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확대 등을 바탕으로 급성장 중인 세계 원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한·미 양국의 ‘원전 동맹’ 체계 구축이 마무리됐다. 17일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일제히 보도자료를 내고 “한·미 양측이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지난 8일(현지 시각) 양국 정부가 ‘원자력 수출·협력 약정(MOU)’을 맺은 지 일주일여 만에 기업 간 상업 협정도 마무리된 것이다.
한·미 양국의 원자력 협력이 과거 모습을 되찾으면서 3월로 다가온 24조원 규모 체코 신규 원전 본계약은 물론, 유럽과 중동 등 앞으로 예상되는 추가 원전 수주전에서도 시너지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 에너지부는 이날 내놓은 성명에서 “수천억 달러 규모 원전 협력에 기반을 닦는 성과”라고 이번 기업 간 협정의 의미를 평가했다.
◇‘팀 코러스’로 뭉친 한미… 1000조원 원전 시장서 中·러·프랑스와 4파전
이번 한미 원전 동맹을 계기로 향후 10년간 시장 규모가 1000조원(미 상무부 추산)에 이르는 세계 원전 시장에서 한·미 양국이 힘을 합쳐,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과 본격적인 4파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수천억 달러 시장 공략”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은 이날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지재권 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고,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 웨스팅하우스도 같은 시각 홈페이지에 “한전·한수원과 ‘글로벌 합의 협정(Global Settlement Agreement)’을 체결했다”면서 “한전·한수원과 협력해 현재 진행 중인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1957년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전을 개발한 웨스팅하우스는 미 해군 원자력 잠수함 제조에도 참여한 ‘원자력 발전의 선구자’로 불린다. 우리나라와도 1978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 건설을 주도하며 인연을 맺은 이래로 수십 년간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체코 신규 원전 수주전에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자 2022년 10월 지재권 소송을 제기하고, 이후 계속해서 K원전에 딴지를 걸며 갈등을 빚어왔다.
이번 합의가 양측이 지난 수십 년간의 전통적 협력 관계를 복원하는 데서 나아가 세계 원전 시장을 ‘환상의 복식조’로 공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양측의 협정은 앞으로 수천억 달러 규모의 협력 프로젝트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안보의 대두 및 AI(인공지능)의 확산 속에 세계 각국이 일제히 원전 건설로 정책 방향을 전환한 가운데 양국이 1000조원 규모 세계 원전 시장 공동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는 것이다. 미 상무부와 에너지부가 추산하는 향후 10년간 세계 원전 시장 규모는 5000억~7400억달러(1080조원)에 달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오는 2050년 세계 원전 설비 용량은 2023년(371.5GW)의 2.5배 규모인 950GW(기가와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동맹으로 佛, 러, 中 대응
각기 장점이 뚜렷한 한·미가 손을 잡음으로써 러시아와 중국이 휩쓰는 세계 원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전 세계에서 공사를 시작한 원전 52개 가운데 48개는 러시아와 중국 모델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서방 세계가 탈원전에 몸살을 앓으면서 세계 원전 시장이 러시아와 중국의 무대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원전 생태계 복원’에 성공하면서 미국과 ‘원팀’을 이루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에서 원전 28기를 건설, 운영하며 쌓은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 능력은 어느 나라도 쫓아오지 못하는 한국만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원전 건설 단가는 kWh(킬로와트시)당 3571달러로 7931달러에 이르는 프랑스는 물론 중국(4174달러)보다도 낮다. 체코 원전 수주전 당시 한계로 지적됐던 해외 인지도 등도 웨스팅하우스와 협력을 통해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이 유럽 시장 진출을 주도한다고 알려진 것을 두고 우리 업계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비밀 유지 협약에 따라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두고도 비판이 제기된다.
노동석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센터장은 “한미가 힘을 합쳐 코러스(KORUS·Korea+US) 협력에 나서면 기술력과 자본력은 물론 외교력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