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향방 가를 임시주주총회 앞둔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회의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1.13 /남강호 기자

이달 말 열리는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 유효하다는 법원 결정이 7일 나왔다. 적대적 M&A(인수·합병)를 하려는 사모 펀드 MBK에 맞선 최윤범 현 고려아연 회장이 이번 정기 주총에서는 경영권 방어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집중투표제는 일반적인 표 대결에 비해 소수 주주가 더 유리하기 때문에, MBK 측 지분이 최 회장 측보다 더 많지만 이번 정기 주총에서 단숨에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이사 수를 수십 명으로 더 늘리는 이례적인 방법 등을 빼면, MBK 측이 이사회 과반 확보를 거쳐 경영권을 갖는 데까지 앞으로 최소 수개월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법원이 최 회장 측이 추진한 또 다른 방어 수단인 ‘상호주 제한’ 조치는 무효라고 판단하면서 향후 임시 주총 등에서 양측의 경영권 분쟁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이사회에 MBK 측 인사가 고려아연 측과 대등한 수준으로 진입하게 되고, 이사회 인원을 늘리는 안건이나 주요 의사 결정에 대해 MBK 측 의사가 더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이날 결정으로 고려아연 지분 추가 확보에 최소 1조2000억원을 쓴 MBK 측은 분쟁 장기화로 부담이 커지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MBK는 지난 4일 국내 2위 대형 마트 홈플러스를 기업 회생 절차에 넘긴 것과 관련,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픽=양인성

◇법원 “상호주 제한은 무효, 집중투표제는 유효”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김상훈)는 7일 지난 1월 23일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 대한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MBK·영풍 측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당시 ‘상호주 제한’을 써서 임시 주총 전날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것은 잘못됐다고 판단하면서, 고려아연 측이 추진한 집중투표제 안건은 효력이 유지되는 게 맞는다고 한 것이 핵심이다.

그래픽=양인성

고려아연 측은 임시 주총 전날 영풍 지분 10.3%를 호주 법인인 손자회사 SMC로 넘겨 순환 출자 고리를 만들었다. ‘MBK·영풍→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H)→SMC→영풍’으로 이어지는 식인데, 이런 구조하에선 ‘상호주 제한’이 생긴다는 게 고려아연 측 주장이었다. 상법에선 A 회사와 B 회사가 서로 보유한 상대 회사 주식이 10%를 넘을 경우 전체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금지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날 “상호주 제한은 상법상 주식회사에 대해서만 성립하는데, 호주 법인 SMC가 여기에 해당하는지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고려아연 측은 지난 임시 주총에서 상호주 제한으로 영풍 의결권(25.4%)의 효력을 없앤 상태로 주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상호주 제한이 무효가 되면서 처리된 안건들도 대부분 무효가 됐다. 다만 재판부는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은 상호주 제한이 적용되지 않아도 통과됐을 것”이라며 효력을 인정했다. 집중투표는 기업이 이사 여러 명을 뽑을 때 주주에게 뽑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MBK보다 지분이 적은 최 회장 측이 표 대결에서의 열세를 극복하려 도입을 추진했던 것이다.

◇홈플러스 논란 속 분쟁 장기화 부담인 MBK

이날 법원 결정으로 경영권 분쟁이 더 장기화할 수 있는 상황이 돼 MBK 부담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MBK 측은 고려아연 지분이 약 41%로, 최 회장 측(약 34%)을 크게 앞선다. 그러나 집중투표제가 유효하게 돼 당장 이번 주총에서 경영권 확보가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많다.

MBK 측은 앞으로 임시 주총을 요구해 이사 수를 늘려 또 과반 확보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경우 이사 수가 20~30명으로 늘어날 수 있어, 국민연금이나 기관·외국인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전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MBK가 국내 2위 대형 마트인 홈플러스를 기업 회생 절차에 넘기면서 경영 능력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는 상황인데, 무리하게 경영권 확보에 나설 경우 더 큰 비판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집중투표제·상호주 제한

집중투표제: 주주총회에서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 이사 3명을 뽑는 경우, 1주를 가진 주주는 3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 3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도 있고, 3명에게 각각 1표씩 줄 수도 있다. 소수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제도다. MBK 측보다 지분이 적은 최윤범 회장 측이 도입을 추진했다.

상호주 제한: 상호주는 A 회사와 B 회사가 서로 보유한 상대 회사 주식을 가리킨다. 취득 자체가 금지는 아니지만 10%를 넘을 경우 전체 지분에 대해 의결권 행사가 금지되는 ‘상호주 제한’ 대상이 된다. 상호주가 경영권 우호 지분으로만 이용되거나 소액 주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