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지난해 6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유럽 출장을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회사. 지난 17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네덜란드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이 회사의 대중 수출 규제가 핵심 의제일 정도로 국가안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업체.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려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회사’로 평가받는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이다.
이 업체는 미세공정에 필요한 EUV 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한다. EUV 장비란 극자외선(Extreme Ultraviolet)을 활용해 미세한 반도체 회로 패턴을 그리는 장비로 7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이다. 삼성전자와 TSMC가 초미세 공정 기술력을 갖기 위해서는 ASML에서 더 많은 EUV 장비를 확보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ASML은 ‘수퍼 을’로 불린다.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 장비는 대당 가격이 2000억원에 달한다. 총 10만개의 부품, 3000개의 케이블, 4만개의 볼트가 들어간다. 기술적으로 초고난도이기 때문에 ASML도 1년에 40여 대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반도체 업체들은 이 40여 대의 장비를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인다. EUV 장비를 얼마큼 차지하느냐에 따라 파운드리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이 바뀐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TSMC의 EUV 장비를 100여 대 갖고 있고, 삼성전자는 그 절반 수준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EUV 장비는 현재 주문해도 2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최근엔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하고, 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도 미세공정을 도입하면서 EUV 장비에 대한 수요는 더 커졌다. ASML은 최근 기존 EUV 장비보다 해상력을 높여 더 미세한 회로를 새길 수 있는 ‘하이 뉴메리컬어퍼처(High NA) EUV’ 장비를 개발했는데, 이 장비의 연간 판매량은 10대가 안 된다. 대당 4000억원 수준인 이 기계를 확보하기 위해 TSMC, 삼성전자, 인텔까지 발 벗고 나섰고 장비 확보 소식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