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17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매입 채무 유동화 관련 채권이 회생 절차를 통해 전액 변제되는 것을 목표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일주일 전인 지난 10일 “홈플러스는 ABSTB(카드 대금 기초 유동화증권)나 CP(기업어음) 판매와 무관하다”고 밝힌 데서 입장을 급선회한 것이다. 홈플러스 사태를 두고 후폭풍이 거세지자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채권자들은 물론 금융 당국, 정치권 등의 전방위 압박이 이어지고 ‘먹튀’라는 인식까지 형성되자 MBK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홈플러스 물품 구매 전단채(ABSTB) 피해자 긴급 간담회’가 열렸다. 홈플러스 단기채권의 대부분이 대형 기관 투자자가 아닌 개인이나 중소기업에 판매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스1

◇‘사과 모드’ 들어간 MBK

MBK는 기업회생 절차 신청과 함께 신용 등급을 내린 신용 평가사 탓을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납품을 중단하는 업체들이 등장하고, 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의 목소리가 나오자 “납품은 곧 안정화될 것” “모든 상거래채권을 순차적으로 지속 상환 중” 등의 입장을 내놓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래픽=정인성

국세청은 지난 11일 MBK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고, 정치권도 피해가 우려되는 투자자, 협력업체 종사자들과 연일 만나고 있다. MBK를 향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4일)한 지 열흘 만인 지난 14일 홈플러스 경영진이 처음으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사과했다.

지난 16일과 17일에는 이틀 연속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16일 MBK는 “김병주 회장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신속히 결제 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17일에는 주요 일간지 1면에 ‘홈플러스 회생 절차, 주주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냈다. 이날 홈플러스는 ABSTB와 CP를 개인 투자자들에게 판매한 건 증권사로, 자기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종전 태도를 바꿔 “변제에 대한 최종적 책임은 당사(홈플러스)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 사태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자 MBK의 명성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됐다”며 “홈플러스 회생 절차에 문제가 생기면 향후 사업을 이어가는 데도 큰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고 몸을 바짝 낮추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MBK 해법에 대한 투명성 요구는 커져

MBK를 둘러싼 의혹 제기도 계속되고 있다. MBK가 발표한 김병주 회장의 ‘재정 지원’이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사재 출연과 개념이 다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MBK 같은 외국 사모펀드 운용사는 위탁 운용사(GP)가 투자한 회사의 실적 향상 등을 위해 희생을 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보전받는 내용이 계약서에 담긴다”며 “김 회장이 사재를 출연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향후 투자자들에게 돌려받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회사 일로 소송을 당하면 회사에서 법률 비용 등을 부담하는 것처럼 사모펀드 운용사 핵심 인사들도 펀드와 관련해 개인 돈을 쓰면 투자자들이 낸 펀드 자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홈플러스는 “주주사(MBK)에서 자금 사정이 어려운 소상공인들의 채권을 조속히 지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결정한 것”이라며 “현재 소상공인 채권 지급에 필요한 금액을 추산 중이며, 집계가 완료되는 대로 주주사와 실무 협의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채권 지급을 완료할 것”이라는 원론적 설명만 하고 있다.

MBK가 홈플러스의 자금난을 일찌감치 파악하고도 단기 자금 조달 역할을 한 유동화증권 발행을 계속해 투자자 피해를 불러온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17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실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유동화증권(신영증권 발행)은 지난해 11월부터 석 달 동안 약 3608억원 규모가 발행됐다. 전년 같은 기간(2670억원)보다 35% 늘어난 수치다. 지난달에는 2023년 이후 월별 기준 가장 많은 1518억원 규모의 유동화증권이 발행됐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25일 신용 평가사 실무자에게 신용 등급이 한 등급 하락하게 될 것 같다는 예비 평정 결과를 전달받았는데, 그날 발행한 유동화증권만 820억원에 이른다. 금융 당국은 신영증권과 홈플러스 신용 등급을 매긴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신용 평가사 2곳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