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24일 대규모 송전망을 의미하는 ‘에너지고속도로’ 구축과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에너지 공약을 내놨다. 다만 이 후보는 이날 지지층에서 선호하는 재생에너지 정책을 강조하면서도 원전(原電)에 대해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친(親)재생에너지를 밀어붙이며 ‘탈(脫)원전’ 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와는 미묘하게 다른 모습이다. 전날 이 후보 캠프의 윤후덕 정책본부장은 “원자력발전소의 비중을 유지하되 사회적 합의로 조금씩 줄여가는 것이 큰 방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른바 감(減)원전론을 다시 꺼내든 모양새다. 앞서 이 대표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대선 1호 공약으로 올린 데 이어 최근 경기 판교의 AI(인공지능) 기업체를 방문해 “AI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AI 때문에 ‘탈원전’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반발이 나오자 내부적으로 적잖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생에너지 확충에는 속도 내
이 후보는 이날 “2030년까지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면서 “2040년 완공 목표로 ‘U’자형 한반도 에너지고속도로 건설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송배전망을 육상으로 연결하면 주민 반발 등의 난관이 많아 서해와 남해, 동해의 바다로 연결해 ‘U’자 모양으로 송배전망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날 이 후보가 2030년까지 건설하겠다고 강조한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는 서해·호남 지역에서 남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추진하는 서해안~수도권 연결 HVDC(초고압직류송전망)를 말한다. 전남 해남에서 충남 태안, 서인천을 잇는 430km, 전북 새만금에서 충남 태안, 인천 영흥에 이르는 190km 구간 등 2개 노선을 약 8조원을 들여 구축하는 대형 사업이다. 정부와 한전은 2023년 발표한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서 해당 사업을 2036년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후보는 이를 6년 앞당기겠다고 한 것이다.
‘U자형 해상 전력망’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했던 것으로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향하는 송전선 건설이 늦어지자 제안하려 했던 구상이다. 이 후보는 이 송전선을 이용해 해상 풍력 등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 등 주요 산업 지대로 보내고, 전국에 RE100(재생에너지 100%)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도 밝혔다.
◇“현실 고려하지 않아” 비판
이 후보가 재생에너지 확대의 근거로 삼기 위해 무리한 비교 대상을 가져왔다는 비판도 있다. 이 후보는 이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여전히 최하위 수준”이라고 주장하며 재생에너지 확대가 시급하다고 했다.
10% 수준인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OECD 회원국 중에서 낮은 수준인 것은 맞다. 하지만 OECD 회원국 중 상당수가 풍력·수력·지열 등 재생에너지원이 풍부하고 제조업 비중이 작은 선진국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기에 적절한 근거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우리와 비슷하게 제조업이 주력인 대만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도 10% 안팎 수준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등 전력 다소비 업종을 발판으로 그동안 성장해 왔다”며 “우리 산업 구조를 유지하는 한 재생에너지 비율을 갑자기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 규모는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등에 이은 세계 6~7위권이다.
또 전국적으로 송배전망 건설이 계획보다 수년씩 늦어지는 현실에서 이 후보가 지나치게 희망적인 일정표를 제시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송배전망 없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의미가 없는 현실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과도한 장밋빛 송배전망 확충 계획을 내놨다는 것이다. 한 전력 분야 교수는 “2019년까지 짓기로 했던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도 아직 언제 완공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존 계획보다 6년이나 앞서 해저 송전망 구축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HVDC 또한 아직 기술적 검토도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RE100 산단도 날씨와 시간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출렁이는 재생에너지의 특성을 감안하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 대규모 첨단 제조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