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중동 최대 방산 전시회 ‘IDEX 2025’. 전시회장 내 한화 부스를 찾은 외국 방산 관계자들이 K9 자주포를 살펴보고 있다. /이정구 기자

17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최대 규모 방산 전시회 ‘IDEX 2025’가 개막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현대로템,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등 주요 방산 기업의 개별 전시장과, 다른 한국 기업 10여 곳이 공동으로 차린 ‘통합 한국관’이 행사장 한쪽을 가득 채웠다. 이 규모만 총 3000㎡(약 908평)에 달한다.

그래픽=이진영

특히 K방산의 대표 베스트셀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와 ‘한국형 사드’로도 불리는 L-SAM(장거리 지대공 유도 무기 시스템) 주변엔 종일 전통 아랍 의상 차림을 한 중동 각국 방산 관계자들이 끊이질 않았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K방산 관계자들은 “상전벽해나 다름없는 변화”라고 입을 모았다. 대표 방산 기업인 한화가 2001년 IDEX에 참가했을 때만 해도 참가 기업은 삼성물산과 무역협회까지 단 세 곳뿐이었다. 전시 공간도 한화와 삼성테크윈이 공동으로 마련한 30㎡(약 9평) 남짓한 부스 한 칸이 전부였다. 하지만 20여 년 만에 K방산은 규모가 100배 이상 커진 무대에 올라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K방산 기업들은 이 전시회를 계기로 ‘K방산 2.0’ 시대를 준비 중이다. “더 이상 미국이 공짜로 지켜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세계 방위 산업 지형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와 푸틴 대통령의 회담을 계기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곧 끝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며, 중동에서의 점유율 확대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동으로 간 K방산… L-SAM 첫 공개에 뜨거운 관심

17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방산 전시회 ‘IDEX 2025’에 참가한 유탄 발사 드론 제작 업체 씨앤오테크의 전시관. 전통 아랍 복장의 카타르 군 관계자들이 찾아와 한참 동안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소형 포탄을 발사하는 유탄 발사 드론을 보며, “우리나라가 쓰는 포탄이 호환될까요?” “대당 가격은 얼마쯤 하나요?”라며 한참을 물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LIG넥스원·현대로템 등 다른 방산 기업들의 부스도 비슷했다.

17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국제방산전시회 및 컨퍼런스에서 한 에미리트 남성이 한국산 DSAR-15 소총으로 조준하고 있다./AP 연합뉴스

1993년부터 격년으로 열리는 IDEX는 세계 최대 방산 전시회 중 하나다. 록히드마틴·라팔·BAE시스템스·사브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을 비롯해 올해 65국 방산 기업 1350여 곳이 참가한다. 지난 2023년 전시회 때는 행사 기간 동안 10만명 이상이 방문해 약 9조원어치 계약이 현장에서 이뤄질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런 행사에서 글로벌 방산 시장의 변방에 그쳤던 우리 기업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빠른 납기와 가성비, 선진 방산 국가 못지않은 기술력에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이라는 변수까지 겹친 여파다.

◇트럼프판 ‘각자도생’에 글로벌 방산 수요도 급증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계 각국에 “더 이상 미국이 대신 지켜주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노골적으로 각국에 방위비 증강을 요구하면서 각자도생이 화두가 됐다. 이스라엘·요르단·이집트 등 주요 동맹국에 적극적으로 군사 지원을 했던 미국이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한 걸음 물러서면서 이 일대 독자 방어 수요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점에서 빠르게 무기를 공급할 수 있는 생산 설비를 갖췄고, 미국과 오랜 협력으로 미국 무기 체계를 상당 부분 벤치마킹한 K방산의 장점이 중동에서 한층 더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이번 전시회에서 K방산의 대공 방어 무기가 특히 주목을 받았다. 현지에선 전차나 장갑차를 앞세워 진군해 오는 형태의 침공보다 이슬람 무장 단체나 적대국 등이 쏘는 로켓 공격 등에 대한 위협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날 해외에서 한화가 처음 공개한 L-SAM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이다.

17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중동 최대 방산 전시회 ‘IDEX 2025’. UAE 방산업계 관계자들이 한화 부스에서 L-SAM(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에 대한 설명을 듣는 모습. L-SAM은 미국·이스라엘 등 일부 국가만 보유한 대공방어 기술을 집약했다는 평을 듣는다./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L-SAM은 적 미사일이나 드론, 항공기 등을 고도 40∼70㎞ 안팎에서 직접 요격하는 무기여서 공중에서의 자동 추적 기능 등을 갖추고 있어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시스템이다. 핵심 기술은 미국·이스라엘 등 극소수 방산 선진국만 보유하고 있는데, K방산 역시 지난해 국산화를 달성했다. 2015년부터 1조2000억원을 투입해 국방과학연구소·한화에어로·한화시스템·LIG넥스원이 함께 이룬 결과다.

◇현지화 앞세운 동반 수출도 기대

중동 맞춤형 무기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현대로템은 폭염에도 최적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특수 재질을 적용하고, 파워팩 냉각 성능을 강화한 중동형 K2 전차를 꾸준히 개량하고 있다. KAI는 작년 이라크와 수출 계약에 성공한 다목적 기동 헬기 수리온의 다양한 개량형을 추진하고 있다.

국산화로 수출 장벽을 뚫은 것도 강점이다. K방산의 수출 효자 품목 중 하나인 K9 자주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일산 엔진, K2 전차는 독일산 변속기를 탑재했다. 그래서 독일의 반대로 그간 중동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K9 1000마력 엔진은 최근 국산 엔진이 1만시간 성능 테스트를 최종 통과했다. K2도 파워팩(엔진+변속기)을 작년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수출 족쇄가 풀렸다.

국내 방산 업계의 핵심 인사들도 직접 전시장을 찾아 ‘방산 세일즈’에 나섰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구본상 LIG넥스원 회장 등은 이날 전시에서 해외 바이어들과 만나 협상을 이어 갔다. 김 부회장은 “기존 방산 분야 협력을 공고히 하면서 조선·해양·우주·에너지 등 영역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중동 지역에선 K원전과 K방산을 함께 수출하는 ‘패키지’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대공 방어 체계는 국가 기간시설 보호를 위해 필수로 꼽히기 때문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UAE의 경우 바라카 원전을 방어하는데 이미 수출된 한국의 천궁-II가 기여하는 셈”이라며 “한국의 강점을 살린 동반 수출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L-SAM(Long range Surface to Air Missile)

L-SAM은 장거리 지대공 유도 무기 시스템으로, 적 미사일이나 드론, 항공기 등을 고도 40∼70㎞ 안팎에서 직접 요격하는 무기다. 한국형 사드(THAAD)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