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1시 1분(한국 시각)을 기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조치가 발효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특정 품목에 대해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일괄 부과하는 첫 관세다. 한국의 대미(對美) 철강 수출 면세 쿼터(연간 263만t)를 비롯해 미국이 각국과 맺었던 모든 예외와 면제 조치 역시 사라졌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은 자동차·조선·가전 등의 핵심 원료다. 미국은 이번 25% 관세 부과 조치로 US스틸을 비롯한 자국 철강 산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해외 철강업체를 유치해 자국에서 중요 안보 물자인 ‘쇳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관세 장벽을 높게 쌓은 가운데 ‘저가 철강 밀어내기’를 지속해 온 중국은 최근 철강 감산(減産)과 구조 조정 촉진 방침을 밝혔다. 여러 변수가 얽히면서 세계 6위 철강 생산국이자, 대미 4위 철강 수출국인 한국 철강 업계의 셈법 역시 복잡해졌다.
◇셈법 복잡해진 철강 업계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해 국내 철강 업계에선 “기회와 위기가 모두 공존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당장 이번 관세로 한국 철강 수출의 가격 경쟁력에는 부담이 커졌다. 지금까진 연 263만t의 쿼터 안에서 수출을 해오면서 사실상 면세 효과를 봤는데 순식간에 가격이 25% 인상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날 포스코홀딩스(5.9% 상승), 세아제강지주(4.9%), 동국제강(3.7%), 현대제철(2.5%) 등 주요 철강 기업의 주가가 일제히 오르는 등 호재(好材)로 보는 시각도 많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우리뿐 아니라 모두가 ‘25% 관세’를 맞고 시작하게 되면서 모든 경쟁국의 출발선이 같아졌다”며 “기존에 면세 쿼터 이상의 수출은 하지 못했던 한국 입장에선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수출 물량 상한선이 사라진 만큼, 품질 경쟁력을 지닌 고급 철강재를 중심으로 미국 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미 철강 수출국 각각 1, 3위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철강 관세 25%’와 ‘보편 관세 25%’까지 더해져 총 50%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엔 4위 수출국인 한국이 반사 이익을 볼 것이란 기대도 반영돼 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올해 철강 생산량을 통제하고, 산업 구조 조정을 촉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변수다. 구체적인 감산 목표를 밝히진 않았지만 시장에선 약 5000만t의 감산을 예상한다. 지난해 한국 조강(쇳물) 생산량(6351만t)의 약 80%, 중국 연간 수출량(1억1070만t)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하나증권 박성봉 연구원은 “감산이 현실화될 경우 중국이 주로 철강을 수출하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철강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반면 관세 장벽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US스틸 등 미국 업체들이 한국을 비롯한 기존 수출국의 물량을 흡수할 것이란 전망도 꾸준하다. 현대차증권 박현욱 연구원은 “현재 이뤄지고 있는 미국 철강 가격의 고공 행진이 계속돼 세계 각국의 대미 철강 수출이 증가하면, 미국이 추가적인 무역 장벽을 구축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수출 中企
이번 관세 조치로 더 큰 문제는 수출 중소기업이 직면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이날부터 철강·알루미늄 제품뿐 아니라 볼트, 너트, 스프링, 자동차 부품, 가전 부품 등 파생 상품 253개에도 새롭게 관세 25%를 적용했다. 1000원짜리 수출 부품에 철강이 10% 포함돼 있으면, 이에 해당하는 100원어치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문제는 수출 기업이 이 같은 사실을 소명하지 못할 경우, 부품 가격 전체에 대한 관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대응 여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중소기업으로선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했다.
이날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도 우려가 쏟아졌다. 지제이알미늄 유경연 대표는 “미국 현지 기업과 500만달러 상당의 수출 계약을 진행 중인데, 이번 관세 조치로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담당 부처인 중기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피해 기업 긴급 지원에 나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