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17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방한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겸 총리를 영접하고 있다. /총리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방한에 맞춰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에 수십조원에 이르는 사업 협력이 추진된다. 양국 정부와 기업들은 사우디 정부가 석유 중심 경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추진하는 초대형 신도시 사업인 ‘네옴시티’ 관련 철도·주택 프로젝트를 비롯해 화학, 수소, 건설 분야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투자·업무협약(MOU)을 체결한다. 양국 협력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한국은 1970년대 중동붐에 버금가는 대규모 사업 수주가 성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네옴시티에는 총 5000억달러(약 662조원)가 투자될 전망이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사우디 투자부와 우리 주요 기업들은 17일 총 21건에 달하는 MOU를 맺는다. 이 가운데 4건은 우리 기업과 사우디 투자부 간, 나머지 17건은 국내 공기업 및 대기업과 사우디 기업 간에 체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마다 규모는 조(兆) 단위로 알려졌다.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에쓰오일 본사 건물에 오는 17일 방한 예정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환영하는 사진이 걸려있다./연합뉴스

현대차그룹 계열 철도차량 전문업체 현대로템은 사우디 투자부와 고속철·전동차·전기 기관차 구매 계약 및 현지 공장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한다. 사우디와 수소기관차를 공동 개발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현대로템이 사우디 고속철을 수주하게 되면, 국산 고속철의 첫 해외 판매 성과로 기록될 전망이다. 고속철 사업 규모는 2조5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인 수준의 시공·운영 능력을 갖춘 석유화학 분야도 협력을 강화한다. 롯데정밀화학은 사우디 투자부와 화학분야 협력 MOU를 맺고 현지에 공장을 건설한다. 롯데정밀화학 관계자는 “고부가 정밀화학 제품 공장을 사우디에 짓고 사우디를 중심으로 유럽과 중동 지역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DL그룹(옛 대림그룹)의 석유화학 부문 계열사 DL케미칼도 석유화학 기업들과 공동으로 사우디 투자부와 화학 사업 추진을 위한 MOU를 맺는다.

차세대 에너지로 꼽히는 수소 분야에서는 삼성물산과 한국전력, 포스코, 한국남부발전, 한국석유공사가 사우디 국부펀드 PIF와 자금 조달 관련 협약을 맺고 그린수소·암모니아 사업에 나선다. 사우디 홍해 연안 40만㎡ 부지에 그린수소·암모니아 공장을 지어 20년간 운영하는 사업으로, 총 사업 규모가 65억달러(약 8조5000억원)에 이른다. 2025년부터 2029년까지 공장을 짓고 연간 120만t을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수소는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로 물을 분해해 얻어낸 친환경 수소로 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부국인 사우디가 미래 산업으로 추진하는 분야다. 국내 기업들은 컨소시엄을 구성, PIF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력은 이와는 별개로 사우디 민간 발전업체 ACWA전력과 수소협력 MOU를 맺고 네옴시티에 그린수소·암모니아 프로젝트 공장 건설을 추진한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17일 방한에 맞춰, 국내 주요 기업과 사우디 정부·기업 간 대규모 사업 협력이 추진된다. 사진은 지난 15일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빈 살만 왕세자의 모습. /EPA 연합뉴스

건설 분야에서는 삼성물산이 PIF와 협약을 맺고 네옴시티에 40억달러(약 5조3000억원) 규모 모듈러 주택 1만가구를 짓는 사업을 수주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건설은 사우디 건설사인 알파나르와 향후 오일·가스 관련 사업에서 포괄적으로 협력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농업 분야 협력도 이뤄질 전망이다. 코오롱은 현지 업체와 스마트팜 합작법인 설립과 관련한 MOU를 맺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에 기획됐던 양국 간 사업들도 빈 살만 왕세자 방한을 계기로 더욱 구체화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올 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계약한 1조원 규모 주조·단조 공장 EPC(설계·시공·조달) 사업 추진과 관련해 MOU를 맺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16일 오후 알 이브라힘 사우디 경제기획부 장관이 두산에너빌리티를 비롯해 국내 기업들을 만나 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사우디와 MOU 체결하는 한국기업

사우디 국영 아람코의 자회사인 에쓰오일은 그동안 울산 산업단지에서 추진해온 석유화학 2단계 사업인 ‘샤힌(shaheen·매) 프로젝트’ 투자 계획을 확정하고, 현대건설 등 국내 업체와 EPC 계약을 맺는다. 투자액이 7조~8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사업이다. 2019년 빈 살만 왕세자 방한 당시 구축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이번 방한을 계기로 투자를 확정하는 것이다. 에쓰오일은 지난달 3분기 실적 발표 당시 “2030년까지 석유화학 비율을 25%까지 성장시키기 위해 나프타 등을 활용하는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방산·바이오 등 분야에서도 협력이 가시화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