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그룹이 ‘부산 공장 전기차’ 전환을 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때 철수설까지 났던 부산 공장을 1조원 가까이 투자해 연산 20만대 전기차 공장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중에서도 꼭 필요한 ‘K배터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완성차 기업과 배터리 기업은 갑을 관계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입니다. 고성능 배터리가 전기차 성능을 좌우하기 때문에 완성차 기업은 배터리 확보가 필수적이며 때로는 배터리 기업이 ‘갑’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3사가 있는 한국에서 르노가 정작 배터리 조달이 문제라니 좀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부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LG엔솔(충북 오창), SK온(충남 서산), 삼성SDI(울산)의 배터리 공장이 있지만, 3사 국내 공장의 현재 생산능력(약 42GWh)은 이미 대부분 계약된 물량이라 르노 공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르노가 연간 20만대를 생산하려면 대략 고전압 배터리 20GWh(기가와트시)가 필요한데 말이죠.

박형준 부산시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지난 6월 20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르노그룹 본사에서 귀도 학 르노그룹 부회장(왼쪽 끝)과 면담하고 투자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르노그룹은 르노코리아자동차 부산공장에 연간 20만대 규모 전기차 생산설비 구축을 추진하지만 배터리 수급 문제가 관건으로 남아있다. /부산시

배터리 업계에선 “20GWh는 절대 적은 물량은 아니다”라면서도 “국내 증설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수조원대 인센티브를 쏟아내는 해외 경쟁 국가 대비 국내에서 공장 증설의 인센티브는 부족한 데다 높은 인건비, 비싼 공사 비용 등으로 가격 경쟁력을 맞추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터리 수급이 불안한 르노는 국무총리실과 부산시를 상대로 배터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르노의 부산 전기차 공장이 실현되면 외국계 완성차 기업이 국내에 전기차 설비 공장을 짓는 첫 사례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K배터리 이슈로 자칫 르노의 투자 자체가 무산될 우려도 있습니다. 정작 ‘K배터리 공장’ 없는 배터리 강국 한국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인센티브 전략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