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들어 경제력에서 미국을 넘보는 수준까지 갔던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을 거치며 미국의 강력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으로 접어들었고, 미국 시장을 휩쓸던 반도체 산업의 패권은 한국으로 넘어갔다.
이후 일본은 미국이 칼을 들이밀 때마다 납작 엎드렸다.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뜻)’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 1기 땐 고(故) 아베 신조 총리가 외국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트럼프 당선자를 대면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 일본으로 초청해 골프 카트를 손수 몰고, 벙커에서 넘어지는 사진까지 남기며 트럼프의 환심을 얻어내기도 했다.
2016년 선거 유세 당시 트럼프 후보는 ‘방위비 분담금’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을 거론하며 한국을 가장 먼저 정조준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에 손발이 묶였던 우리와 달리 일본은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관세 인하와 같은 실익을 챙겼다. 이후 우리도 뒤늦게 이런 ‘일본식 해법’을 따르며 충격을 줄였다. 한미 FTA 개정 땐 미국 측이 강하게 요구한 픽업트럭 관세 20년 연장안을 받아들였고,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부과됐을 땐 가장 먼저 미국에 달려가 무관세 쿼터를 확보했다.
상호 관세가 9일(현지 시각)부터 본격적으로 부과되며 각국이 협상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와 산업 구조가 비슷한 일본의 협상 전략을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단장은 “한국과 일본은 대미 수출 지형과 규모는 물론 미국과 정치·군사적으로 밀접한 우호 관계를 맺어온 동북아 선진국이라는 점에서 가장 비슷하다”며 “일본은 우리에게 중요한 벤치마크”라고 했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는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 때부터 미국이 요구한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를 통한 대미 무역 흑자 규모 축소나 농산물 수입 규제 완화, 환율 등 비관세 장벽 철폐 등에 일본 정부가 어떤 패키지를 제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지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