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반도체 등 IT 품목을 상호 관세에서 제외하고 품목 관세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엔 “반도체 새 관세를 다음 주에 발표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시행하겠다”고도 말했다. 지난 11일 미 관세국경보호청(USCBP)이 반도체·스마트폰·PC 등을 상호 관세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효하자 미국이 양보했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곧바로 ‘다른 버킷(bucket·양동이, 범주)’으로 이동하는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트럼프 관세와 관련해, 반도체 및 상호 관세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에게 물어 의문을 정리했다.
Q1. 당장 반도체 등 IT 관세는 어떻게 되나?
트럼프 대통령과 미 정부는 기본 관세 10% 등을 포함한 상호 관세 발표 시 이미 시행 중인 철강과 자동차를 비롯해 시행 예정인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해선 별도의 품목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이날 재확인하기 이전에도 반도체는 이미 상호 관세와는 별개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반도체 등 IT 제품은 본래부터 정보기술보호협정(ITA)에 따라 관세율 0%를 적용받아온 품목이다. 미 정부가 별도의 품목 관세를 발표한다고 밝힘에 따라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반도체에 대한 세율은 여전히 0%가 유지된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다만 중국산에 대해선 바이든 정부 당시 반도체 상계 관세가 50%로 상향됐고, 펜타닐 관세 20%도 추가되면서 고율의 관세가 계속 붙는다. 스마트폰, PC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는 관세가 붙지 않지만, 중국산에는 20%가 계속 매겨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미국으로 수출되는 반도체에 관세가 붙은 일은 없다”고 전했다.
Q2. 언제 부과되나?
트럼프 대통령은 새 반도체 관세를 다음 주에 발표하고, 곧 시행한다고 밝혔다. 품목 관세가 붙게 됨에 따라 철강, 자동차와 같이 무역확장법 232조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 제품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대통령이 관세 부과 같은 긴급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앞서 철강·알루미늄은 트럼프 1기 때 조사를 마치고 부과가 시작됐고, 자동차는 당시 시행까지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조사는 모두 마쳤다. 이 때문에 트럼프 2기 들어서도 지난달부터 철강·알루미늄, 이달 들어 자동차에 25% 관세가 바로 매겨질 수 있었다.
트럼프 정부는 품목 관세를 예고한 나머지 품목 중 목재는 지난달 1일, 구리는 지난달 10일부터 조사를 개시했다. 다만 아직 반도체와 의약품은 조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1기 당시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조사는 2017년 4월 20일 시작, 이듬해 3월 23일 발효되면서 총 11개월이 소요됐다. 자동차도 2018년 5월 조사에 착수, 결정 연기 발표까지 12개월이 걸렸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232조 절차상 (조사와 검토에) 최대 1년이 걸려,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1~2개월 내 시행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듯 트럼프 대통령도 부과 시점을 ‘아주 곧(very soon)’이라고 했던 지난주와는 달리 이날엔 ‘머지 않은 미래(in the not-distant future)’라고 다소 여유를 뒀다.
Q3.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최종 관세율이 관건이겠지만, 반도체 등에 대해 대부분의 나라에 같은 수준의 관세가 붙으면 결국 인건비 등이 원가 경쟁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자국인 미국, 별개로 고율의 관세가 붙는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동일한 세율을 적용받으면, 원가를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는 나라에 생산 기지가 몰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각국 반도체 업체들이 이미 미국에 투자를 계획하는 상황에서 관세에 따른 추가 투자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트럼프의 의도와 달리 IT 생산 기반이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 몰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Q4. 상호 관세, 90국 90일 안에 협상 가능하나?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미국은 무역 파트너들과 대화를 나눌 것”이라며 “앞으로 90일 안에 90건의 거래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이미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을 찾아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협상을 이끌 USTR의 인력 규모 등을 감안하면 당장 모든 상대와 협상이 90일 안에 끝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더티 15로 지목한 주요 무역 적자국을 중심으로 협상을 마무리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전체적으로 같은 수준의 공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 수지(수출액-수입액) 적자가 1조1989억달러(약 1706조원)에 달한 가운데 상위 15국의 적자 규모는 1조2478억달러를 나타냈다. 사실상 상위 10여국에 무역 적자가 달린 것이다.
Q5. 한·미 FTA는 쓸모없어졌나?
미 정부는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상호 관세를 부과했다. 2012년부터 발효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라 거의 모든 품목에서 0% 관세율을 적용받던 우리나라로서는 하루아침에 고율 관세가 매겨진 셈이다. 일단 추가 15% 관세는 유예됐지만, 이른바 기본 관세(10%)는 이미 부과가 시작됐다.
다만 미 정부가 한·미 FTA에서 예외로 인정하는 ‘필수적 안보’를 내세워 상호 관세를 부과하다 보니 한·미 FTA를 근거로 문제 삼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모든 나라를 상대로 관세 칼날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한·미 FTA를 언급하는 건 그리 득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한·미 FTA가 사실상 무력화되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는 여전히 유리한 측면도 있다. 앞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한국은 FTA 때문에 관세 베이스가 ‘0’이어서 25% 관세만 내고 들어가지만, 경쟁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은 27.5% 관세를 맞았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0%에서 25%가 됐지만, 일본과 EU는 기존 최혜국대우 관세율(2.5%)에 자동차 관세 25%가 붙으며 27.5%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한·미 FTA 체결국이라는 점을 카드로 내세울 수 있다는 관측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