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매출 7조원에 전국 126개 매장을 운영하며 이마트에 이어 대형 마트 2위(점포 수·매출 기준)인 홈플러스가 자금난 속에 기업 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국내 사모 펀드인 MBK파트너스가 보유한 홈플러스는 4일 0시 3분에 서울회생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고, 법원은 신청 11시간 만인 이날 오전 11시쯤 홈플러스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다. 홈플러스는 “회생 절차 개시로 금융 채권 상환은 유예되지만, 협력 업체와의 거래는 정상적으로 대금 결제가 이뤄지고 임직원 급여도 정상적으로 지급된다”고 밝혔다.
1997년 출범한 삼성물산 유통 부문의 할인점 사업이 모태인 홈플러스는 1999년 삼성물산이 영국 유통 업체인 테스코에 경영권과 지분 49%를 넘기면서 합작 법인 형태로 바뀌었다. 2011년 삼성물산이 잔여 지분을 매각하며 테스코의 100% 자회사가 됐고, 지난 2015년 MBK파트너스가 당시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인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사들였다.
MBK파트너스 품에 안긴 홈플러스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알짜 점포 매각까지 나섰지만, 2021년부터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금융 비용을 줄이겠다며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기업이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하는 건 극단적인 카드를 쓴 것”이라며 “차입 경영을 하다 금융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운영 자금 확보까지 어려워지는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홈플러스에 무슨 일이
홈플러스가 기업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한 직접적인 도화선은 신용 평가사들의 신용 등급 강등이다. 홈플러스는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이 지난달 28일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한 지 불과 4일 만에 기업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영업 실적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점, 과중한 재무 부담이 지속되고 있는 점, 중단기 내 영업 실적 및 재무 구조 개선 여력이 크지 않을 전망인 점 등을 반영했다”며 홈플러스의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이날 홈플러스 신용 등급을 또다시 하향 조정했다.
홈플러스는 리스 부채를 제외하고 금융 부채가 2조원에 달한다. 1월 31일 기준 부채 비율은 462%로 나타났다. 홈플러스는 이자 비용으로만 1년에 4000억원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로서는 신용 등급이 강등되면 마케팅비, 임금 등에 쓰이는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 게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이 신용도가 떨어진 홈플러스에 빌려주는 금액을 줄이거나 최악의 경우 대출을 거부할 수도 있고, 이자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현재까지 물품 대금 미지급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신용 등급 하락으로 금융기관에서 운영 자금 대출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선제적으로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2016년 홈플러스 점포 수는 142개로, 영업 이익은 3208억원에 달했다. 이후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알짜 점포를 매각하는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서면서 현재 점포 수는 126개까지 줄었다. MBK에 인수된 후 영업이 종료됐거나 영업 종료를 앞두고 있는 점포는 25개에 달한다.
법원, 정상 영업 결정
홈플러스는 2021년 영업 손실을 낸 이후로 계속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21년부터 3년 연속 1335억~2601억원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이다. 홈플러스는 작년 11월 일부 납품 업체에 지연 이자를 주는 방식으로 대금 지급을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까지 간 홈플러스
홈플러스는 4조700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회생 계획이 확정되면 금융 채권자들과의 조정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유통 업계 관계자는 “당장 소비자들은 물론 양질의 협력 업체들이 홈플러스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원은 홈플러스에 대한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하면서 정상 영업을 할 수 있는 ‘사업 계속을 위한 포괄 허가’를 결정했다. 금융 채권 상환은 유예되지만, 협력 업체와의 계약은 그대로 이행하게 되고, 임직원 급여도 정상적으로 지급하게 된다. 홈플러스는 “금융 채권 등이 유예돼 금융 부담이 줄어들게 되면 향후 현금 수지가 대폭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는 18일까지 채권자 목록을 제출하고, 6월 3일까지 회생 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최대한 빨리 회생 절차를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회생 절차
자금난에 직면한 기업이 채무 상환을 일정 기간 유예받고, 법원의 지휘를 받아 기업을 살리는 절차. 회생법원이 회생 절차 개시를 결정하면 기업은 회생 계획안을 마련해 채권자들 동의를 얻고 법원에서도 인가를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