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오후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 전국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김형수 지회장이 지상에서 약 30m 높이의 CCTV 철탑 위에 올라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달 15일부터 41일째다. 이들은 한화를 향해 “조선업 불황기에 삭감된 하청 노동자들의 상여금을 회복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회사는 “법적으로 원청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몇몇 민주당 의원은 “한화오션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자회견 등을 잇따라 열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가 한화를 직격했다. 당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조6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 중이었는데, 이 후보가 소셜미디어에 “유상증자로 주가가 떨어진 회사 지분을 그룹 총수가 자녀에게 증여하기로 해 증여세를 절감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 규모를 2조3000억원으로 축소시키며 물러섰다.
유상증자 전 세 아들이 100% 보유한 회사의 ‘석연찮은’ 지분 거래 등 한화가 자초한 일이란 평가도 많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한화를 둘러싼 잇따른 사건을 두고 “남 일 같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기업에 대한 강경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온 데다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재벌을 ‘적’으로 보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기저에 있다. 이 후보가 스스로를 ‘친노동’이라고 수차례 언급한 것도 노사 문제를 어렵게 만들 것이란 우려의 근거다.
◇친노조 기조와 정책의 불확실성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 후보와 그 주변의 ‘친노동’ 성향이다. 재계에선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곳곳에서 노사 갈등이 다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기업들은 윤석열 정부 때 건설노조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 대처하면서, 현장에서는 폭력 시위나 무단 점거 등 각종 불법 행위들이 상당히 줄었다고 평가한다. 만약 그가 당선돼 정권이 바뀌면 법 집행이 엄정하게 이뤄질지 의문이란 우려가 생기고 있다.
특히 올여름 전후 벌어질 임금 협상 등이 첫 번째 고비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3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경제 위기에 가까운 상황에서, 실적 악화를 우려하는 기업들은 성과급이나 임금 인상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 후보가 당선되면 노조와 정권의 압박이 동시에 가해질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에서 추진하는 노동시간 단축도 고민거리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주 4.5일제가 대표적이다. 현행 주 40시간인 법정 근로시간을 36시간으로 줄이는 게 골자다. 금요일 오후 근무 시간 4시간을 줄여, 4.5일을 만드는 것인데 장기적으로 주 4일제(32시간제)를 목표로 한다. 기업 사이에서는 “일하는 양을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것 자체가 반기업적인 인식”이라는 반응이 많다.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현재의 주 52시간제 하에서는 업종별로, 상황에 따라 일손이 부족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 규제 대상? 반기업 정서 우려
이 후보와 주변 인사들의 반기업 정서도 기업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그간 그들의 발언이나 추진했던 정책을 보면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주체가 아니라, 법 등으로 규제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보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주 52시간 등 민주당 등이 주도해온 법들의 공통점은 자본시장, 노동, 지배구조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기업에 자율성을 주면 안 된다는 인식”이라며 “이게 시장경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게 아니고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또 ‘우클릭 논란’ 등 이 후보가 어떤 정책을 펼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불확실성도 기업들의 고민이다. 이 후보가 자신이 맡고 있던 기본사회위원장 사퇴 의사까지 밝혔다가 번복한 것, 반도체특별법 쟁점이었던 ‘주 52시간 예외 허용’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판단하겠다”고 했다가 지지층 반발이 거세자 한발 물러선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