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 중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0일(현지 시각)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민감 국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협력한다”는 데 합의했다.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를 민감 국가로 지정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벌어진 지 열흘 만에 양국 주무 부처 장관이 만나 문제 해결에 물꼬를 튼 것이다. 외교 당국자는 “민감 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고, 여기에 미국도 공감의 뜻을 표했다”며 “미국 내 일련의 절차를 거쳐 한국을 민감 국가 목록에 포함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다만 산업부는 양국 정부가 민감 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합의한 것은 아니라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해제 절차를 밟는 데 시간이 필요함에 따라 발효 시점인 4월 15일 전에 목록에서 제외되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산업부는 21일 “3주 만에 미국을 다시 방문한 안덕근 장관이 미국 워싱턴DC에서 라이트 장관과 회담을 갖고 ‘절차에 따라 (민감 국가)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 에너지부도 이날 본지에 “한국과의 양자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다”고 확인했다.
◇ ‘민감 국가’ 수습 국면 맞아
이번 회담은 ‘민감 국가’ 논란이 불거진 지 열흘 만에 양국 장관이 만나 사태를 빠르게 봉합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앞서 민감 국가 논란은 지난 10일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를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 테러 우범국이나 제재 대상국이 포함된 민감 국가 목록에 추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미 에너지부는 국가 안보, 핵 비확산 등을 이유로 특정 국가를 민감 국가로 지정해왔는데, 우리나라가 대상이 되면서 차세대 원전(原電),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분야를 중심으로 한·미 간 연구·개발(R&D) 협력이 영향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여야가 지정 배경을 두고 ‘핵무장론’과 ‘탄핵 사태’ 등을 거론하며 ‘네 탓’ 공방을 펼치면서 정치 쟁점화하기도 했다.
지난 18일 조셉 윤 주한 미국 대사 대리가 “민감 국가 지정은 별일이 아니다(It’s not a big deal)”라면서 연구소 ‘보안 문제’가 원인이라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외교 참사’ ‘핵무장론 탓’ 등이 계속 불거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안 장관은 3주 만에 미국을 다시 찾아 관세는 물론 민감 국가 지정이란 현안 해결에 나섰고, 결국 미국 정부 장관과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합의를 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빠르게 양국 정부가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며 “이번 민감 국가 지정이 안보나 핵확산 우려 같은 정책적인 측면이 아닌 연구진의 기술 유출에 국한됐다는 미국 측의 해명이 맞다는 걸 뒷받침하는 증거로 보인다”고 평가한다.
◇ 앞으로는 어떻게?
안 장관이 이번 출장에서 ‘에너지 차르’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장과 일정을 따로 잡지 않은 것도 해당 사안이 ‘핵무장론’ 등의 쟁점과는 거리가 먼 실무적인 사안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부터 미국이 국방수권법(NDAA)에 민감 국가 관련 보안 강화 규정을 신설한 것도 ‘연구원 보안 문제’가 발단일 수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앞서 미 에너지부가 민감 국가 지정 후 3개월 뒤인 4월 중순부터 발효하기로 한 것을 감안하면, 해제에도 절차적으로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일단 4월 중순 목록에 포함되고 나서 해제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 정부 소식통은 “지정이나 해제 모두 내부 규정이 있고, 시간이 걸린다”며 “이런 상황에서 관련 절차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양국 정부가 합의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