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와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해외에서 수조원대 수주가 잇따르며 훈풍이 불었던 원전 업계 분위기가 최근 180도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계엄과 탄핵 정국 속에서 ‘탈(脫)탈원전’ 흐름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입니다. 고준위특별법 등 원전 생태계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가 아직 다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2038년까지 새로 지을 원전을 4기에서 3기로 줄이는 안(案)을 마련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원자력 업계에서는 “겨우 살아나는 듯했던 원전 생태계가 다시 주저앉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옵니다.

지난달 울산 울주군 새울 원자력발전소 모습. /뉴시스

특히 중소·중견 기업들의 ​고통이 큽니다. 경남 창원의 한 원전 협력사 대표는 8일 통화에서 “작년에 공장 설비도 새로 바꾸고 직원도 새로 채용하면서 돌파구를 찾은 줄 알았는데, 그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또 “탈원전 당시 매일 밤잠을 설쳤다”며 “이미 완공했어야 할 신한울 3·4호기 부품도 최근에야 제작에 들어갔는데…”라고도 했습니다. 탈원전 당시 불황을 버티지 못한 많은 협력사가 조선과 플랜트 업계로 이탈했는데, 이번에 또 정책이 바뀌면 업계 자체가 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그런데 지난달 정치권에서는 난데없이 원전 건설 허가 전에 주기기를 미리 만들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주기기를 미리 주문해두면 원전 허가나 심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취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원자력 업계에서는 “제작에 5년 넘게 걸리는 원전 주기기는 건설 전 미리 발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원전 건설을 막는 법이나 다름없다”고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교수·연구자 단체인 한국원자력학회는 물론,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들도 “원전 업계를 도산으로 몰고 갈 악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AI(인공지능)와 전기차 확산 등으로 전력 수요가 폭발하며 ‘원전 르네상스’는 세계적 흐름이 돼가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전력 인프라뿐 아니라 국가 산업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백년지대계’만큼 깊은 고민과 우직함이 필요한 에너지 정책이 정치적 논리에 따라 다시 흔들리지 않도록 정치권과 업계가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