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출의 쌍두마차인 자동차와 반도체가 동시에 트럼프 관세 태풍의 영향권에 들었다. 10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약품과 함께 자동차와 반도체에 대해 나라를 가리지 않고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시사했다. 극심한 내수 침체 속에 우리 경제를 홀로 이끌어온 수출에 대형 변수가 발생하면서 큰 충격이 우려된다. 현대차·기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기업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347억달러(약 50조원), 반도체는 107억달러로 둘을 합쳐 65조원을 웃돌았고, 전체 대미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분의 1을 넘어섰다.
◇버팀목 수출마저 위기 직면
1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전년 대비 7.9% 늘어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SUV(스포츠유틸리티차)·전기차 등 고가 차량 판매가 호조를 보이며 증가세가 뚜렷했다. 대미 자동차 수출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된 2012년 세 자릿수로 올라선 데 이어 2022년 200억달러, 2023년엔 300억달러를 넘어서며 대미 수출 1위 품목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도체도 호조다. 코로나 시기 비대면 활동 증가에 서버, IT 기기 등의 수요가 급증하며 수출액이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엔 AI(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용 수출이 늘며 처음으로 대미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반도체로 만드는 SSD(대용량 저장 장치)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도 58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취임사에서 제조업 부흥 계획을 밝힌 트럼프 대통령이 러스트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를 대표하는 자동차와 첨단 산업을 상징하는 반도체에 대해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국내 주요 자동차, 반도체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현지 생산 확대와 신시장 개척 같은 방안이 나오지만, 수출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윤이 적은 소형차를 중심으로 연 생산량 50만대 중 90%가량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GM한국사업장은 관세가 부과가 이뤄지면, 국내 공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 또한 중국, 대만 등에서 후공정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물량까지 더하면 피해는 더 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자동차·반도체의 막대한 수입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하거나, 불공정 무역 관행 국가에 대해 무역 제재를 가하는 통상법 301조에 근거해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트럼프 1기 당시에도 미국은 철강에 이어 자동차에 232조를 적용해 관세를 매기려다 한미 FTA 재협상 일정 등에 따라 접은 바 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단장은 “트럼프 정부가 232조를 다시 꺼내 들 가능성이 크다”며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체결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도 25% 관세를 예고하고, 철강에 대해서도 양자 합의를 모두 무효로 하는 것을 보면 한미 FTA나 정보기술협정(ITA) 같은 기존 협정은 고려 대상이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항구 아인스(AINs) 연구위원은 “자동차의 경우 수출 쿼터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현지 생산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며 “관세를 부과하는 대신 방위비 분담액을 인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 한계 고려할 수도
트럼프 대통령이 나라와 품목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카드로 ‘관세 전쟁’을 주도하고 있지만, 실제 부과에 이르기까지는 난관이 많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1년에 판매하는 자동차가 1600만대 정도인데 현지 생산으로 커버하는 물량은 절반인 800만대 수준”이라며 “결국 무차별 관세를 붙이면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도체도 미국의 실익이 뚜렷하지 않아 관세를 매기더라도 중국을 겨냥한 ‘정밀 타격’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US스틸 등 미국 내 제조 설비가 있는 철강과 달리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70% 점유율로 주도권을 쥔 메모리 반도체는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조차 주요 생산 시설을 일본과 대만 등 해외에 두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관세 부과에 따른 반도체 공급 단가 상승은 미국에 더 큰 손해를 가져올 것”이라며 “반도체 분야 관세 부과는 제한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