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의 한 고용복지플러스 센터 일자리 정보 게시판 앞에서 한 시민이 실업 및 취업 관련 게시판을 확인하고 있다./연합뉴스

LG그룹 주력 계열사 중 한 곳인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022년 하반기 이후 대졸 신입 사원 채용을 대폭 줄였다. 글로벌 시장의 수요 침체와 저가 제품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 탓에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최근엔 신규 채용은커녕 있는 인원도 줄고 있다. 기업 분석 연구소 CEO스코어가 국민연금 가입자 수를 통해 주요 기업의 채용 상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말 LG디스플레이 직원 수는 2만5632명으로, 1년 전인 2023년 말 대비 2346명이 줄었다.

다른 업종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표적인 게 내수 침체, 중국 상거래 업체와의 경쟁 등으로 고전하는 유통 분야다. 신세계그룹의 SSG닷컴이 1년 새 직원 수가 14% 줄어든 2476명이었고, SPC그룹의 파리크라상 직원 수도 5428명으로 약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상훈

우리 주력 산업 침체가 깊어지면서 최근 고용 시장이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특히 국내 정치 상황 등으로 환율이 치솟은 가운데, 대외적으로 최대 수출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서 자국 중심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정부가 새로 출범하며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상태다. 그 여파로 신규 채용 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기업 239곳을 대상으로 올해 채용 계획을 물었더니, 300인 이상 업체 중 53.7%가 “올해 채용 규모를 작년보다 축소할 것”이라고 답했다. 300인 미만 업체 31.1%도 채용을 줄일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대기업, 공공기관 등 상대적으로 보수나 복지가 좋아 청년층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줄면서 취업 시장의 체감 한파가 더 극심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 등이 포함된 300인 이상 대형 사업체 월 평균 취업자 수는 314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5만9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지난 2018년(5만명) 이후 6년 만에 가장 적은 증가 폭이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취업자가 전년에 비해 6000명 감소했고 건설업도 4만9000명 줄었다. 다른 산업보다 일자리 창출 규모가 큰 산업이 위축되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들의 체감 경기를 반영하는 도·소매업에서도 전년 대비 취업자가 2만명 줄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수출 실적은 좋았지만 고용 유발 효과가 낮은 반도체 산업이 ‘나 홀로 호황’을 누린 것”이라며 “올해는 채용을 줄이려는 기업이 다수”라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이 여파로 자연히 청년(15~29세) 취업률은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월 평균 청년 취업자 수는 375만5000명으로 전년(389만9000명)보다 14만4000명가량 줄었다. 이는 2013년(372만8000명)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가 없지만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그냥 쉰다’고 답한 이들은 전년보다 2만1000명 늘어난 42만1000명이었다.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코로나 영향이 있었던 2020년을 제외하면 역대 둘째로 많은 숫자다.

지난달 정부 구인·구직 사이트인 ‘워크넷’에서 집계한 구직자 대비 일자리 수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이후 2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한 채용 박람회에서 구직자가 면접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 /박상훈 기자

올해 채용 시장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주요 기업들이 이미 지난해부터 대내외 변수로 일제히 몸집 줄이기에 나선 만큼, 올해 신규 채용은 예년보다 더 좁은 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11월 말 롯데그룹은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가며 그룹 전체 임원의 22%를 퇴임시키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SK그룹도 실적이 나쁜 계열사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12월 정기 인사에서 약 20%의 임원을 퇴임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 산업 부진으로 포스코그룹도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거나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있는 사람도 내보내는 마당에 대규모 신규 채용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대기업들이 대규모 공채 대신 소규모로 필요할 때만 뽑는 경력직 중심의 수시 채용 선호가 강해지고 있어, 청년들의 체감 취업 경쟁률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달리 지원자가 줄을 잇는 대기업은 AI나 협동 로봇 등의 도입으로 당분간 인력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며 “경직된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정년퇴직이나 희망퇴직 말고는 인력을 줄일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신규 채용에 갈수록 더 인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