장을 하나하나 접은 끝에 결국 한 곳만 운영하는 처지가 됐다. 부업에 뛰어든 자영업자 중 90%(13만9000명) 정도는 김씨처럼 직원 없이 혼자 일하는 ‘나 홀로 사장님’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정기적으로 월급 받는 임금 근로자가 부업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부업을 하는 임금 근로자는 지난해 30만2000명으로 5년 전보다 5만7000명(23.3%)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7월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 제도가 도입된 후 잔업·특근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주조· 용접 같은 뿌리업종이나 조선 업종 근로자들이 퇴근 후 배달·퀵서비스 같은 부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일감이 떨어진 현대중공업 협력 업체 직원 일부는 주말마다 현대차에서 조립·도장 아르바이트를 한다. 지난해 8월 현대자동차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자 현대중공업이 ‘현대차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직원은 코로나 검사를 실시해 달라’는 안내 메시지를 협력사들에 돌리기도 했다.
연령별로는 20·30대 청년층과 60대 고령층 부업자가 크게 늘었다. 20·30대는 2016년 7만3000명에서 지난해 10만4000명으로 40% 이상 늘었다. 60대 부업자도 7만2000명에서 11만4000명으로 무려 58.3% 늘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층, 안정적인 일자리가 귀한 고령층이 시간제·단기 일자리로 내몰리면서 해당 연령층 부업자가 더 크게 증가한 것이다. 반면 40·50대 부업자는 22만7000명에서 21만4000명으로 소폭 줄었다.
김용춘 전경련 고용정책팀장은 “경직된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수당이 줄어든 근로자, 최저임금 급등으로 부담이 커진 자영업자들이 투잡을 뛰는 경우가 늘었다”며 “새 정부에서는 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노동 정책을 유연하게 하고, 가장들이 투잡을 안 뛰어도 되게끔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