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5일 한화로보틱스 판교 본사를 찾아 로봇 기술 현황을 점검했다. 김 회장은 방명록에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인류의 지속 가능한 내일을 만들어갑시다”라고 썼다. 김 회장은 또 MZ세대 직원들과 1시간 동안 ‘햄버거 미팅’을 하며 격려했다. 이 자리에서 직원들 요청에 단체 셀카를 찍고, 사인도 해줬다고 한다. 김 회장의 삼남 김동선 한화로보틱스 전략총괄 부사장도 참석했다. 김 회장은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대전에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R&D 센터를 찾았다. 5년 4개월 만의 사업장 방문이었다. 같은 날에는 대전 야구장을 찾아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류현진의 홈 개막전을 지켜봤다. 당시 경기에 앞서 ‘(김승연) 회장님 등판’ 키워드가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날은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함께했다.
최근 한화가 재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수년간 건강이 좋지 않아 모습을 보이지 않던 김 회장의 활동 재개와 함께 한화그룹이 활발하게 사업 구조 재편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는 ‘방산, 우주·항공, 화학·에너지’를 3대 축으로 그룹 핵심 사업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는데 김 회장이 이를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관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세 아들의 사업 영역이 더 명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산·우주 항공이 핵심
한화는 지난 3일 ‘계열사 간 스몰딜’ 추진을 발표했다. 한화오션에 ㈜한화의 해상 풍력·플랜트 사업을, 한화솔루션에 ㈜한화의 태양광 장비 사업을 넘기는 내용이다. 그룹의 정점에 있는 ㈜한화의 지주사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한화오션(에너지 사업)과 한화솔루션(태양광)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한화는 지난 2020년부터 본격적인 사업 구조 개편을 진행해 왔는데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고 있다. 2020년 한화솔루션은 한화큐셀을 인수하면서 화학·에너지 중심 회사로 개편했고, 2022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의 방산 사업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방산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김동관 부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우주·항공 사업을 새 먹거리로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방산·우주 항공·화학 에너지 3대 축을 중심으로 한 사업 구조 재편이 이뤄졌다.
3대 축의 핵심 회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솔루션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베스트셀러 K9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천무를 폴란드·사우디 등에 대규모 수출하는 계약을 맺으며 ‘K방산’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최대 주주로 참여하면서 함정 사업을 방산의 한 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최근 한화오션은 글로벌 방산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미 해군에 함정을 공급하는 호주 기업 ‘오스탈’을 9000억원에 인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는 또 우주 항공 사업을 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항공 엔진 사업을 주로 하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1년 국내 유일 위성 제조 기술 기업인 쎄트렉아이를 인수하면서 위성 제조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또 지난달 한국형 ‘차세대 우주 발사체’ 단독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한국판 ‘스페이스 X’를 꿈꾸고 있다. 한화는 항우연과 2032년 달 착륙선을 보낸다는 계획이다.
◇세 아들 영역 명확해져
지난 5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사회에서 자회사인 한화비전(CCTV 사업)과 한화정밀기계(반도체 장비 사업)를 떼어내기로 했다. 한화에어로가 공을 들이는 방산·우주 항공 사업에 선택과 집중하기 위해서다. 떼어낸 회사들은 앞으로 삼남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유통·호텔(갤러리아·호텔앤리조트) 사업만 주도했던 김 부사장이 지난해 10월 한화로보틱스 전략총괄 자리를 맡은 데 이어, CCTV와 반도체 장비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은 이미 한화생명을 주축으로 한 금융 계열사를 맡아 경영해 오고 있다.
지난 5년여간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 건강이 좋지 않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김 회장은 최근 적극적인 경영 활동에 나서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2주에 한 번꼴로 회사에 출근했던 김승연 회장이 최근엔 일주일에 2회 이상 출근하며 사업을 챙기고 있다”며 “최근 컨디션이 회복되자, 앞으로 그룹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사업 구조의 큰 그림을 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