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판매 톱10 차종의 차급(車級)을 분석했더니 한국이 유럽·일본은 물론 미국·중국보다도 중·대형차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대부분이 CO₂) 배출량도 늘고 있다. ‘2020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배출량은 9990만t(톤)으로 5년 전인 2014년의 8870만t, 10년 전인 2009년의 8370만t보다 각각 13%, 19% 증가했다. 국내 소비 성향과 산업 경쟁력 유지 등을 감안하더라도, 자동차 부문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추세에 역행할 경우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하는 나라에서 들어오는 제품에 사실상의 관세를 매기는 ‘탄소국경세(CBAM)’ 제도를 2023년부터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 신차 판매 톱10 중 중·대형 비율 80%… 주요국 중 가장 높아

올 상반기 국내 신차 판매 톱10 순위를 보면, 1위 그랜저를 포함해 중·대형차가 80%를 차지했다. 준중형은 2종(3위 아반떼, 9위 투싼)뿐이었고 경·소형은 한 차종도 없었다. 톱10 차종은 전부 가솔린·디젤 중심(일부만 하이브리드도 선택 가능)이었다.

상반기 국내 시장의 특징은 대형 SUV와 하이브리드카의 증가였다. 대형 SUV는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한 20만대, 하이브리드카는 71% 증가한 11만3000대가 팔려 판매된 자동차의 약 40%가 두 차급에 집중됐다.

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 가운데 중·대형차가 판매 상위권을 휩쓴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했다. 유럽·일본·중국은 물론, 미국보다도 중·대형차 비율이 높았다.

미국도 대형 픽업트럭이 톱3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면 준중형이 5종, 중형이 2종이었다. 중국은 판매 톱10 가운데 중·대형차가 아예 없었다. 4위에 경형 전기차인 울링자동차의 홍광 미니 EV가 랭크된 것을 비롯, 톱10 전부가 준중형 이하 차급이었다.

또 지난 6월 유럽 신차 판매 톱10을 보면, 1위 폴크스바겐 골프, 2위 테슬라 모델3만 준중형급이었을 뿐 나머지 8종이 전부 소형차였다. 순수 전기차인 모델3가 전체 판매 2위에 오른 것도 눈에 띈다. 일본은 올 상반기 판매 톱10 가운데, 소형차인 도요타 야리스가 1위인 것을 포함해 7개 차종이 경·소형차였다.

◇한국, 수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계속 늘어… 전기차뿐 아니라 작은 차 보급 늘려야

각국은 2050년(유럽·일본 등) 혹은 2060년(중국)까지 탄소 중립(carbon neutral), 즉 온실가스를 배출한 만큼 이를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지난 8월 5일 한국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3가지 시나리오의 초안을 내놓았다.

특히 유럽연합(EU)의 EU집행위원회는 지난 7월 14일 탄소 배출 대폭 삭감안을 발표하면서, 하이브리드카를 포함한 가솔린·디젤 등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2035년부터 사실상 금지한다는 초강경책을 내놨다.

EU집행위가 자동차의 탈탄소를 서두르는 것은 자동차가 ‘오래 쓰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자동차 평균 보유 연한은 15년. 2035년부터 신차 판매분의 온실가스 배출을 완전 제로로 만들어야 2050년에 중고차를 포함한 자동차 분야의 탄소 배출 제로를 실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 추이, 유럽한국미국의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기준

한국도 2050년 탄소 중립을 이루려면 자동차 부문 배출량을 차츰 줄여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국내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

중·대형 내연기관차는 주행뿐 아니라 제조 과정의 탄소 배출량도 경·소형차보다 많다. 앞으로 도입 가능성이 높은 전과정평가(LCA·Life Cycle Assessment)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LCA는 재료부터 가공·유통·소비·폐기·재활용까지, 제품 라이프사이클 전반의 환경 부하를 측정하는 것이다. LCA에 따르면, 경·소형차는 제조 단계 탄소 배출이 적기 때문에, 국가적인 탄소 배출 총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국내 자동차 환경 기준 엄격하지만, 정책 실효성 의문

올 상반기 판매 1위인 그랜저의 주행거리 1km당 CO₂ 배출량은 142~179g. 국내 기준(1km당 97g)보다 훨씬 많다. 그랜저 하이브리드(1km당 97~108g)도 기준을 턱걸이하거나 초과한다. 국내 판매 3위로 상대적으로 작고 가벼운 아반떼 역시 1km당 CO₂ 배출량은 106~136g. 하이브리드 모델(1km당 74g)만 기준을 충족한다.

제조사의 신차 평균 배출량에서도 기준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에 19곳 중 12곳(63%)이 기준 미달이었다. 원래라면 대당 주행거리 1km당 1g 초과 시마다 5만원, 즉 연간 과징금 수십~수백억 원을 내야 하지만, 미달 업체 중 과징금을 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각종 유예·지원 조항 덕분이었다. 국내 정책이 메이커·소비자가 온실가스 배출이 낮은 차를 판매·구입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충분히 내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매력적인 소형차 보급 늘릴 필요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제조사에 물을 순 없다. 국내 소비자가 중·대형차, SUV를 선호하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50년 탄소 중립에 자동차 부문의 역할이 큰 것도 맞지만 수출 비중과 경제적 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 또한 꼭 필요하다.

산업·인프라 여건상 전기차 비율을 급하게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경·소형차 비율을 늘릴 필요가 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메이커가 매력적인 경·소형차를 더 많이 내놓고, 정부도 작은 차 보급을 더 지원해야 중·대형차 위주의 국내 시장구조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가 올가을 내놓는 신형 경SUV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차 시장은 최근 10년간 연간 15만대 내외를 유지했지만, 선택지가 3종에서 전혀 늘지 않았고 지난 5년간은 신차 투입이 아예 없었다. 2012년 내수의 17.3%를 차지했던 경차는 2018년 9.7%를 기록, 처음 10% 밑으로 떨어진 뒤 2019년 8.8%, 지난해 7.0%로 계속해서 하락 중이다.

전문가 “한국, 탄소 스케줄 못세우면 자동차에서도 가혹한 현실과 마주칠 것”

2035년까지 목표 확정한 美·유럽

2015년 파리 협정 채택 이래 각국에서 가솔린차 판매 금지나 통행 제한, 전기차(EV) 도입 확대를 향한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당초엔 도심 대기오염 대책과 교통 정체 대책이 주목적이었지만, 최근엔 2050년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조치의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

가장 빨리 움직이는 곳은 유럽이다. 지난 7월 EU는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사실상 금지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하이브리드카뿐 아니라 플러그인까지 불허한다는 것으로, 내연기관이 들어간 차는 아예 못 팔게 한다는 초강력 조치다. 이미 유럽은 주행거리 1㎞당 CO₂ 배출량 95g의 기준을 제시하고, 지키지 못할 경우 메이커 별로 수천억 원에서 조 단위의 연간 과징금을 물도록 했다.

지난 8월 5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2030년 미국 내 신차 판매의 50%를 탄소 배출 제로 차량(전기차·수소차·플러그인)으로 만들겠다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중국도 2060년 탄소 중립 목표를 제시한 가운데, 2035년부터 전기차 50%, 나머지 50%는 하이브리드카로 채울 방침이다. 순수 내연기관차는 완전 퇴출이다. 변화에 더디다는 일본도 2035년부터 신차 판매를 모두 전동차(전기차·수소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로 바꾼다. 내연기관만 장착한 차는 판매 금지다.

한국 정부도 지난 8월 5일 발표한 ‘2050 탄소 중립 실현 3개 시나리오’에서 2050년에 전기·수소차 등 탄소 배출 제로 차량의 비율을 76~97%로 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유럽·미국 등과 달리 2030~2035년의 탄소 배출 제로 차량 보급 수준에 대해선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오는 10월 말 영국에선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다. 한국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7년 대비 얼마 줄이겠다고 보고해야 한다. 한국은 작년에 2017년 대비 24.4% 감축 계획을 제출했는데 올해는 이 계획보다도 감축량을 더 높여 보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는 “한국도 탄소 중립 달성의 구체적 시간표를 작성해야 할 시기가 왔는데, 중·대형차 위주 시장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정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는 얘기”라면서 “정부가 사회 각 부분에 명확하고 구체적인 신호를 주고 현실적 실행 계획을 세워 나가지 않는다면, 자동차 부문에서도 탄소 배출 제한의 가혹한 현실과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