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철원

지난 11일 중국 당정 최고기관인 공산당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이 ‘법치정부 건설을 위한 5개년 시행 요강’을 발표했다. 중앙과 지방정부가 향후 5년간 정책 수립과 입법에 있어 반드시 따라야 할 지침을 담은 이 문건에는 2015년 나온 1차 5개년 요강에는 없었던 핀테크·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 같은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문건이 나오자 중국 빅테크 업계엔 공포감이 번졌다. 한 현지 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최근 테크 기업 때리기가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적인 청사진에 따른 것이라는 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본격적인 인터넷 테크기업 죽이기에 나섰다. 급격한 사업 축소나 폐업까지 초래할 수 있는 초강력 규제를 잇따라 쏟아내고 천문학적 과징금까지 물리고 있다. 중국은 그간 경제발전·기술육성을 위해 모든 혜택을 몰아주며 테크 기업을 키웠고 이들을 앞세워 미국의 기술 패권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거대해진 테크기업들이 당과 정부에 필적하는 ‘재벌’로 거듭나자, ‘당(黨)을 능가하는 자본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테크 기업들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과 거대한 내수 덕분에 손쉽게 성장해온 중국 테크 기업들은 저항 한번 못 하고 굴복하고 있다.

◇광장으로 끌려나온 빅테크들

지난달 16일 중국 최대 승차 공유 업체 디디추싱 본사에 7개 부처 관계자로 꾸려진 특별 조사팀이 입주했다. 정부의 반대 의견에도 뉴욕 증시 상장을 강행했다가 중국 앱장터에서 퇴출된 지 2주 만이었다. 조사팀은 사무실에 자리를 잡자마자 중요 서비스들을 점검한다며 기사와 승객 간 채팅 기능 등을 중단시켰다. 불편해진 서비스에 이용자들의 불만은 커졌고 그러자 T3추싱, 차오차오추싱 같은 후발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쿠폰을 뿌리며 이용자를 채가기 시작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승차 공유 시장의 90%를 차지하던 디디추싱의 지배력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빅테크 죽이기' 2020년 11월~2021년 8월 과정

중국 정부는 디디추싱 말고도 각 분야 1위 빅테크 기업들을 일제히 때리고 있다. 지난달 12일 중국 관영 신화망도 ‘너무 큰 나머지 무너질 수 없는(Too big to fail) 기업은 없다’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당과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면 제아무리 덩치가 큰 기업도 단칼에 잘라내겠다는 것이다. 중국 테크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정부를 공개 비판한 뒤 테크 업계 분위기는 지식인과 기업인을 광장으로 불러내 탄압하던 마오쩌둥 시절처럼 살벌해졌다”고 했다.

일례로 중국 음식 배달 시장의 67%를 차지하는 메이퇀뎬핑도 최근 폭탄 수준의 규제에 직면했다. 지난달 26일 당국이 배달 기업들에 “배달 기사를 직고용하라”는 초강력 규제를 발표하자, 주가가 이틀 동안 29% 이상 폭락했다. 최근엔 당국이 10억달러(약 1조1500억원) 규모의 반독점 과징금도 물릴 계획이라는 소문도 퍼졌다.

중국 메신저 시장의 90%, 게임 시장의 56%, 음악 시장의 73%를 차지하는 텐센트도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지난 7일 중국 검찰은 이 회사의 메신저 앱 위챗이 청소년의 권익을 침해했다며, 검찰 사상 처음으로 기업 상대 공익 소송을 제기했다. 중 당국은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하루 1~2시간으로 축소하는 법안을 내놓아 텐센트의 주력 사업인 게임 산업을 옥죄고 있고 ‘독점 음원 판권을 포기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거대한 자국 시장이 발목 잡는 ‘독’으로

일각에선 빅테크 규제가 시진핑 장기 집권을 위한 사상·여론 통제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관영 매체 경제참고보는 “중국 국영 투자 기금이 인터넷 기업의 주요 투자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종 앱과 사이트를 운영하는 빅테크 이사회를 정부가 장악해 반정부적인 여론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중 당국이 최근 청소년 사교육을 금지하며 에듀테크 기업들을 존폐 기로로 내몬 것도 청소년 대상 정부 미화 교육을 강화하려는 계산이 깔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들은 정부의 조치에 일말의 반항조차 못 하고 있다. 이들 기업 대부분이 중국 내수에서 대부분 매출을 올리기 때문에 자국 시장을 잃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폐업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알리바바의 주요 쇼핑몰 타오바오·티몰은 매출 80% 이상이 중국발이다. 디디추싱은 일본·유럽 등 해외로 확장을 시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