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미국산 석유와 가스 공급을 늘리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유럽을 중심으로 ‘에너지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유럽은 LNG(액화천연가스)의 절반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자칫 에너지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커지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21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위협과 미국의 에너지 비상사태 등에 맞설 대안으로 ‘에너지 독립(energy independence)’을 꺼내 들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이 실질적인 에너지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며 “러시아에서 가스를 계속 구매하면서 미국의 안전 보장과 도움, 지원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에너지 수출 공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같은 포럼에서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에 미국산 LNG를 안전하게 공급하는 데 확실히 동의한다”며 유럽을 향한 LNG 공급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에서의 에너지 패권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에너지 독립’을 주장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거리를 두면서도 가스를 조달할 대체 국가까지 찾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5일 “아제르바이잔에서 유럽으로 가스를 운송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의 협의 내용을 소개하며 “(아제르바이잔은) 가스를 250억㎥까지 수출할 수 있다”며 “유럽 국가들이 가스를 필요로 할 경우 우크라이나 국내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유럽의 LNG 수입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거리를 두고는 있지만 미국의 영향력도 일부 견제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현재 유럽의 LNG 수입 1위는 미국이다. 2021년 27%, 2022년 44%, 2023년 48%까지 오르며 3년 연속 유럽의 최대 LNG 수입국이 됐다. 일각에서는 자칫 미국의 석유·가스 수출이 크게 늘면 유럽 내에서 대미(對美)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