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애플이 구글 안드로이드의 급소를 찌르는 무기 두 가지를 내놓았습니다. 지난 8일(한국시각) 새벽 열렸던 애플의 개발자 대상 행사 ‘WWDC 2021’에서였습니다.
첫번째 무기는 애플의 장점으로 꼽히는 애플 기기 간 연결성의 끝판왕 ‘유니버설 컨트롤’이었습니다. 하나의 키보드·마우스로 맥 컴퓨터와 아이패드를 제어하고, 각 기기 화면도 무선 모니터 수준으로 연동되게 하는 거였죠. 아이패드에서 찍은 영상을 맥북에 이어 아이맥까지 드래그해 이동하는 것을 보여줬는데요. 애플이 굳이 깜짝 놀랄 새 하드웨어를 내놓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제품군 전체의 매력을 높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두번째 무기는 첫번째에 비해 당장 눈에 띄는건 아니지만, 두고두고 구글을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는 것. ‘앱 프라이버시 리포트’였습니다. 앱이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종류나 빈도를 사용자가 감시할 수 있는 기능을 차기 OS(iOS15)에 도입한다는 거였죠. 앱에 제공하는 개인정보를 사용자가 스스로 제한할 수 있어서, 인터넷광고 업계의 과도한 개인정보 활용에 제동을 걸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iOS15 등의 설정 화면에 앱의 개인정보 수집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앱 프라이버시 리포트’ 항목이 추가됩니다. 이를 통해 각 앱이 사용자의 위치정보나 사진·카메라·마이크·알림장 등의 개인정보에 언제 접근했는지를 1주일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또 개인정보가 앱을 통해 어떤 외부 웹 사이트와 공유됐을 가능성이 있는지도 표시해 줍니다. 사용자가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싶지 않을 경우 OS 설정 화면에서 각 앱을 선택해 데이터 제공을 중단할 수 있습니다.
앱 개발자가 모은 개인정보는 각 개인에게 타겟광고를 보내거나 광고효과를 측정하는 도구로 활용돼 왔지요. 2018년에 터진 페이스북의 8700만 명분 개인정보 유출사건 등을 계기로 소비자의 프라이버시 의식이 높아지고 기업에 의한 개인정보 수집에 투명성을 요구하는 규제 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애플은 원래부터 개인정보 중시를 자사 제품의 매력 중 하나로 어필해 왔는데요. 차기 iOS에서 그것이 극대화되는 것이죠. 애플의 자체 브라우저 사파리 등의 앱에서는 인터넷 광고업계에서 개인을 특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IP 주소를 숨기는 설정도 할 수 있고요. 애플 전자메일 앱에선 사용자가 수신한 메일을 언제 열었는지를 송신자가 알 수 없도록 하는 등 더 강력한 프라이버시 보호 대책이 들어갑니다. 랜덤 메일 주소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메일을 보내는 사람에게 평상시 본인이 사용하는 주소를 알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애플, ‘유니버설 컨트롤’ ‘앱 프라이버시 리포트’라는 2대 무기로 구글의 급소 찔러
애플의 이런 조치는 애플 제품군의 매력을 한층 더 높일 수 있습니다. 프라이버시 문제는 특히 선진국이나 소득이 높은 계층에서 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요. 특히 일본의 경우는 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 점유율이 50%에 가까울 정도인데요. 애플의 디자인·성능 때문일 수도 있지만, 프라이버시를 극도로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성향과 애플의 정책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애플이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는 것은 창업자 스티브 잡스에서부터 내려오는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인터넷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킨다’는 것은 애플 제품군의 매력을 높이는 최적의 방법일 뿐 아니라 안드로이드가 따라하기 어려운, 즉 안드로이드의 맹점을 찌르는 최상의 공격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WWDC 2021’이 열리기 3주 전인 5월18일의 구글 개발자 회의만 봐도 극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구글도 올 가을 내놓을 예정인 OS ‘안드로이드 12’의 베타버전 발표와 동시에 프라이버시 강화를 내세우긴 했지요. 하지만 구글이 어떤 회사인가요? 광고사업이 수익의 기둥입니다. 애플과 같은 정책을 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의 프라이버시에서 논쟁거리인 단말기 고유 ID 이용을 예로 들어보죠. 애플은 아이폰 등에 할당한 ‘IDFA(IDentifier For Advertisers)’라 부르는 단말기 ID에 대해 올해 4월 공개한 ‘iOS 14.5’부터 규제를 시작했습니다. 앱의 제공자나 광고 네트워크 운영자가 IDFA를 확보하면, 각 사용자의 기호를 분석하거나 이력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요. 애플은 우선 iOS 14.5에서 앱 마다 유저에게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현재 각각의 앱에 대해 IDFA 이용을 사용자가 허락하는 비율은 10% 이하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때문에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맹렬하게 항의하기도 했었죠. 아이폰에서 페이스북 사용자의 패턴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게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럼 구글의 차기 OS인 안드로이드 12는 어떨까요? 구글 안드로이드폰에도 애플 iOS의 IDFA와 같은 ‘advertising ID’라는게 있는데요. 아직은 별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단말기의 ID를 애플처럼 강력하게 보호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업군을 갖고 있긴 하지만, 구글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광고회사이니까요. 전체 매출에서 광고 부문 비중이 80%에 달합니다. 구글이 애플처럼 단말기 ID 접근을 제한하게 되면, 자사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요점은 ‘제품간 연결성, 프라이버시라는 두 측면에서 애플 제품의 매력이 더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구글 안드로이드 기반은 태생적으로 애플만큼 연결성·프라이버시를 극대화하기 어렵다. 애플은 이런 구글의 약점을 맹공격해 자사 제품 생태계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한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중국의 탈 안드로이드 시도와 애플의 약진에 고민 깊어지는 구글
그렇다면 전세계 모바일 제품 판매 1위 삼성전자는 앞으로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요? 양대 모바일 플랫폼 기업인 애플과 구글에 대해 삼성은 독특한 위치에 있지요. 애플에 대해서는 최대 부품공급사입니다. 작년 말 전자제품 분해분석 전문업체 포멀하우트 테크노솔루션즈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아이폰 12에 공급하는 부품의 원가 비중이 전체의 23.9%에 달했습니다. 아이폰 12의 부품 공급업체 중에 비중으로 단연 1위고요. 단순 계산하면, 애플이 아이폰 12 한 대 만들 때마다 삼성에 부품값으로만 10만원 가량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었습니다.
반면 구글에 대해 삼성은 안드로이드 OS가 탑재된 모바일 제품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 파는 회사이죠. 올해 4월까지의 이전 1년간 모바일기기의 점유율을 보면 삼성이 28.2%, 애플이 27.0%로 삼성이 1위입니다.
따라서 안드로이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삼성의 전략은 명확합니다. 애플에는 기존의 최대 공급사 지위를 앞으로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고요. 한편으로는 안드로이드 기반 자사 제품의 매력을 어떻게든 높여서 애플을 추격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 4월까지 이전 1년간 모바일기기 점유율은 삼성이 28.2%, 애플이 27.0%이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지요. 겨우 1.2%포인트 차이입니다. 게다가 애플은 사실상 프리미엄 제품만 만들기 때문에, 매출에서는 애플이 압도적 1위입니다. 게다가 삼성은 전년보다 점유율이 2.4%포인트 떨어진데 비해, 애플은 2.0%포인트 올랐습니다. 애플이 수익성이 가장 높은 프리미엄급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당 시장의 장악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삼성만 위기인게 아니라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맹주인 구글로서도 큰 위기입니다. 지난 4월까지 이전 1년간의 세계 모바일 OS 점유율을 보면, 안드로이드가 72.2%로 여전히 iOS를 압도하긴 했지만, 전년과 비교하면 안드로이드는 2.2%포인트 줄었고, iOS는 26.99%로 2.0%포인트 늘었습니다.
특히 스마트워치만 따지면 구글과 애플의 위치가 완전히 역전됩니다. 애플워치 운영체제 ‘워치(Watch) OS’는 이미 세계시장의 3분의 1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프리미엄급임을 감안할 때 놀라운 점유율이죠. 반면 애플의 대항마 구글의 스마트워치 운영체계 ‘웨어(Wear) OS’의 지난 1분기 점유율이 고작 3.9%에 불과했습니다. 스마트워치 시장만 놓고 보면, 애플이 압도적인 점유율 1위, 구글은 듣보잡 수준인 것이죠.
구글 입장에서 또 하나의 큰 고민이 있는데요. 중국 화웨이가 지난 2일 독자 OS를 내놓은 것입니다. 화웨이는 이날 공개한 OS ‘하모니’를 올해 말까지 자사제품 2억대, 타사 제품 1억대 등 총 3억대에 탑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제재로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된데 따른 고육책이지만, 이것이 중국이나 화웨이 입장에서 전화위복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화웨이의 OS독립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현재로서는 다른 중국 스마트폰 업체 대부분이 안드로이드 OS 를 탑재하고 있지요. 삼성도 독자 OS ‘타이젠’을 개발해 구글로부터의 독립을 노렸지만 사실상 실패했듯, 기술력과 의지가 있다 해도 안드로이드 OS에서 독립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화웨이는 하모니 OS가 단순한 ‘탈(脫)안드로이드’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PC 시대의 OS가 윈도(MS), 스마트폰 시대의 OS가 iOS(애플)와 안드로이드(구글)였다면, 하모니는 다가오는 만물 인터넷(IoE·Internet of Everything) 시대를 위한 OS’라는 거죠. 하모니를 쓰면, 스마트폰·스마트워치부터 가전·자동차, 나아가 사무실, 집, 교통인프라, 공장까지 각 디바이스 간의 연결이 극대화된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성공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이긴 하지만, 중국은 공산당 중심의 강력한 계획경제가 살아있고, 또 14억 인구의 세계최대 시장을 가졌습니다. 현재는 어쩔 수 없이 보급에 나선 측면이 있지만, 만약 하모니 OS가 중국 IoE 시장에서 주도적 플랫폼으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화웨이나 어떤 중국 기업이 스마트폰 판매 1위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성취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모니OS로 중국의 모바일생태계가 통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화웨이를 죽이려던 미국의 의도와 달리, 결과적으로는 중국의 모바일 생태계 독립, 게다가 모바일 뿐 아니라 모든 디바이스가 하나의 통합 OS로 엮이는 IoE 생태계를 중국이 가장 먼저 구축할 수 있도록 미국이 도와준 꼴이 될 수도 있지요. 그렇게 된다면 구글은 중국 모바일 시장에서 OS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삼성도 애플처럼 OS·반도체·최종제품의 3각 체제에서 구글과 ‘원팀’ 고려해야
구글로서는 위기입니다. 중국은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떨어져나갈 우려가 있고, 애플 생태계는 점점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글 입장에서도 안드로이드 생태계 최대의 디바이스 제조사인 삼성전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지요.
구글도 애플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모바일 생태계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그것을 이후의 모빌리티 생태계로 확장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모빌리티 생태계, 즉 외부와 전면적인 통신이 되고 소프트웨어적으로 차량의 거의 모든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카의 플랫폼을 장악하려면, 선결 과제가 모바일 생태계에서 제품간 연결성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지금 애플이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과정이지요. 모바일 생태계와 모빌리티 생태계의 연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스마트폰이고요. 또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 스마트워치입니다.
구글이 5월18일 자사의 개발자 행사에서 갤럭시워치의 OS인 ‘타이젠’과 구글의 스마트워치용 OS인 ‘웨어OS’를 통합한다고 밝힌 것도, 구글 OS 기반의 스마트워치 제품력을 강화해나가는게 시급하기 때문일텐데요. 애플워치의 독주를 방치할 경우, 단순히 스마트워치에서만 밀리는게 아니라 우선 건강·의료 관련 IT서비스 분야에서 애플에 뒤지게 될테고요. 스마트워치가 모바일과 모빌리티 생태계를 연결하는 열쇠·창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미래의 모빌리티 생태계 장악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죠.
중국이 구글 생태계에서 떨어져나가려 하고, 애플 생태계는 구글이 따라오지 못할 수준으로까지 도망가려 합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에 맞서 놀라운 스피드로 세계최대 모바일 생태계를 만들어낸 구글이 이를 방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럴 때 구글에 가장 큰 우군이 되어줄 제조사는 삼성일지 모릅니다. 양사간 워치 OS 통합을 통해 삼성이 내놓을 차기 갤럭시워치가 시작이 되겠지요. 헬스·의료 분야, 그리고 자동차와의 연결 등에서 애플워치에 맞설만한 수준 혹은 능가할 수준의 제품을 내놓아야만 애플과의 미래 전쟁에서 승산이 있을 겁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이 있는데요. 삼성이 애플에 맞서 안드로이드 기반의 자사 모바일기기 매력을 더 높이려면, 삼성과 구글의 협력이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더 긴밀하게 이뤄져야만 한다는 겁니다. 구글과 삼성이 협업 정도가 ‘원팀(one team)’ 개념의 훨씬 더 긴밀하고 집중적인 공동개발을 하지 않고는 이번 WWDC에서 보여진 애플의 제품간 연결성이나 완성도에 맞서는게 앞으로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단순히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받아 쓰는 제조사가 아니라, 애플처럼 OS, 핵심 반도체, 최종제품이라는 3개 기둥 모두에서 구글과 원팀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들어보는건 어떨까요? OS·반도체·최종제품을 모두 통합시킨 애플에 맞서려면 삼성·구글도 애플과 같은 체제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특히 구글은 OS에 이어 최근에 독자 칩까지 개발하고 있지요. 삼성은 OS가 약한 반면, AP의 설계·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고요. 최종제품 제조에 대해선 구글이 갖지 못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요.
따라서 삼성이 구글을 오히려 설득해 보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겠네요. 안드로이드가 오픈된 형태의 OS이긴 하지만, 점점 더 강해지는 애플 생태계에 맞서 구글이 미래시장을 장악하려면, 애플처럼 구글·삼성이 OS·반도체·최종제품의 모든 단계에서 하나의 회사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입니다. 안드로이드 보급 초기와 마찬가지 상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강화해야 하는 구글의 고민을 삼성이 덜어주는 형태로, 삼성이 구글에 적극적으로 역제안한다면, 약진하는 애플 제품 생태계에 대한 반격, 혹은 미래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의 해결 방안을 일부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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