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어느 항구를 향해 배를 모는지 모르는 사람에겐 어떤 바람도 순풍일리 없다.(If a man does not know what port he is steering for, no wind is favorable to him.)”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Seneca)의 말입니다. 자동차 파워트레인(동력장치)의 미래를 논할 때 이 말을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전기차,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카, 수소연료전지차 등을 막론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달하려는 항구(목표)가 어디인지를 파악해야만, 관련 투자를 할 때 내가 조금이라도 더 순풍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답은 이것’이라고 말씀드릴 능력은 물론 제게 없습니다만, 지금 시점에서 ‘이런 방향을 생각해 가며 전체 그림을 그려보면 좋지 않을까’ 정도의 말씀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용은 3가지입니다.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LCA(Life Cycle Assessment)에 주목해야 한다
2. 하이브리드카가 전기차와 병존할 수도 있다
3. 가솔린엔진도 생각보다 오래 갈지 모른다
그럼 첫번째로 LCA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LCA라는 용어는 앞으로 점점 중요해질 겁니다. 자동차 파워트레인 향방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요. 여기서 얘기할 나머지 2가지도 LCA와 연결돼 있습니다. 이외에 수소연료전지차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긴 한데요. 이번에 말씀드릴 3가지에 비해 규모가 작고, 우선 순위에서 밀리며, 한국 상황과 관련된 별도의 긴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음 편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1.LCA(Life Cycle Assessment)에 주목해야 한다
자동차 업계에 당장 닥칠 이슈는 유럽의 배출가스 규제입니다. 내년부터 자동차회사 별로 신차(승용차)의 대당 평균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95g/km 이하로 맞춰야 하지요. 못맞출 경우 1g/km 초과할때마다 95유로(12만5000원)를 벌금으로 내야 합니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감이 안오시죠? 다시 설명해보겠습니다. 올 상반기 유럽 21개국에서 팔린 신차의 평균 CO2 배출량은 주행거리 1km 당 118.5g이었습니다. 2019년의 122g/km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임박한 CO2 배출량 감축 목표를 맞추기엔 갈길이 멉니다.
단순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평균적인 회사 A를 상정해 봅니다. 올 상반기 A사가 유럽에서 판 신차의 평균 CO2 배출량은 118.5g/km. A사는 각종 기술을 동원해 내년에 팔 신차의 예상 평균 CO2 배출량을 2020년 상반기보다 7% 이상 낮춘 110g/km에 맞췄습니다. 이게 어느정도로 낮은 수준인가 하면요. 한국에서 팔리는 차 가운데 가장 작은 기아 모닝, 쉐보레 스파크의 CO2 배출량이 딱 이 정도입니다. 따라서 유럽의 내년 배출가스 기준인 신차 대당 CO2 배출량 95g/km는 현재 한국 시장의 신차 평균 CO2 배출 상황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가혹한 기준인 것이지요. 유럽 기준대로라면, 한국에서는 내년부터 새로 팔리는 모든 차가 경차로 바뀐다 해도 기준을 못 맞춥니다. 연비가 안좋은 대형세단, 대형SUV 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포진한 ‘대형차 천국’ 한국과는 완전히 딴 세상인 것이지요.
다시 유럽 상황으로 돌아가면 말입니다. 이 A사조차도 내년 유럽의 대당 CO2배출 기준을 15g/km(110-95g/km)나 초과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차 한 대 팔 때마다 187만5000원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내년에 이 회사가 유럽에서 100만대를 판다면, 벌금만 1조8750억원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차를 파는 폴크스바겐에 수조원의 벌금이 예상되고요.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현대·기아차도 내년에 유럽에서 1조원 정도의 벌금을 맞을 수 있습니다. 현대·기아차는 현재 한국 내수에서만 큰 수익을 내고 있을뿐, 유럽을 포함한 주요 해외시장에선 사실상 적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1조원의 벌금을 맞는다면, 현대·기아차가 유럽에서 차를 많이 팔아봤자 큰 폭의 적자를 볼 가능성이 큽니다.
내년 유럽의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에서 가장 유리한 회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회사가 아니라 도요타입니다. 도요타가 작년 유럽에서 판 신차의 평균 CO2 배출량은 모든 메이커 가운데 가장 낮은 97.5 g/km였습니다. 지난 5년간 매년 평균 배출량을 줄여온 유일한 메이커이기도 하지요. 전기차만 파는 테슬라를 뺀다면, 내년에 가장 쉽게 유럽 기준을 통과할 회사로 보입니다. 반면에 2019년 현대차의 신차 당 CO2 배출량은 126.5g/km, 기아차는 121.8g/km로, 내년 기준을 크게 초과하고 있지요. 상황을 봐야 하겠습니다만, 추세로 볼 때에 현대·기아 단독으로 내년 유럽 기준을 맞추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유럽 당국에서 자동차 회사끼리 연합해 대당 배출가스 기준을 낮추는 것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FCA(피아트·크라이슬러)는 이미 테슬라와 연합했지요. 폴크바겐 등 유럽회사들, 현대·기아차 등이 내년까지 서둘러 전기차를 대거 내놓는 것도 당장 유럽에서 맞을 벌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럼 다시 도요타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도요타는 어떻게 유럽의 이 가혹한 기준을 맞춘 걸까요? 도요타는 전기차도 거의 팔고 있지 않고, 그렇다고 경차만 파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답은 하이브리드입니다. 작년 도요타가 유럽에서 판 전체 자동차 가운데 (모터가 들어간) 전동차 비율이 63%나 됐는데요. 플러그인(외부 충전 기능이 있는 하이브리드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의 중간)을 일부 판 것을 빼면, 전동차 대부분이 하이브리드카였지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도요타는 전기차를 내세우지 않고도, 가장 가혹하다는 유럽의 내년 배출가스 규제를 맞췄다는 겁니다. 물론 테슬라의 전기차는 배출가스 제로이므로, 다른 업체와 제휴해 수수료를 받아 가욋돈을 챙길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내연기관차 대표 기업인 도요타가 적어도 내년 유럽 규제에서 벌금을 맞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교훈은 ‘규제를 맞출 수만 있다면, 그 수단이 꼭 전기차일 필요는 없다’입니다. 즉 판매 차량 전체의 평균치를 맞추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기술을 사용하든 평균치만 낮출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반론도 있을 겁니다. ‘도요타가 내년 유럽 기준은 맞췄지만, 앞으로 기준이 더 가혹해지면 전기차 밖에 대안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그것도 맞을 수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바로 LCA(Life Cycle Assessment)라는 개념에 주목해야 합니다. 앞으로 LCA가 도입되면, 전기차만 규제에서 살아남는다는 가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LCA 규제란, 자동차의 생산과 에너지 생성, 주행, 폐기, 재활용 등 라이프사이클 전체에서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유럽연합(EU)의 유럽위원회가 2019년에 검토를 시작했고, 2030년부터 도입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중국도 2025년 이후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요.
다시 말해, 내년 이후로는 자동차의 배출가스 낮추기 경쟁의 축이 현재의 기업별 평균 연비(CAFE·Corporate Average Fuel Efficiency)로부터 LCA로 조금씩 옮겨가게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CAFE 기준, 즉 주행 중 상황만 평가하는 현행 규제로는 전기차의 CO2 배출량이 제로이지만, LCA에서는 제조·발전 등의 배출량이 더해집니다. 따라서 전기차의 CO2 배출량을 줄이려면, 재생가능 에너지를 사용해 차량을 조립하고 배터리를 만드는게 중요해집니다. 최근 테슬라가 LG화학에 배터리 제조시 CO2 배출량을 확인한다든지, 또 테슬라가 자사 전기차 폐차 때 나오는 배터리를 태양광 발전와 결부된 ESS(Energy Storage System)로 재활용하려 하는 것 등이 전부 LCA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LCA가 될 경우 테슬라 같은 전기차 회사가 그동안 누려왔던 이익이 줄고, 내연기관차 중에 도요타처럼 하이브리드카 비율이 높은 회사가 유리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제조시 CO2 배출량은 내연기관차의 2배에 가까운데 그 차이의 대부분이 배터리 제조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배터리 만들 때 많은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따라서 배터리 제조시 재생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LCA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데, 유럽과 달리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은 아시아, 특히 중국에선 LCA 기준으로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CO2 배출량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겁니다.
향후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가 LCA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환경보호의 명분은 물론, 유럽·중국 등이 자국 자동차 산업을 살리는데 최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는 뒤에 다시 얘기하겠습니다만, 아무튼 앞으로 자동차의 배출가스 규제가 CAFE에서 LCA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2. 하이브리드카가 전기차와 병존할 수도 있다
그러면 LCA 관점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단 전기차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의 배터리가 들어가면서, 주행 단계의 배출가스도 순수 내연기관차보다 적은 하이브리드카가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최근의 뉴스를 봐도, 행간에 들어있는 의미를 파악해보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지난 17일 영국 정부는 2030년부터 가솔린·디젤 신차 판매를 금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올 2월에 영국은 당초 2040년부터 가솔린·디젤 신차 판매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2035년으로 5년이나 앞당겼지요. 그런데 불과 반년여 만에 당시 이를 5년 더 앞당긴 겁니다. 이미 선진 각국이 2040년까지 가솔린·디젤 신차 판매 금지를 발표하고 있지만, 영국은 금지 시한을 불과 10년 앞으로 당긴겁니다.
이 내용만 보면 어떤가요? ‘영국에선 10년 뒤부터 엔진이 들어간 차는 아예 못파는구나. 내연기관은 끝났어. 빨리 전기차에 올인해야 돼’라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영국 정부 방침엔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하이브리드카도 배출가스 규제를 통과한 것 이외에는 2030년부터 신차 판매를 금지한다’입니다. 하이브리드카는 엔진이 있기 때문에 배출가스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규제를 통과한 것 이외에는 판매를 금지한다’ 즉 ‘규제를 통과하면 판매가 가능하다’는게 무슨 의미일까요? 네, 2025년부터 유럽에 도입이 예상되는 LCA 규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영국 정부 방침에는 전기차 대량 보급을 촉진하는 의도가 담겨 있지만, 하이브리드카의 경우도 판매가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입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달 27일 중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35년까지 전체 신차 판매에서 신에너지차(전기차·플러그인·수소차) 비율을 50%(이 가운데 전기차가 95% 이상), 하이브리드카 비율을 50%로 높일 계획입니다. 즉 2035년부터 순수 엔진 차량은 퇴출시킨다는 것이지만, 역으로 얘기하면 엔진이 들어간 하이브리드카가 2035년 중국 신차 시장의 50%를 차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2035년 중국 시장을 연 3000만대로 가정해 보죠. 그럼 중국에서만 연간 전기차 1500만대, 하이브리드카 1500만대가 팔린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중국도 LCA 규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은 유럽에 비해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습니다. 앞으로 비율을 높여가긴 하겠지만 유럽 수준을 빨리 따라가긴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2035년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꾼다 해도, LCA 규제, 즉 실질적으로 차량 제조·사용·폐기 전 과정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데는 효과가 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기차만이 아니라, 하이브리드카를 대량 보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입니다. 중국은 하이브리드카에 주는 혜택을 폐지했다가 최근에 다시 주는 쪽으로 바꿨는데, 이 역시 향후 LCA 규제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이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뉴스가 또 하나 있는데요. 도요타가 지난달 15일 중국 광저우자동차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도요타는 중국 지리자동차에도 하이브리드 시스템 공급을 협의 중입니다. 도요타는 지금까지 자사 하이브리드시스템을 타사에 대량 공급한 적이 없습니다. 특히 이번 중국 자동차회사와의 제휴는 단순한 부품 제공이 아니라 적극적인 기술 협력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요타가 자사 핵심기술까지 중국과 나누기로 한 것은 중국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카 시장이 폭발할 가능성을 봤기 때문일 겁니다. 중국에 기술을 조금 주더라도 도요타가 처음 만들어낸 하이브리드카 시장의 저변을 중국에서 크게 넓히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 겁니다. 중국 정부의 친환경차 정책에 협력하는 대신, 시장을 얻는 전략인 것이죠. 중국 입장에서는 도요타에 자국 시장을 좀 내주더라도, 자국에 하이브리드카 관련 서플라이체인이 완비된다면, 그정도는 수업료로 친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 이유에서인지 도요타의 중국 판매는 최근 월별 사상 최대치를 계속 경신 중입니다. 도요타의 지난달 중국 판매는 전년 동월보다 33.3% 증가한 17만5600대로 월별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전체로는 170만대 판매가 예상되고요. 앞으로 중국 하이브리드카 시장이 더 커지면, 도요타가 중국에서 연 300만대쯤 파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유럽에서도 전기차 보급 전략과 함께 본격적인 하이브리드카 개발을 병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유럽은 48볼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기본 탑재하는 쪽으로 가고 있지요. 도요타 같은 풀 하이브리드는 아니지만, 작은 배터리와 모터를 탑재해 연비를 10~15% 높이는 즉, CO2배출량을 10~15% 낮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외에도 유럽 업체들이 도요타와 유사한 하이브리드 개발까지 시작했다고 합니다. LCA 규제를 앞두고 비용 대비 효과를 감안할 때, 하이브리드가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유럽 업체들은 가솔린차에 비해 같은 주행거리당 CO2 배출이 적은 디젤차로 당분간의 규제를 이겨내려 했지만, 2015년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 이후 유럽에서조차 디젤 판매가 급감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유럽 업체들로서는 전기차도 많이 만들어야 하지만, 배터리 생산이 따라주지 못하는 문제 등이 있어 당장 풀 하이브리드까지 검토해야 하는 상황인거죠.
중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2035년 신차 시장의 절반을 순수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지만요. 전세계 시장의 경우는 2030년 전체 신차 시장의 20~30% 가량이 전기차가 될 것이라는 것이 평균 전망치이고요. 업계 예측을 종합해 볼 때 2035년이 되어도 전기차가 전체 시장의 절반까지 도달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 해도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은 맞으니 대비를 잘 해야겠지만, 2035년 기준으로도 신차 시장의 최소 절반은 여전히 엔진이 탑재된 자동차가 팔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니, 이에 대한 대비도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현대차의 경우, 도요타·혼다에 이어 비교적 일찍 하이브리드카를 개발·보급해 관련 기술을 축적해 놓은 상태인데요. 최근 현대차 내부 전동화전략 부서에서 하이브리드카를 아예 빼고, 전기차·수소연료전지차만 집중하기로 한다든지, 현대 최초의 하이브리드 전용모델을 단종시킨다든지, 차세대 제네시스 모델군을 완전 전기차로 모두 바꿀 방침을 세우는 등, 지나치게 전기차·수소차 위주로 너무 급하게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 되기도 합니다. 내부적으로 깊은 검토와 전략 수립이 있겠지만, 이왕 잘 가꿔놓은 하이브리드카 기술을 사장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3. 가솔린엔진도 생각보다 오래 갈지 모른다
지난달 27일 중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035년에도 중국시장에서 팔리는 차의 절반은 하이브리드카, 즉 엔진이 들어간 차가 될겁니다. 또 앞서 영국 정부가 2030년까지 내연기관차를 퇴출시키겠다는 발표에도 하이브리드카의 생존 가능성이 숨어 있지요.
이것에는 LCA 면에서 하이브리드카가 전기차와 맞설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것인데요. 이 전제에는 또하나 중요한게 있습니다. 하이브리드카의 배출가스를 더 줄이는 것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성능을 더 높이는 것 뿐 아니라, 엔진 열효율을 더 높이는 것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솔린엔진 열효율은 40%가 한계, 즉 연료가 가진 에너지 가운데 차를 굴리는데 사용되는 비율이 40%를 넘지 못한다는게 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효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면 그만큼 전기차 대비 LCA 규제에서 유리해지겠죠. 엔진 제조과정에서 CO2배출을 늘리지 않으면서, 주행 단계의 배출가스를 줄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미 도요타·혼다·마쓰다 등 일본 업체들이 가솔린엔진의 열효율 40%를 넘긴 엔진을 장착한 차를 시판하기 시작했고요. 열효율 50%를 목표로 개발이 진행중인데, 양산차 적용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 업체들도 가솔린엔진 열효율 45%, 혹은 50%를 목표로 기술 개발이 한창 진행중입니다. 중국의 지리자동차도 영국 기술서비스기업 리카르도(Ricardo)와 열효율 45%의 가솔린엔진을 개발했다고 최근 발표했습니다. 독일 부품회사 말레도 열효율 42.5% 엔진을 개발했고요. 심지어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조차도 고효율 엔진 개발에 뛰어들어, 아직 개발 단계이지만 열효율 50% 엔진을 만들었다고 밝히기도 했지요. 미국 에너지부(DOE·Department Of Energy)가 2016년 시작한 ‘내연기관 열효율 향상 컨소시엄’도 가솔린엔진 열효율 50%를 목표로 한창 개발이 진행 중입니다.
전기차를 외면하고 내연기관에 집착할 일은 아니지요. 물론 전기차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퇴물인 줄 알았던 가솔린엔진의 기술개발 여지, 가능성이 아직 충분하고, LCA 규제 시행 때에 가성비 면에서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배출가스 규제만 맞추다간 자동차 회사의 파산이 속출할 수도 있으니까요. 더 낮은 비용으로 혹독한 배출가스 규제를 맞춰나갈 섬세한 전략을 짜는데는 엔진 기술이 앞으로도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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