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시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상호 관세 발표 이후 처음으로 열린 한미 고위급 회담에서 양국이 ‘7월 패키지(July Package)’를 마련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내주부터 실무 레벨 협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7월 패키지’는 관세·비관세 장벽 해소 및 양국 산업 협력 강화 등을 아우른 ‘관세 인하 합의안’을 만든 뒤, 상호 관세 유예가 끝나는 7월 8일 전까지 일괄 타결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양국 정부는 이번 협의에서 협상 타결 시한과 구체적 분야 합의를 이끌어 냈다. 전문가들은 “신중하게 검토하며 새 정부가 출범을 기다릴 시간을 벌었다”고 평가했다.

그래픽=양진경

◇7월 패키지, 새로 등장한 ‘환율’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24일 현지 간담회에서 “협상의 기본 틀인 프레임워크(Framework)를 마련했다”며 “양국 관심사인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 안보, 투자 협력, 통화(환율) 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해 나간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의 사례를 지켜본 우리 정부는 트럼프 미 행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강력히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지만, 이번 협의에서 방위비 관련 내용은 거론되지 않았다. 이날 트럼프 미 대통령도 기자들과 만나 “관세 협상 안건에 방위비를 포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방위비 관련 협상은 관세와 별도로 진행할 것이란 해석에 무게를 실었다.

‘거북선 주화’ 美에 선물 - ‘한미 2+2 통상 협의’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건넨 ‘한국의 주력 산업과 경제 발전 기념 주화’. 우리나라 조선의 역사와 조선업 발전을 상징하는 LNG 운반선(왼쪽)과 거북선이 새겨져 있다. /한국은행

‘7월 패키지’의 한 축인 ‘관세·비관세 조치’에서 우리 정부는 ‘상호 관세’(25%)와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에 부과되는 품목별 관세(25%)의 면제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농축산물 수입 규제, 빅테크·플랫폼 업체 관련 규제, 수입 자동차 인증 절차 완화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 무역대표부(USTR)와 미국 산업계가 수년간 ‘비관세 장벽’이라고 주장해 온 항목들이기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건 새로 등장한 ‘통화(환율) 정책’ 분야다. 이날 양국 재무장관은 ‘통화 정책과 관련한 별도 실무 협의’를 하기로 합의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무역 적자가 커지고 제조업 수출 경쟁력이 약화된 원인을 강(强)달러 현상에서 찾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등 대미 무역 흑자가 큰 세계 각국에 관세 인하를 빌미로 환율 조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본다. 한국의 외환 시장 개입 내역 정보 공개 간격 축소를 요구하는 내용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경제 안보와 투자 확대 분야에선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투자 확대, 희소 광물 공급망 협력 등이 거론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경제 안보 핵심은 공급망”이라며 “최근 중국이 희토류 수출 규제를 강화한 만큼, 해외 희토류 광산 구매·개발 협력 등 공급망 측면의 협력 강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대중 무역 제재 동참 요구를 우려하기도 한다.

◇美 ‘A 게임’ 평가, 안덕근 장관 “조선 협력 비전 주효한 듯”

양국 정부는 이번 만남을 ‘협상이 아닌 협의’라고 강조하는 등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합의 후에는 각자 유리한 방식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베선트 재무장관은 한국 측과의 협상을 마친 뒤 “한국인들은 A게임(최선의 제안)을 가져왔다”며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최상목(왼쪽)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 미 워싱턴 DC 주미 대사관에서 ‘한미 2+2 통상 협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상호 관세 유예 종료일인 7월 8일 전까지 관세 폐지 목적으로 한 ‘7월 패키지’를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우리 정부는 다른 나라에 없는 ‘조선업 협력 카드’가 미국 측에 어필했다고 보고 있다. 미 정부가 조선 산업 재건에 목말라하는 가운데, 이를 도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국가는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측이 조선 협력의 중요성을 거론한 데 대해 우리 정부가 구체적 답변을 내놓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좋아졌다”고 했다.

다만 협의 진행 속도를 둘러싸고서는 양국 정부의 미묘한 온도 차도 감지된다. 베선트 재무장관은 “다음 주 중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세부 논의를 할 것”이라며 “내 생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 정부는 “7월 전까지 신중하고 차분하게 검토해나가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