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국영 시마조선소 엔지니어들이 지난 14일 울산시 동구 HD현대중공업 조선소를 방문해 선박 건조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모습. 이들은 지난 24일까지 울산에 머물며 HD현대중공업의 페루 군함 수출 관련 기술 교육을 받았다. 페루 엔지니어들은 “거대한 조선소 내부가 어느 곳이든 정돈된 모습일 뿐 아니라, 모든 작업이 계획대로 이뤄지는 게 매우 인상적”이라고 했다고 한다. /HD현대중공업

지난 20일 울산대 조선해양공학관 강의실에서 특별한 수업이 진행됐다. 지구 반대편 페루에서 한국 울산까지 1만6000km를 날아온 12명의 수강생을 위한 특강이었다. 이들은 한국의 조선업 기술을 배우러 온 페루 국영 시마조선소 소속의 베테랑 엔지니어들이었다. 페루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천(김포)을 거쳐 울산까지 오는 데만 비행기를 3번 탔다. 평균 경력 20년 이상인 중년의 수강생들이었지만, 수업에 대한 열의는 여느 대학생 못지않았다. 한 수강생은 영어와 스페인어 통역으로 진행된 강의를 1초도 빠지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모두 녹화했다. 쉬는 시간에도 “소나(sonar·음파탐지기)가 선박 엔진 소음과 적함(敵艦)의 소리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이날 교육은 HD현대중공업이 울산대와 함께 지난 13~24일 진행한 페루 시마조선소 엔지니어를 위한 조선해양공학 기초 교육 과정의 하나였다. HD현대중공업이 작년 페루에 호위함 등 함정 4척을 수출하기로 계약하면서 후속으로 이뤄진 기술 이전 교육이다. 오전 강의는 조상래 울산대 명예교수(전 대한조선학회장)의 ‘선박 구조 설계’였다. 오후에는 유정수 교수의 ‘선박 진동 소음’ 강의가 이어졌다. 이날 강의한 교수들은 “해외 엔지니어들 상대 교육은 처음이었다”며 “하나라도 더 배워 가려는 열의가 뜨거웠다”고 했다.

수강생 중 한 명인 마리오 알로르 시마조선소 부사장은 “페루 엔지니어들은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이곳에 왔다”며 “페루 조선업은 ‘제로(0)’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데 단순히 한국에서 배만 사 오는 게 아니라, 세계 1위 기술을 보유한 한국을 롤모델로 삼아 언젠가는 중남미 조선업 선도 국가로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기술 배우려면 한국이 1등 파트너”

울산대에서는 기초 설계 등 이론 교육, HD현대중공업에서는 실무 교육 위주로 진행했다. 포스코(선박용 철강), STX엔진(선박용 엔진) 등 한국 조선업 생태계도 둘러봤다. 시마조선소 설계 담당 콜란테스 디아즈 마누엘씨는 “라틴아메리카나 유럽 국가들은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게 비일비재한데 한국에 오니 어디서든 시간 약속을 철저히 잘 지키더라”며 “이 차이가 한국의 고품질, 적기 인도의 비결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시마조선소 설계팀장을 맡고 있는 몬타노 감보아 웬델씨는 “선박 건조 기간이 굉장히 짧은데도 선주(船主)의 요구 사항에 대해 빠른 개선과 피드백이 이뤄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노후 군함 교체, 신형 잠수함 도입을 추진하는 페루 해군은 ‘파트너’를 신중히 골랐다. 알로르 부사장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세계 유수 조선소를 모두 검토했고, ‘세계 1위 조선소’ 한국을 택했다”고 했다. HD현대중공업과 시마조선소는 지난 10일 페루 현지에서 호위함 등 함정 4척 착공식을 열고 건조를 시작해 2026년부터 차례로 페루 해군에 인도할 예정이다.

◇사우디·미국·필리핀·싱가포르 거점 확대

한국 조선업의 해외 진출은 최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사우디 정부와 합작으로 약 5조원을 투자한 중동 최대 규모 사우디 IMI조선소는 현재 일부 시범 운영을 거쳐 연내에 최종 준공할 예정이다.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부지에선 필리핀에 수출한 군함 유지·보수·정비뿐 아니라 선박 블록 제작, 해양플랜트 설비 제작으로 사업을 확대한다. 한화오션도 미국 필리조선소, 싱가포르 해양 설비 회사 다이나맥을 인수해 현지 거점을 확대했다.

자료=각 사,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이번 페루 엔지니어 교육을 총괄한 유영준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교수는 “필리핀 등 동남아 시장과 중남미 시장으로 한국 군함 수출이 확대될수록 기술 이전 교육도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했다. 현지 기술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국내와 같은 품질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