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뉴욕 증권거래소(NYSE)의 모습

“‘저금리'가 만든 비옥한 땅 위에 ‘코로나 백신, 미 대선 종료, 재닛 옐런 재무장관 내정’이라는 강력한 비료가 더해지니 증시가 풍년일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유럽, 신흥국 증시가 모두 걷잡을 수 없이 오르자 시장에서는 “주가가 떨어질만한 이유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극심한 코로나 확산세는 여전하고, 올해 벼랑 끝으로 몰렸던 에너지·항공·여행 관련 업종들의 실적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투자자들은 넘쳐나는 돈의 힘을 등에 업고 가파른 경기회복 가능성에 통 크게 ‘베팅’하고 있다. 하지만 실물경제가 본궤도에 올라오지 않는 상황에서 풀린 돈과 기대감만으로 ‘상승 랠리’를 이어가기는 어렵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코스피 2600 넘자, 다우지수는 3만선 고지 밟아

지난 23일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 2600선을 돌파하자마자, 글로벌 증시를 이끄는 미국 뉴욕에서도 ‘낭보’가 날아들었다.

30개 초대형 블루칩(우량주)으로 구성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124년 역사상 최초로 3만선 고지를 밟은 것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각) 다우존스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454.97포인트(1.54%) 오른 3만46.24에 마감했다. 2017년 1월 2만선을 넘은지 4년도 안돼서 3만선을 돌파한 것이다.

다우 지수는 1896년 출범 후 1만선을 뚫는데 103년(1999년 3월)이 걸렸으나 이후 18년 만에 2만선 고지에 오르는 등 상승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이날 S&P 500 지수도 전거래일 대비 57.82포인트(1.62%) 상승한 3635.41에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156.15포인트(1.31%) 상승한 1만2036.79로 거래를 마쳤다.

같은 날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 주요국 증시도 일제히 1%대 상승세를 보였다. 25일 코스피 지수는 이틀 연속(23~24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음에도 개장 후 상승 흐름을 이어가다가 오후 1시 넘어 하락세로 전환하면서 0.62% 내린 2601.54에 거래를 마쳤다.

◇돈의 힘에 ‘미 대선 종료, 코로나 백신 호재’ 더해져

이달 들어 각국 증시는 너나 할 것 없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미국 다우존스 지수가 13.4%, 범유럽 지수인 유로스톡스가 18.6% 오른 것을 비롯해 일본 닛케이와 한국 코스피 지수도 14% 넘게 상승했다.

코로나 폭락 이후 글로벌 증시가 ‘V자 반등’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저금리’가 있다. 지난 3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걸쳐 빠른 속도로 번지면서 경제가 꽁꽁 얼어붙었고, 각국 중앙은행은 큰 폭으로 금리를 내리는 긴급 처방을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은 금리 인하뿐 아니라 대규모 자산 매입과 대출 프로그램까지 운영하며 대대적인 ‘돈 풀기’에 나섰다.

금리가 낮아 채권과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해서는 돈을 버는 것이 어려워지자 막대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초저금리 상황으로 “주식과 채권 투자 비율을 6대4로 가져가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막대하게 풀린 돈이 주식을 싼 값에 쓸어 담으며 역대급 상승장을 만들었으나 지난 9~10월에는 코로나 확산 장기화와 미 대선을 앞둔 불안감이 커지며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이달 들어 미 대선이 끝나고 예상보다 빠르게 조 바이든 당선인 체제가 구축된데다 코로나 백신 개발이 막바지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시장 친화적인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이 바이든 행정부의 재무장관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국내 증시는 원·달러 환율 하락세까지 더해지면서 외국인들이 15거래일 연속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은 이달 코스피에서 7조원 넘게 순매수했다.

◇”장밋빛 전망 속 비관론도 적지 않아”

시장에는 긍정적 전망이 넘친다. 2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월가 애널리스트 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애널리스트들은 내년 말까지 다우존스와 S&P 500 지수가 평균 9~10% 더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내년 말 S&P 500 지수가 지금보다 20% 가까이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JP모건은 내년 말까지 23%가 더 오를 것으로 본다.

월가의 대표 강세론자인 제레미 시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24일 미 CNBC에서 “시장 전체가 내년에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증시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현재 주가 수준은 미래의 경기 회복을 과도하게 선반영한 상태이고, 지수 상승을 이끈 대형 기술주들의 주가가 앞으로 더 크게 오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백신 개발 기대감으로 최근 항공주 주가가 많이 올랐지만, 24일 국제항공운송협회가 “올해와 내년 세계 항공업계의 손실 규모가 1570억달러(약 174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경기 회복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월가의 억만장자 투자가인 레온 쿠퍼맨은 최근 CNBC에 출연해 “장기적으로 월가 전망과 반대되는 의견을 갖고 있다”며 “파티가 끝나면 누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