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통상 압력을 높이는 가운데, 이번 주 관세 인하를 이끌어내기 위한 한미 고위급 협의가 본격 시작된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20일 “미 워싱턴에서 미국과 2+2 ‘통상 협의’(Trade Consultation)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무역정책 책임자인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한국 측에서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여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협의는 미국 측의 제안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현재 일정 및 의제 등을 최종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미국으로 수출되는 철강·알루미늄·자동차에 대한 관세(25%)가 발효돼 수출 피해가 가시화되는 상황이지만, 이번 협상을 앞두고 정부와 업계에는 ‘신중론’이 부상하는 분위기다. 최근 일본에서 ‘저자세 협상’ 논란이 일고 있는 데다, 국내 일각에서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까지 감안해 신중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발 관세 전쟁 협상에 ‘통상 협상안’을 제시하며, 방위비 협상에는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답변을 내놨다. 한 대행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상업용 항공기 구매를 포함해 무역 흑자 축소에 대해 논의할 의향이 있다”며 “해군 조선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 역시 한미 동맹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그간 대미 관세 인하 협상 카드로 강조해 온 미국산 LNG 구매 확대와 조선 협력에 항공기 구입안을 추가로 제시한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패키지딜’로 강력히 압박 중인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서는 협의가 가능하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안보 문제를 논의할 명확한 틀이 없다”고 답하며 선을 그었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한 대행과 통화하며 요구한 ‘원스톱 쇼핑’ 방식의 협상과 거리를 두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백형선

이번 주 방미를 앞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이날 본지 통화에서 “협상을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 집권 기간 내내 관세 문제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협상은 ‘단판 승부’가 아닌 ‘장기전’으로 보고 임하겠다는 것이다. 안 장관 역시 방위비 인상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미국 측에서 먼저 방위비 문제를 논의하자는 제안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이야기가 나오면 최대한 미국 측 입장을 듣고 관계 당국에 전달해 소관 부처가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미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앞으로 계속 바뀔 수 있는 만큼 모든 카드를 공개하는 식의 협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미 관세 협상은 언제 ‘골대’가 움직일지 모르는 게임”이라며 “미 측 제안의 타당성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