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차기 대선 준비 핵심 기구로 띄운 기본사회위원회 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이재명 대표의 핵심 브랜드인 기본 소득 공약 실현을 위해 지난 11월 출범시킨 당대표 직속 기구다. 이 대표는 이날 당론으로 내세운 ‘전(全) 국민 25만원 지원금’ 주장도 추경 편성을 위해 철회하겠다고 했고, 초당적 협조를 통한 연금 개혁도 추진하자고 했다.

민주당 김성회 대변인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 직후 “이 대표가 기본사회위원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며 “계엄 이후에 망가진 경제를 살리고 회복하는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한 만큼 이를 기준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 대표의 이런 급격한 ‘우클릭’은 조기 대선을 예상해 중도층 공략을 위해 민생 회복과 실용주의를 우선하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 대표 측은 “지난 대선에서 0.73%p 차로 패배한 데는 중도층 민심을 못 잡은 측면이 크지 않으냐”며 “지지층 반발이 강하지만 뚫고 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오는 3일에는 반도체특별법의 주요 쟁점인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화이트칼라 이그잼션)과 관련한 정책 토론회를 직접 주재할 예정이다. ‘주 52시간 근무 예외’는 민주당 주요 지지 기반인 노동계 등의 반발이 있지만 이 대표가 전향적 입장을 밝힐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이철원

◇”여야 이견 없는 민생법부터 처리를… 李 변신, 행동으로 보여달라”

이 같은 이재명 대표의 ‘변신’에 산업계에서는 “환영한다”는 반응과 함께,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할 때”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재계에서는 “21대 국회서 합의한 것이 정쟁으로 아직도 통과 안되는 법안이 즐비한 현실에서 더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면서 “제발 법 통과라는 실질적인 조치를 해달라”고 읍소했다.

5~6년 뒤 전력 대란 가능성에 대비하는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나 고준위 특별법은 2021년 처음 발의돼 21대 국회인 작년 여야가 합의했는데도 아직도 국회 통과가 안 되고 있다. 기업 투자에 대해 1조1000억원 안팎 규모 세제 지원을 1년 더 연장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은 여야 의원 여럿이 발의하고 정부도 5차례나 약속했지만, 지난해 말 탄핵소추 국면에서 국회 본회의에 상정도 되지 못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말을 믿고 투자했지만 국회가 법을 통과시켜주지 않아 세제 혜택을 못 받고 있는 황당한 일을 겪고 있는 셈이다.

재계에서는 특히 여야 간 이견이 없어 통과가 손쉬운 법안은 서둘러 달라는 입장이다. 앞으로 몇 개월 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가 끝나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다시 수개월 이상 정쟁과 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지금 기회 놓치면 경제 문제 장기화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따르면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가 기업들에 대한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연장하는 방안이다. 이 제도는 기업이 최근 3년간의 평균 투자액을 초과하는 투자액에 대해 최대 10%를 추가 세액공제 해주는 제도다. 2023년 말 일몰됐다. 여야 의원들은 작년 이 제도를 다시 도입하는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정부도 5차례 일몰 시한 연장을 약속했다. 그러나 작년 12월 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 속 외면당하며 국회 본회의에 상정도 되지 못했다. 이 제도가 유지될 것으로 믿고 작년 투자에 나섰던 중소기업들은 최근 고환율과 내수 침체 등으로 불확실성이 큰 상황 속에서 이 법안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국민 일상의 필수인 전력망 확충 특별법의 경우 21대 국회에서 여야 지도부가 합의했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 한국전력이 관리해오던 전력망 구축을 정부가 주도하고 인허가 절차나 민간 보상안을 개선하는 게 골자다. 전력망 구축에 2036년까지 56조원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현재 이 업무를 맡은 한전은 전기 요금 동결 등으로 부채가 200조원에 달해 투자 여력이 작다. 송전망 설치를 두고 발생한 지역 갈등 해결도 역부족이다. 이 문제를 방치할 경우 수년 뒤 전력 대란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원자력 발전소 가동에 따라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도 21대 국회에서 이미 여야 합의가 됐는데 22대 국회로 넘긴 사안이다. 공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한울 원전, 고리 원전이 차례로 문을 닫아야 한다. 전력 대란을 더 키우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을 위한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 개정안도 시급하다. 현행법상 외국인 근로자는 최장 4년 10개월까지만 국내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숙련 근로자의 경우 사업주 동의를 받아 출국 후 재입국 조건 없이 체류 기간을 연장해 지속적으로 일하게 지원하는 내용이다.

◇”쟁점 법안도 논의 시작해야”

재계에선 주요 기업들의 생존에 영향을 주는 법안들은 여야가 이견이 있더라도 이번 기회에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주 52시간 적용 예외 조항이다. 현재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을 주 52시간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을 두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필수라고 보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해 “실용적, 전향적으로 판단하겠다”고 한 만큼, 향후 전향적인 입장이 나온다면 주 52시간제 예외를 포함한 각종 쟁점 법안 논의가 물꼬를 틀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재계에선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도 큰 관심사다. 노조가 불법을 저질러도 손해 배상을 면제해주는 내용으로, 경제 6단체는 공동 성명서에서 “불법 쟁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해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미래 세대의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악법”이라고 호소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은 시행 3년이 된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소규모 중소기업에 부담이 큰 데다 법률도 모호해 기업 혼란을 키우고, 산재 예방에도 효과적이지 못해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