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에서 24조원 규모 사업을 수주하며 잘나가던 ‘K원전’이 국제 중재로 넘어갈 판국입니다. 우리나라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맞붙은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2001년부터 모회사·자회사 관계가 된 두 회사는 ‘원전 수출 사업을 누가 어떻게 맡을 것이냐’를 두고 역할 분담조차 못 하고 24년간 심각성을 외면해 왔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1조원대 공사비 정산 문제가 최근 터지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죠. 한전과 한수원은 지난 10여 년간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급 출신이 사장을 맡아 왔는데, “형·동생처럼 지내던 산업부 출신 선후배들이 사장을 맡으며 외면해 왔던 잡음이 이제야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갈등은 2001년 “한전의 독점 구조를 깨겠다”며 한수원이 분리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조직만 나눴을 뿐, 한전과 한수원이 원전 수출 사업을 어떻게 나눠 맡을지 기준을 명확히 정하지 못해 현장에서는 혼선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동유럽은 한수원이, 서유럽과 중동은 한전이 맡는다는 미봉책으로 넘어갔죠.
수면 아래 갈등은 한전이 2009년 수주한 20조원 규모 바라카 원전 공사비를 정산하며 드러났습니다. 작년 9월 마지막 4호기까지 상업 운전에 들어갔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공사비가 1조원 넘게 늘어난 게 화근이었습니다. 시운전을 맡은 한수원은 작년 말 한전에 “늘어난 공사비를 정산해 달라”고 했고, 부채가 200조원이 넘는 한전은 “현지 발주처에서 대금을 받아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양사 사장이 만나 실무 협의도 했지만, 지난 19일 한전 김동철 사장이 국회에서 한수원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 갈등엔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한수원도 이에 런던국제중재법원 제소를 검토하고 나섰죠.
“해외 사업은 내가 잘한다”는 한전과 “기술력은 내가 우위”라는 한수원이 원전 수출을 두고 소모적인 주도권 경쟁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전 업계 한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간 체코 원전도 10년 뒤 공사비가 올라 비슷한 갈등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K원전’의 공든 탑이 집안싸움으로 무너질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