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가 37억7000만달러(약 5조43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4월부터 6개월 연속 적자로, 우리 경제가 반년 이상 연속 무역적자를 낸 것은 IMF 외환 위기 전인 1997년 5월 이후 25년 만이다. 특히 올 들어 대규모 무역적자 와중에 선방하던 수출마저 증가세가 빠르게 둔화되며 적신호가 켜졌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무역수지보다 수출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픽=김성규

◇수출 15대 품목 중 10개 감소…나머지도 전망 밝지 않아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9월 수출은 2.8% 증가한 574억6000만달러, 수입은 18.6% 증가한 612억3000만달러였다. 대규모 에너지 수입 탓에 수입은 7개월 연속 600억달러대를 기록했다. 특히 3대 에너지원인 원유·가스·석탄 수입액이 179억6000만달러로 작년 9월(99억1000만달러)보다 무려 81.2%(80억5000만달러)가 늘며 무역적자의 주요인으로 꼽혔다. 다만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유지한다면 에너지 수입에 따른 적자 폭은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수출은 대외 악조건 속에서도 2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증가율은 2.8%에 그쳤다. 코로나 팬데믹 쇼크가 덮쳤던 2020년 10월(-3.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수출이 두 달 연속 570억달러 안팎에 그치면서 수출이 연내 역성장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품목별로는 지난 8월 26개월 만에 역성장(-7.8%)했던 반도체 수출이 9월에도 전년 동월 대비 5.7% 감소했다. 컴퓨터(-23.6%), 디스플레이(-19.9%), 가전(-8.2%), 무선통신기기(-7%) 같은 ICT(정보통신기술) 수출도 줄줄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전통 제조 부문에선 철강(-21.1%)이 미국과 중국, EU(유럽연합)의 수요가 감소한 데다 태풍 피해 여파까지 겹쳐 21개월 만에 감소했다. 석유화학(-15.1%)도 6월 이후 4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수출이 증가한 품목은 에너지 가격 급등 효과가 큰 석유제품(52.7%), 강달러 수혜를 입은 자동차(34.7%), 자동차부품(8.7%), 이차전지(30.4%), 선박(15.5%)뿐이었다.

◇대중 흑자 돌아섰지만, 수출은 여전히 마이너스

지역별로는 대미 수출만 16% 증가했을 뿐 중국(-6.5%), CIS(-29.9%), EU(-0.7%)가 모두 부진했다. 대중 수출은 석유화학(-13.7%), 철강(-13.1%), 일반기계(-33.1%) 같은 중간재를 중심으로 급감했지만 대중 무역 수지는 5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7, 8월 140억달러에 육박했던 대중 수입액이 반도체·일반기계·컴퓨터를 중심으로 감소하며 127억달러에 그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무역수지 자체보다는 수출을 신경 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우리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 경기가 둔화하면서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가 수요 감소에 시달리고 글로벌 경기도 둔화하고 있다”며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수입이 더 큰 폭으로 감소해 무역수지 자체는 흑자가 되는 ‘불황형 흑자’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도 “미국 주도의 중국 배제 공급망 구축이 본격화되면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수출이 더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무역 적자 규모가 480억달러에 달하며 역대 최대 규모였던 1996년 206억달러의 2.3배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