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규모 600억원인 한 중소 제조업체 창업자 A씨는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을 가르치고 있지만 막대한 상속세 부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A씨가 보유한 지분(22%) 가치가 현재 100억원으로 추산되는데 각종 세액공제를 받더라도 42억여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마련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지분 50% 이상(상장회사는 3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 못 해 중소기업 가업상속공제 혜택도 받을 수 없다. A씨는 “자녀들이 상속세를 내려고 지분 상당수를 매각한다면 지분율이 급감해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고 세율 60%에 달하는 상속세가 국내 기업들이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는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예컨대,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못하는 기업의 경우 보유 지분 100%(1000억원)를 물려받은 기업인이 있다고 가정하면, 지분을 팔아 상속세를 내는 과정(실효 세율 적용)에서 지분이 42.5%로 줄고 이를 두 번 더 거치면 지분이 8.4%로 쪼그라든다. 기업들 사이에선 “사업해서 돈 벌었다고 세금을 부과하고, 최대 주주가 사망했다며 또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라고 하니 가업 승계가 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유족이 최근 상속세로 6조원 이상을 신고한 것에 대해서도 “유족이 세금을 내고 지분을 상속받겠다고 해서 다행이지만 만약 상속세 부담 탓에 지분 매각에 나섰다면 중국 자본에 넥슨이 넘어갈 수도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상속세 3번 내면 경영권 잃어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그러나 최대 주주 할증 과세를 더하면 우리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60%로 치솟아 일본을 제치고 1위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OECD 국가들의 평균 상속세 최고 세율은 27.1%인데 한국이 이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 수준의 상속세는 세금 납부를 위해 기업의 존립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수준”이라면서 “일단 기업이 존속해야 고용도 창출하고 세금도 정기적으로 납부하면서 국가에 기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기업인들 사이에선 “상속세가 사실상 이중과세”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근로소득 또는 사업소득으로 매년 세금을 내는데, 기업 경영을 통해 축적한 재산에 대해 최대 주주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소득세 최고 세율(지방세 포함)은 49.5%로 OECD 국가 중 12위에 해당할 만큼 높은 편이다. 일본도 상속세와 소득세가 모두 높지만 상속·증여세 전액 납부 유예 같은 제도를 도입해 가업 승계 시 상속 부담을 덜어준다. 상속세·소득세가 높은 편인 프랑스도 가업 승계 시 사업용 재산에 대해 75%의 세금을 감면해준다. 전경련 관계자는 “한국은 부에 대해 막대한 상속세와 소득세를 중복으로 매겨 징벌적 성격으로 과세를 하는 나라”라면서 “우리처럼 제대로 된 보완책도 없이 상속세를 걷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자본이득세 도입 검토해야
현재 세계적인 추세는 상속세를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식으로 이중과세 논란을 피하고 가업 승계를 지원하는 것이다. 실제 OECD 38국 중 캐나다·호주·오스트리아·뉴질랜드를 포함한 15국이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 중에서도 룩셈부르크·스위스·슬로베니아·헝가리·리투아니아는 직계비속이 상속할 경우에는 상속세를 면제하고 있다.
상속세를 없애고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는 국가들도 있다. 스웨덴이 대표적인 경우다. 스웨덴은 한때 상속세 최고 세율이 70%에 달했지만 이케아를 비롯한 주요 기업이 해외로 이탈할 조짐을 보이자 2005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다. 상속 단계에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향후 상속받은 재산을 처분해 이익을 실현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원활한 가업 승계를 지원할 뿐 아니라 이익 실현에 과세하기 때문에 조세 형평성에도 문제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산업계에서는 창업 2~3세의 상속이 한창 시작되는 시점이라 가업 승계와 맞물린 상속세 논란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상속세율을 대폭 낮추거나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가업 승계의 길을 터줘야 해외 자본에 기업이 넘어가는 일을 막고 일자리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