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와 민주당이 재추진을 예고한 ‘더 독한’ 상법 개정안을 두고 재계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추진했다가, 정부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최근 무산됐다. 그런데 이 후보가 이를 두고 “이기적인 소수들의 저항”이라고 비판하며 기업이 더 큰 부담을 느끼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추가해 재입법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주가지수(코스피) 5000시대를 열겠다”며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고 했다. 그 내용으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집중투표제 활성화 등을 꼽았다.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 선임을 확대하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최근 폐기된 민주당 상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지 않았던 내용이다.
이 후보가 개미 투자자 표심을 잡기 위해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도 논란이다. 자사주는 회사가 보유한 자기 회사 주식으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자사주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은 없지만 경영권 분쟁 때 우호 주주에게 매각하면 의결권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삼성과 SK그룹도 과거 자사주를 통해 헤지펀드의 공격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한 적 있다.
국내에는 포이즌 필(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기존 주주에 싼 가격으로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이나 차등의결권(주식의 종류에 따라 의결권 수를 달리하는 제도)과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어, 자사주 ‘방패’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최근 고려아연-MBK 경영권 분쟁 사례에서 현 경영진은 일방적으로 속수무책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사 선임 때 주주가 특정 후보에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는 현재도 도입돼 있지만, 경영권 분쟁이 빈번할 수 있어 일부 기업만 도입하고 있다. 의무화되면 경영권 지분이 취약한 곳부터 혼란이 불가피하다.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현행 1명에서 추가 확대하는 안건에 대한 기업 우려도 크다. 작년 대한상의는 보고서를 통해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을 2인 이상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입법되면 지주사 체제인 상장회사는 경영권 공격 세력이 감사위를 주도하는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