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관세청은 이달 1~20일 대미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3% 급감한 61억8200만달러(약 8조7700억원)였다고 밝혔다. 4월 들어 25% 자동차 관세, 그리고 상호 관세 가운데 10% 기본 관세가 본격적으로 부과되기 시작하자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일부터 자동차 관세를, 5일부터 상호 관세 중 기본 관세를 각각 매기기 시작했다. 철강과 알루미늄에는 이미 지난 3월 12일부터 25% 관세가 적용 중이다.
미국이 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펼치고 있는 탓에, 국내 기업들이 주요 생산 기지를 두고 있는 국가로의 수출도 급감했다. 미국이 관세전쟁의 1순위 타깃으로 꼽는 중국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4% 줄어든 66억2200만달러(약 9조3900억원)를 나타냈고, 대(對)베트남 수출은 같은 기간 0.2%, 대홍콩 수출은 22.4% 감소했다. 주요국 중에 수출이 늘어난 곳은 자동차 수출이 다소 회복세를 보인 유럽연합(EU·13.8%),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출이 급증한 대만(22%) 정도였다.
◇트럼프 관세 충격 현실화되나
이날 관세청에 따르면 주요 수출 10대 품목 가운데 승용차(-6.5%), 철강(-8.7%) 등 반도체(10.7%)를 제외한 9품목이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각계에선 이른바 ‘트럼프 관세’의 충격이 현실화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홍지상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미국 정부 관세 부과의 영향이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관세정책이 급변하고 있어 기업들로서는 계약이나 선적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2012년부터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대부분 품목을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해왔다. 하지만 이제 관세 10~25%가 ‘뉴노멀’이 되면서 잔뜩 위축됐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부산항에서 제품을 실어서 보내면 미국 캘리포니아 항구까지 가는 데 2주 정도가 걸린다”며 “자고 일어나면 관세정책이 바뀔 정도로 상황이 급변하다 보니 쉽게 수출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적지 않은 기업이 관세가 부과되기 전인 지난 2~3월 ‘밀어내기’ 식으로 미국 수출을 앞당긴 사례가 있었던 것도 이달 수출이 급감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미 수출은 2, 3월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를 보이며 각각 99억달러, 111억달러를 기록했다. 또 주요 수출 품목 중 하나인 석유 제품의 단가 하락도 수출액 급감에 영향을 끼쳤다. 이달 석유 제품 전체 수출액이 작년 대비 22% 감소했는데, 지난해 4월 초 80달러대 후반이었던 WTI(서부텍사스산원유)가 이달 초엔 50달러대까지 밀린 것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요동치는 수출 전선은 장기화 대비
24일 한·미 양국 재무·통상 장관 사이에 2+2 협상이 예정돼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단판’이 아닌 수개월에서 수년간 이어질 ‘장기전’으로 예상되는 만큼 향후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수에 이어 수출까지 둔화하고 있지만, 당장 새로운 수출 시장을 찾기도 쉽지 않고, 각종 재정·통화정책도 말을 듣지 않는 형편이라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25% 관세가 부과되는 자동차는 앞으로 수출 감소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양대 수출 시장인 미국과 중국으로 수출이 모두 감소하는 상황에서 1~2년 정도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반도체까지 품목 관세가 부과되면 수출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관세 부과의 영향이 본격화하는 2분기와 3분기에는 더 큰 폭의 대미 수출 감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과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철강, 전기차, 배터리 등의 품목에선 관세전쟁이 안정될 경우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본부장은 “최종재 기준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며 “하지만 관세 부과 관련 불확실성에 따른 국제 교역량 감소 우려는 또 다른 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