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각) “유럽에 있는 군에 비용을 내지만 많이 보전받지는 못한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라면서 “무역과는 관계가 없지만, (협상의) 일부로 하겠다. 한 개의 패키지에 다 담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통화 직후 밝힌 것과 같이 관세 협상을 방위비 분담금 등 다른 현안들과 묶어 ‘원스톱 쇼핑’ 방식으로 일괄 처리하겠다는 뜻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관세 협상을 총괄하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이날 “(관세 협상은) 각국 맞춤형으로 할 것”이라며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엔 한국, 일본, 대만이 자금을 댈 의향이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0시 1분부터 시행한 상호 관세를 90일 유예하기로 깜짝 발표했지만, 곧바로 핵심 인물들이 ‘원스톱 쇼핑’의 협상 의제들을 강조하며 압박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상호 관세 유예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미국을 방문 중인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유예 발표 후 특파원들과 만나 “관세 협상을 지속해 우리 업계에 미칠 영향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확보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향후 미국과의 협상은 단판 승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정인성

앞으로 석 달 동안 ‘관세율 낮추기’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10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앞으로 90일 동안 모든 협상에 진전을 보여서 관세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며 “우리 규제가 완화되면 외국 기업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에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으니 각종 규제를 담당하는 여러 부처의 장관들께서 특별히 노력해 달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대(對)중국 고립 전략을 펼치는 상황에서 중국이 빠진 공급망의 틈을 동맹을 내세워 파고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 유예를 발표하면서도, 중국에는 예외적으로 125% 상호 관세를 즉시 시행한다고 밝혔다.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중 관계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으로선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 협상을 빨리 마무리하려고 할 수 있다”면서 “우리가 중국을 대체해 공급망을 안정시킬 핵심 동맹이라는 점을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태양광을 비롯해 우리와 각축을 벌이는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 제품 등이 우리가 중국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주요 품목으로 꼽힌다.

한 권한대행이 규제 등 비관세 장벽 철폐 효과를 얘기한 것과 같이 미국이 요구하는 ‘원스톱 쇼핑’ 의제 가운데 우리에게 유리한 사안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단장은 “에너지 수입, 조선업 협력 등은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도 많다”고 했다.

두 달 뒤 대선을 앞두고 관세 협상이 정치 쟁점으로 번질 수 있는 만큼, 원활한 협상을 위해선 초당적인 협력도 요구된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관세 협상 과정에서 부처나 이해관계자 사이 갈등 조정이 중요하다”며 “여야를 떠나 협상단에 힘을 실어주고,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합의안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