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뉴스1

SK그룹이 오는 7일 단행하는 연말 인사에서 최창원(59)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SK그룹 2인자인 ‘수펙스추구협의회(이하 수펙스)’ 의장으로 선임하는 안을 유력하게 진행 중인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최창원 부회장은 고 최종건 SK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최종건 창업주 사망 이후 동생 최종현 회장이 그룹을 이어받았다가 장남 최태원 회장이 경영을 해왔다. 이후 최종건 창업주의 자녀들인 최신원·최창원 부회장은 각각 SK네트웍스, SK디스커버리를 사실상 분할해 경영해 왔다. 그러나 법적 계열 분리 이전에 최창원 부회장을 그룹 총괄 협의체 의장으로 선임하기로 하면서 SK그룹에 대한 ‘사촌 경영’ 체제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은 진중한 성격의 최창원 부회장에 대한 신임이 두텁다”며 “내년 64세로, 아직 자녀들이 어린 최태원 회장이 친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뿐 아니라 사촌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을 승계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인사에서 최태원 SK 회장의 핵심 참모 역할을 하는 조대식 수펙스 의장,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 부회장 4명은 명예직 등을 맡아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퇴진할 것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부회장의 유임설은 여전히 흘러나온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영 환경과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오너 일가의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경영진 세대교체로 조직 쇄신을 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철원

오는 7일 SK그룹 인사에서 창업주의 아들인 최창원 부회장이 그룹 2인자 자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등판하는 것은 ‘SK그룹의 형제 경영’ 전통이 ‘사촌 경영’으로 계승된다는 의미가 있다. 1953년 선경직물을 창업한 최종건 회장은 무역·정유화학으로 사업을 넓히면서 1962년 미국 유학을 다녀온 동생 최종현 회장을 경영에 합류시켜 ‘형제 경영’을 해왔다. 1973년 최 창업주가 47세에 폐암으로 별세하면서 동생인 최종현 회장에게 회사 경영을 넘겼다. 최종현 회장은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 계열화’를 추진하며 1980년 유공을 인수하고, 1990년대 통신 사업에 진출하며 SK그룹의 사세를 키웠다. 1998년 최종현 회장도 형과 같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차기 회장에 대한 유언을 남기지는 않았다. 이때 최종건 창업주 자녀들을 포함한 최씨 일가가 모여 최종현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회장은 훗날인 2018년, “20년간 갈등 없이 지지해 준 가족들에게 고맙다”며 SK㈜ 주식 4.68%(329만주)를 큰아버지 자녀들을 포함한 가족 23명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최창원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생각이 깊은 워커홀릭으로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최태원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창원 부회장은 처음에 의장직을 고사했지만, 설득 끝에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최창원 부회장은 서울대 심리학과,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선경그룹 경영기획실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SK케미칼·SK글로벌·SK건설·SK가스 사업에 주요 임원으로 참여했고, 현재는 SK케미칼·SK가스·SK바이오사이언스 등을 거느린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64년생으로, 최태원 회장(1960년생)보다 네 살 적고, 최재원 수석부회장(1963년생)보다는 한 살 아래다. 최태원 회장은 지주사인 SK㈜의 최대 주주(지분율 17.73%)이고, 최창원 부회장은 중간 지주사인 SK디스커버리의 최대 주주(40.18%)다.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SK㈜ 지분이 0.37%에 불과하다. 최태원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으며, 자녀들의 나이는 34세(최윤정), 32세(최민정), 28세(최인근)다.

한편 SK그룹은 조대식 현 수펙스 의장을 포함해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 그룹의 사령부와 각 핵심 사업부를 맡아 이끌고 있던 참모 4명이 동시에 물러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16년 말 당시 50대의 ‘젊은 참모’들로 대거 승진 발령을 받아 지금까지 최태원 회장을 보좌해 왔다. 이번에 7년 만에 60대 중반의 나이로 일제히 일선에서 물러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이들의 퇴진으로 생기는 자리는 모두 올해 기준 50대들이 메울 것으로 보인다. 수펙스 의장은 최창원 부회장(59)이, SK하이닉스는 곽노정(58) 각자 대표가 단독체제로, SK이노베이션은 박상규(59) 현 SK엔무브 사장이, SK㈜ 대표는 장용호(59) SK실트론 사장이 맡는 식이다.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60) 수석 부회장은 현재 배터리 사업(SK온)에 국한돼 있던 역할을 확대해, SK이노베이션 사업을 총괄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일부 부회장단만 먼저 퇴진하는 점진적인 쇄신도 거론됐으나, 다수 부회장이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주자는 의지가 강한 데다, 최근 경영 실적 부진을 감안한 것 같다”고 말했다. SK는 신규 부회장 승진은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 SK 수펙스협의회와 지주사인 SK㈜의 투자 기능을 크게 축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계열사들의 투자 역할과 중복되는 데다, 최근 투자 실적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