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에서 ‘무상수리 고객통지문’을 받았습니다. 개인적 내용을 써도 되냐고 하시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꼭 개인적인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또 자동차 회사와 소비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통지문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대상 차종은 아반떼 2005년8월17일~2010년8월17일 생산분, i30 2006년11월7일~2010년12월13일 생산분. 뉴스에 따르면 해당되는 국내 차량은 49만대 정도라고 합니다. 통지문을 받은 저는 당연히 이 대상에 해당되는 차를 타고 있습니다. 수리 이유는 ‘일부 노후차량에서 ABS(브레이크잠김방지장치)/ESC(전자식자세제어장치) 모듈 전원부에 오일 또는 수분 등의 이물질이 장기간에 걸쳐 미세 유입’되기 때문이라고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당 ABS/ESC 모듈을 교환해주는 줄 알았습니다. 자동차회사가 제게 무상수리를 통지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통지문엔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가 생산 판매한 귀하의 차량에서 운행중 ABS/ESC 전원부 관련 경고등 점등시 ABS/ESC 모듈 회로 손상이 진행되고 있을 수 있어, ABS/ESC 전원부 관련 경고등이 점등된 차량에 한하여 조치해 드리는 무상수리를 아래와 같이 실시합니다’라고요. 그리고 ‘점검 후 전원부 관련 경고등이 아닌 경우, 보증 기간 만료에 따라 유상수리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라고도 써 있더군요.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우선 경고등이 떠야 수리 대상이다. 그리고 경고등이 뜬다 해도 전원부 관련이 아닌 경우에는 유상수리로 진행될 수 있다’입니다.
고민이 됐습니다. 제 경우 최근에 ABS/ESC 경고등이 들어온 적은 있지만, 현재는 들어오지 않고 있거든요. 그러면 대상이 아닌 것일까요? 그래서 현대차 고객센터에 문의해 보았습니다. 답은 “점검은 받을 수 있지만, 점검 후 관련 이상이 확인돼야만 무상수리를 받을 수 있다”였습니다. 즉 관련 부품 이상 가능성을 통지 받았지만, 일단 점검을 받아봐야 무상수리인지 유상수리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죠.
일부러 시간을 내 정비센터를 방문했는데 무상수리가 안된다고 한다면, 조금 그렇겠지요? 그래서 아예 방문하지 말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통지문 말미에 ‘조치를 아니하는 경우 ABS/ESC 모듈 회로 손상이 진행될 수 있다’고 쓰여 있더군요. 회로 손상이 진행되면 어떻게 된다는 내용은 없지만, 수리 통지문까지 보낸걸 보면 가벼운 사안은 아닌 것 같아 불안해 졌습니다.
사실 현대차의 ABS/ESC 모듈 결함 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올해 2월에 미국에서 해당 기간의 현대차 아반떼(미국명 엘란트라)와 i30(미국명 엘란트라 투어링) 43만대를 리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해당 차량에서 화재 사건이 여러차례 발생했기 때문이었지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해당 차량은 엔진이 돌지 않을 때도 전기가 공급되는 ABS 모듈이 탑재됐는데, 모듈에 수분이 유입될 경우 회로 단락이 발생하고 심할 경우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지목됐습니다. 따라서 현대차는 해당 차량을 모두 리콜해 엔진이 꺼졌을 때는 전원을 차단하는 부품을 추가했고요. 이후 한국에서도 같은 대상 차종에 대해 전원 차단 부품을 넣어주는 리콜이 시행됐지요.
그런데 이번에 또 비슷한 건으로 ‘선별 무상수리 형식'의 통지문이 온 것입니다. 왜 같은 원인으로 처음에는 리콜 통지가 오고, 이번에는 다시 무상수리 그것도 선별적인 무상수리 통지가 온 것일까요?
리콜과 무상수리는 완전히 다른 것이죠. 리콜과 무상수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안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리콜은 안전에 치명적인 부품에 문제가 생긴 경우, 제조사가 안전 문제에 관한 결함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이를 무상으로 고쳐주는 것입니다. 무상수리는 안전에 치명적 결함이 아니어서 리콜 대상은 아니지만,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제조사가 무상수리해주는 조치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사실 리콜 대상인데도 공개적 고지 의무가 없어 대중의 눈을 피하기 좋은 무상수리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기도 했지요. 따라서 이번 ABS/ESC 모듈 결함 건의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같은 사안인데 왜 처음에는 리콜을 해놓고 이번에는 무상수리, 그것도 선별 무상수리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현대차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현대차는 우선 이번 무상수리가 1차로 취했던 리콜 건 즉 전원차단 부품을 추가했던 조치 이후의 후속인 것은 맞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해당 차종의 화재사건이 발생한 이후, 그 원인으로 ABS/ESC 모듈에 수분이 유입될 경우 회로 단락이 발생하는 것이 지목됐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래서 현대차는 해당 차량을 모두 리콜해 엔진이 꺼졌을 때는 전원을 차단하는 부품을 추가로 집어넣은 것인데요. 이번 무상수리는 첫번째 리콜조치가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됩니다. 전원 차단 부품을 추가했지만, ABS/ESC 모듈 내부에 수분이 유입돼 회로가 단락이 되고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지요. 즉 첫번째 리콜 조치로 근본 원인 해결이 안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추가 조치를 한 것인데, 리콜을 하게 되면 다시 세계적으로 문제가 커질 수 있으니, 한국에서 점검을 한 뒤에 선별적으로 무상수리를 해주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좀 이상합니다. 지난번 리콜 조치로 문제가 해결됐다면 그걸로 끝내야 될 사안이지요. 만약 리콜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즉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ABS 모듈 내부 수분 유입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모든 차를 정비센터로 오게 만든 뒤 당장 증상이 나타나는 것만 고쳐줄 것이 아니라, 지난번 리콜과 마찬가지로 일괄 수리를 해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현대차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번에 또 2차 리콜을 하게 되면, 1차 리콜 이어 화재 위험으로 전세계에서 여러 차종을 동일 결함으로 다시 리콜하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으니, 일단 조용하게 1차 리콜에서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것, 즉 ABS 모듈 내로 수분이 유입되는 상황을 확인하고, 문제가 있을 것 같은 차만 모듈 전체를 바꿔주는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래도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지난 리콜에서 문제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해결에 나서는 것인데, 조용히 무상수리에 나선다는 것이 말입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많은 차종을 리콜한 원인인 ABS/ESC 모듈 수분 유입 문제(그에 따른 회로 손상, 화재 발생 가능성)가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 이를 선별 수리 방식으로 대처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은 것일까요? 근본 원인 파악도 제대로 안돼 있는데, 당장 증상이 나타난 차만 다시 고쳐준다게 말입니다. 화재 위험으로 이미 전세계적으로 리콜된 건에 대한 사실상의 2차 리콜(형식은 리콜 대신 무상수리이지만)인데, 당장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수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씨를 안고 계속 타야 한다면 불안이 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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