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버린 대한항공 가격” “아시아나 시애틀 55만원에 끊고 가봅니다” “가격 오류 아니에요?”….
최근 해외여행 인터넷 카페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발(發) ‘특가 대란’으로 들썩이고 있다. 얼마 전 합병 수순에 돌입한 두 항공사가 3~4월 미주·유럽 장거리 노선 왕복 항공권을 50만~70만원대의 특가에 팔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류할증료와 세금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승객들은 물론 항공 업계에서조차 “원래 이 시기엔 못 해도 170만~180만원은 줘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파격가”란 말이 나온다.
이전에도 출발일에 임박해 좌석이 남으면 항공사, 여행사가 ‘땡처리 판매’를 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대형 항공사가 직접, 장거리 노선을,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파는 일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게 항공 업계의 반응이다. 보통 미주·유럽 같은 장거리 노선은 특가로 판다고 해도, 갑자기 긴 휴가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마케팅 효과가 크지 않아 ‘땡처리’ 대상으로 잘 등장하지 않는다.
◇이례적인 ‘땡처리’, 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공식적으로 “3~4월 비수기의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비수기에 수요가 부진한 일부 노선을 중심으로 좌석 소진을 위해 낮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권 가격은 수요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데, 미주 노선의 경우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공급이 회복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조치가 꼽힌다. 공정위는 지난 2022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여러 단서 조항과 함께 ‘운임 인상 제한’ 조건을 달았다. 코로나 이전이었던 2019년의 운임을 기준으로, 각 노선별·분기(分期)별 평균 운임을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올려선 안 된다는 조항이다. 이 규제에 해당되는 해외 노선은 26곳인데 이번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이 특가로 판매하는 노선과 그대로 겹친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두 항공사가 올 1~2월 성수기를 맞아 항공권을 상대적으로 비싸게 팔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특가 판매가 물론 비수기의 요인도 있겠지만, 분기 평균 운임을 맞추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두 항공사의 특가 판매는 1분기가 끝나는 3월과, 2분기가 시작되는 4월 항공권에 쏠려 있다. 분기 안에서 비수기에 가격을 낮춰두면, 성수기에 판매 가격이 오르더라도 평균을 맞출 수 있다.
지난 5일 공정위와 국토교통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의 시정 조치 이행 여부를 관리·감독하는 ‘이행감독위원회’를 출범시킨 바 있다. 위원회는 대한항공 측의 시정 조치 이행 상황을 ‘분기별’로 점검해 공정위에 보고한다는 계획이다.
◇미주·유럽 노선 50만~70만원대
이 같은 효과로 19일 현재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 이번 금요일(21일) 저녁 인천에서 뉴욕으로 출발해, 일주일간 휴가를 보내고 일요일(30일)에 돌아오는 왕복 직항 항공권의 가격은 유류할증료와 세금을 포함해 총 79만5300원이다. 같은 일정의 아시아나항공 왕복 항공권은 74만5700원이다. 해외여행 카페에선 “평소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라 직장 동료를 강제로 휴가 보냈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2일부터 ‘라스트 미닛(LAST MINUTE)’이란 프로모션을 시작해 유럽 노선은 이달 21일, 미주 노선은 24일까지 50만~70만원대의 특가에 왕복 항공권(이코노미석)을 팔고 있다. 유럽은 3월, 미주는 4월 안에 여행하는 조건이다.
유럽 노선인 런던은 70만1800원, 프랑크푸르트는 63만8500원, 파리는 58만9500원, 로마는 50만900원부터 살 수 있다. 미주 노선도 뉴욕 74만5900원을 비롯해 하와이 66만1100원,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항공권을 각 64만5900원부터 판매한다. 모두 유류할증료와 세금을 포함한 금액이다.
대한항공은 이 같은 공식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진 않지만, 미주 노선을 중심으로 3~4월 항공권 일부를 싸게 판매하고 있다. 대형 항공사들이 가격을 낮추자 미주와 유럽을 주력으로 하는 저비용 항공사(LCC)들도 덩달아 가격을 내리는 분위기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이번 특가는 공정위 규제 같은 특수 요인 덕에 나온 만큼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미지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