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기차인 동시에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가치가 정의되는 자동차), 쉽게 말해 ‘바퀴 달린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산업 지형을 뒤흔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역시, 미래를 예측했다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어떨까요. 한국의 유일한 글로벌 자동차회사인 현대자동차가 빠르게 전기차 시프트에 나서고는 있지만, 현재 상황은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가 앞으로 더 성장하는데 두 가지 문제점을 안깁니다. 이것도 예측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이 자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에 관한 것이지요.

첫 번째는 현대차가 20세기 내연기관차 중심 산업에서는 신흥 강자였지만, 21세기 전기차·SDV로의 전환에서는 ‘레거시코스트’를 안고 있는 기존업계 일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차처럼 내연기관 중심으로 성장한 조직은, 전기차로 안 바꾸는 것도 위험하지만 단숨에 바꾸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내연기관차 수익원이 아직은 거의 전부이고 여전히 달콤하죠. 기존 조직·자산과 협력사와의 관계를 일거에 바꾸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기차로 가긴 가되, 경착륙보다 연착륙을 노리게 될텐데, 문제는 연착륙을 차근차근 할만한 시간이 남아 있느냐일 것입니다.

물론 현대차는 지금까지 온갖 역경을 딛고 성공해왔듯, 닥칠 변화에 잘 적응해 더 훌륭한 회사로 거듭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만, 이것은 대한민국의 자동차산업 전체 전략으로 볼 때 ‘예정된 리스크를 애써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생사(生死)가 현대차라는 한 기업에 달려 있는데, 현대차가 주력으로 해온 내연기관차 중심의 산업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전기차 신흥업체 샤오펑의 전기 SDV(Software Defined Vehicle)인 'P5'. 테슬라 차량처럼 본격적인 OTA가 가능한 보급형 준중형 세단. 카메라와 레이더는 물론, 레이저를 쏴 사물을 탐색하는 라이다까지 탑재해 기존 차량의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을 능가하는 기능을 즐길 수 있다. '중국의 테슬라 모델3'로 불린다. /Electric Vehicle Web

◇‘테슬라 쇼크’에 대응해 한국 자동차산업 업그레이드하려면, 현대차도 잘해야 하지만, 또다른 기회 혹은 안전판 마련에도 주목해야

그래서 말씀드리고 싶은 두 번째는, 한국 자동차산업에 다른 기회를 더 얻을 장치, 혹은 안전판이 있느냐는 겁니다.

한국은 ‘자동차산업=현대차’이죠. 현대차그룹은 내수의 70~80%를 독점하고 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국 자동차부품산업 전체가 현대차 중심으로, 그리고 현대차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본 집중을 통한 경쟁력 향상으로 연결될 수 있지만, 연간 200만대 선진 자동차시장을 한 기업이 계속해서 독점한다는 것은 한국 자동차시장의 소비자 권익 침해, 부품산업 생태계의 정체, 나아가 해외와의 통상마찰, 반(反)독점 문제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지요.

현재는 한국의 자동차 정책도 마찬가지이고, 자동차를 둘러싼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GM의 전성기 때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도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습니다만, 지금 한국이 딱 그렇죠. ‘현대차에 좋은 것이 한국에도 좋은 것’처럼 모든 게 돌아갑니다. 현대차가 잘 돼야 한국 자동차산업이 잘 되고, 또 한국이 잘된다는 것은 여전히 일리 있지만, 여기에 어떤 안전판이 있는지, 또 우리 자동차산업 전체가 더 잘될 다른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현대차 역시 더 잘될 수 있게 하는 외부의 자극요소나 경쟁의 선순환 구조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는 겁니다.

그럼 두 번째 문제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 문제의 가장 좋은 해법은 제2의 자동차기업 탄생입니다. 20여년 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해 현대차그룹으로 재탄생하고 글로벌 탑5 자동차회사로 성장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업적이죠. 다만 계속되는 것이 국내시장(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산업)의 독과점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내연기관차가 산업의 가치를 지배하던 때에는 현대차그룹과 경쟁할만한 제2업체가 탄생한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진입 장벽이 매우 높고, 거액의 투자 이후 이익회수까지의 기간도 너무 길기 때문이었죠. 자본투입의 우선순위상 그래야 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고요.

샤오펑 P5의 실내. 테슬라 차량의 실내만 닮은 것이 아니라, 테슬차 차량처럼 본격적인 OTA가 가능한 SDV이다. /Electric Vehicle Web

◇테슬라는 제품·서비스 혁신뿐 아니라, 고유의 공급망 개발을 통해 새로운 자동차 부품산업 성장도 이끌어... 한국 부품산업 도약하려면 테슬라나 중국의 샤오펑처럼 부품 생태계 이끌 신흥 전기 SDV 업체 꼭 필요

그런데 자동차산업의 근간이 바뀌고 있는 겁니다. 진입 장벽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테슬라에서 알 수 있듯, 지금까지의 자동차산업 가치 사슬에서 벗어난 별개의 기업이 나타나 미래를 이끌기 시작한 겁니다.

테슬라가 기존 자동차산업에 주는 시사점을 산업의 가치사슬 관점에서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하드웨어 중심이던 자동차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전기 SDV(電氣 Software Defined Vehicle)에 필요한 소프트·하드웨어 핵심기술을 전부 내재화, 수직통합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기존 자동차회사들이 가진 자산이 무력화되면서, 기존 자동차회사들이 쌓아놓았던 높은 진입 장벽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첫 번째의 변화로 인해 자동차회사의 구조와 성격이 바뀌는 것보다 훨씬 큰 강도로 부품업계 공급망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뒤에 더 설명드리겠지만, 기존 자동차회사의 경우, 자동차회사에서 1·2·3차 협력업체로 연결되는 피라미드구조였지만, 테슬라 같은 신흥 전기 SDV회사는 이런 피라미드구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특히 1차 협력업체에 의존하는 대신, 본인들이 핵심기술을 장악하고 부품업체를 일대일로 직접 접촉해 통제합니다.

이런 것은 소비자가 사실 알 필요도 없지만, 투자자라면 좀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하고요. 특히 정치가나 자동차산업 정책 담당이라면, 정말 심각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될 문제입니다. 앞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이 무엇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 자동차산업의 고용은 어떻게 바뀌고 유지될 것인지, 특히 자동차 부품산업의 고용이, 힘들고 대우도 낮은 일자리에서 부가가치가 훨씬 높은 일자리로 바뀔 수는 있을지 등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테슬라 같은 신흥업체가 한국의 뛰어난 부품업체와 일대일로 거래하는 일이 많아진다면 그것도 한국 부품산업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테슬라와 같은 비즈니스모델의 신흥업체가 한국에서 나와준다면, 한국 부품업체와 국내 미래차 생태계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을겁니다.

그래서 ‘한국판 테슬라’ ‘한국판 샤오펑(중국판 테슬라로 가장 각광받는 신흥 전기차업체)’이 더 늦기 전에 나와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한 최적의 해결책, 민간기업의 독립성을 그대로 살리고 시장 기능도 유지하면서, 한국 자동차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안전판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문제가 바로 이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문제를 3 단계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국가·지역별 자동차회사의 상황과 전기 SDV 시대에 대한 전망을 얘기해 보고요.

두 번째로는 ‘왜 테슬라나 샤오펑 같은 회사가 앞으로도 더 잘될 가능성이 큰가’에 대한 이유를 서플라이 체인 관점에서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공급망으로 설명드리는 것은 이것이 미래 자동차 부품산업과 고용의 핵심을 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고, 한국에 새로운 전기 SDV기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는 ‘그렇다면 한국판 테슬라, 한국판 샤오펑의 탄생이 가능할 것인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폴크스바겐의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SSP(Scalable Systems Platform)’ 개념도. 폴크스바겐은 SSP를 사용한 최초의 전기차 ‘트리니티’를 2026년 출시한다. 이 차량부터 진정한 의미의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폴크스바겐

◇1. 지역별 자동차회사 상황과 SDV 시대에 대한 전망: 미국·중국은 전기차 전환 위한 체제 완비는 물론 안전판까지 갖춰

세계 자동차산업의 상황을 지역별로 살펴보겠습니다.

미국부터 볼까요? 미국은 지난 100년간 디트로이트 빅3(GM·포드·크라이슬러)가 지배해 왔지만, 지금 미국 자동차산업을 이끄는 것은 단연 테슬라죠. 시가총액부터 상대가 되지 않고요. 전기차 생산·판매량이나 증산속도, 기술 리더십 등 거의 모든 것에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는 밝습니다. 테슬라만 밝은 게 아니라 전체가 밝다는 게 중요합니다. 테슬라 덕분에 미국 자동차산업은 노동집약에서 기술집약산업으로, 저부가가치 고용에서 고부가가치 고용 중심 산업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테슬라에 밀리지 않으려고 GM·포드도 테슬라와 같은 산업구조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죠. 1980년대 일본차의 미국시장 침공 이후 ‘디트로이트의 종말’을 얘기했지만, 디트로이트라는 업계 내부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테슬라라는 외부 혁신 세력이 결국 미국의 자동차산업 전체를 구원하고 있는 겁니다.

테슬라 덕분에 GM과 포드, 특히 GM은 소프트웨어로 돈을 벌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여걸’ 메리 바라 CEO의 리더십 아래 조직을 혁신하고 있습니다. 포드도 폴크스바겐과 협업해 전기차 생산을 앞당기고 있죠. 훗날 GM·포드가 살아남는다면, 역사가들은 ‘디트로이트를 살린 것은 결국 테슬라였다’라고 쓸지 모릅니다.

크라이슬러는 현재 스텔란티스그룹(푸조·시트로앵과 피아트·크라이슬러가 합병해 만들어진 새 회사) 일원인데요. 스텔란티스그룹 자체가 전기차 전환에 필요한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이긴 하지만, 스텔란티스의 CEO인 카를로스 타바레스가 워낙 똑똑하고 강인한 인물이기 때문에, 어떤 전략적 돌파구를 만들어낼지 기대해 볼만합니다. 타바레스 CEO는 카를로스 곤 시절 르노닛산에서 곤이 인정하는 최고 인재였지만, 곤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르노·닛산을 나와 푸조·시트로앵 그룹 CEO가 됐다가, 스텔란티스 CEO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테슬라라는 혁신 기업이 강력한 자극을 준 덕분에, 자동차 산업 전체의 전기차 체제 전환이 더 안정적으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GM·포드가 레거시 코스트를 감당 못해 망하더라도, 미국 자동차산업 전체는 문제 될 게 없습니다. 테슬라가 머스크의 공언대로 2030년대 초 연간 2000만대를 만들게 된다면, 테슬라 한 곳으로도 미국 자동차산업은 충분히 돌아갑니다. 테슬라가 어떤 이변으로 인해 망하더라도, 테슬라가 이미 미국 자동차산업 전체를 변화시켰기 때문에, 그 모멘텀은 미국 자동차산업 전체에서 유지되고 커질 것입니다. GM·포드가 테슬라에 자극받아 열심히 발버둥쳐 살아남으면 그것도 좋은 일이죠. GM·포드와 외국기업 연합도 앞으로 생각해볼 수 있고요. 미국 IT기업이 GM·포드, 혹은 스텔란티스를 통째로 인수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다음으로 유럽을 볼게요. 스텔란티스는 언급했으니 넘어가고요. 나머지는 독일이 전부입니다. 폴크스바겐그룹, 다임러그룹(벤츠 모기업), BMW그룹이 있군요. 폴크스바겐과 다임러는 2025년쯤까지 현재의 테슬라 혹은 그 이상의 성능을 내는 전기 SDV로 제품 구조를 바꾼다는 로드맵을 이미 제시했습니다. BMW는 엔진 등 내연기관차의 다이내믹한 성능으로 소구하던 회사였고, 사내에 내연기관 파워트레인 인력의 구조조정 문제 등이 더 많이 걸려 있어 폴크스바겐·다임러처럼 연도를 박은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죠. 하지만 폴크스바겐·다임러와 비슷한 로드맵을 곧 내놓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독일의 자동차산업은 자국 산업의 핵심 중 핵심이기 때문에, 전기차 시대에도 살아남아야 합니다. 개별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폴크스바겐·다임러·BMW 등 3사 사이에 합병이 이뤄질 수도 있고요. 미국 회사와 제휴·합병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거에 다임러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다임러·크라이슬러그룹이 됐다가 깨진 적도 있죠. 포드가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양사 제휴가 합병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폴크스바겐이 애플과 합병하기 위해 애플에 예전부터 구애해 왔다는 것이 업계의 오랜 루머인데요. 독일 기업은 굉장히 완고하고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2차대전 때 미국에 패해 크게 망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살아남기 위해 결단할 시점에선 매우 냉정하고 과학적입니다. 아직은 상상 단계이지만, 독일 3대 자동차기업 중 한 곳이 실리콘밸리의 IT 기업과 합병 또는 새로운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것, 혹은 IT기업 산하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독일은 자국 자동차기업이 피처폰 시대 최강자였던 핀란드 노키아와 같은 운명을 반복하는 것만큼은 절대 막으려 할 것입니다. 자국 기업이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독일 정치권까지 나서 미국을 설득해 합병을 유도할 수도 있죠.

다만 유럽 자동차산업의 맹점은 테슬라처럼 전기 SDV만 만드는 신흥기업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산업의 변화·재편을 기존 업체 위주로만 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전략적 선택이 있기는 하지만, 레거시코스트를 정리해나가며 테슬라를 쫓아가기란 쉽지 않죠. 테슬라를 추격하려면 테슬라보다 빨리 달려야 하는데요. 기존 자동차업체 중심이기 때문에 스피드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벤츠는 미국의 AI·자율주행·GPU기업인 엔비디아와 밀착해 공동개발하고 있고, 단계적 발전이 아니라 단숨에 전기 SDV로 바꾼 차를 2024~2025년쯤 쏟아내겠다는 전략이기 때문에, 아직 드러난 것이 별로 없고요. 폴크스바겐은 테슬라처럼 소프트웨어로 모든 것이 통제되는 본격 SDV개발이 한창이지만, 소프트웨어 버그 수정 등의 작업이 늦어지면서, 하드웨어 개발 일정을 맞추지 못해 차기 SDV 양산 일정이 계속 늦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일본입니다. 일본은 3개의 자동차그룹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도요타그룹입니다. 대중차 브랜드인 도요타, 고급차 브랜드인 렉서스가 주축이고요. 그 외에 경차 중심인 다이하쓰, 상용차 브랜드 히노 등을 포함합니다. 그 외에 스바루·마쓰다·스즈키가 자본 관계로 얽혀 있습니다. 따라서 도요타는 제휴사까지 포함해 연간 1600만대 정도를 만드는 거대 연합이죠. 전기차 전환은 늦었지만, 테슬라처럼 자사 차량을 SDV로 바꿔나가기 위한 소프트웨어 OS 개발작업은 몇 년 전부터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올해나 내년에 37만명의 거대한 도요타 조직이 기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우선 개발 조직으로 완전히 개편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앞으로 내놓을 도요타 고유의 자동차 OS(아린·Arene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는 이 1600만대 연합에 단계적으로 탑재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 한쪽은 혼다죠. 혼다는 다른 일본 회사와는 별도의 성격이 강한데요. 연 500만대 정도 만드니까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혼자 전기 SDV 전환을 이루기엔 역량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혼다는 지난 3월4일 IT기술과 콘텐츠 플랫폼을 가진 소니와 합작해 전기차 전용 회사를 설립하고, 2025년에 전기 SDV를 내놓겠다고 밝혔죠. 지난 6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혼다가 GM과 공동으로 3만 달러 전기차를 만들어 2027년부터 판매할 예정이라고도 보도했습니다. 혼다·소니·GM 연합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2027년 출시라니, 너무 느리다는 생각은 듭니다.

또 하나는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인데요. 카를로스 곤 시절에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내놓으며 전기차 업계를 주도하는듯했으나, 내부 반발 등에 못 이겨 그 기세를 이어나가지 못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 전기차 양산을 위한 첨단 스마트공장을 세우는 등 다시 혁신에 나서고 있습니다.

즉 일본이 전기차 전환에 뒤처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도요타연합, 혼다·소니·GM 연합, 르노·닛산·미쓰비시 등 3개 세력이 아직 굳건하다는 겁니다. 일본이 유럽과 다른 것은 소니라는 이종(異種) 기업이 참전했다는 것입니다. 기존 자동차회사들도 전기차 전환에 성공하면 좋겠지만, 안됐을 경우에도 소니·혼다의 신(新)회사에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일본판 테슬라’가 나와주면 더 확실한 경쟁구도와 안전판이 만들어지겠지만, 그게 안 되는 게 일본의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중국입니다. 중국은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영원히 2류로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기 SDV 시대의 중국은 1류 국가로 올라설 가능성이 큽니다. 작년 중국에서 전기차는 전년의 2.6배인 352만대(플라그인하이브리드 포함)가 팔렸습니다. 전체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 비율은 2020년 5.4%에서 작년 13.4%까지 올랐죠. 승용차만 따지면, 올해 전체 신차판매에서 전기차 비율이 20%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됩니다.

중국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42% 증가한 500만대로 전망됩니다. 당초 중국 정부가 목표했던 ‘2025년 연간 전기차 판매 500만대’를 3년 앞당겨 달성하는 셈입니다. 내년부터는 전기차 보조금도 전면 폐지됩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은 정부 주도가 아니라 시장 논리로 굴러가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 등장한 전기차회사들이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판 테슬라 3총사’인 샤오펑(Xpeng)·니오(NIO)·리오토(리샹)가 작년에 각각 10만대 가까이 팔면서 양산 궤도에 올랐습니다. 샤오펑은 9만8155대로 전년보다 3.6배, 니오는 9만1429대로 109%, 리오토는 9만491대로 177% 성장했습니다.

3사 판매는 올 들어 더 늘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1~3월)에 사오펑은 3만4561대, 리오토는 3만1716대, 니오는 2만5768대를 팔았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지난 3월 중국 자동차판매 통계를 보면, 중국의 신흥 전기차 기업인 ‘네타오토(Neta Auto)’와 ‘리프모터(Leapmotor)’가 처음으로 월별 판매 1만대를 돌파했습니다. 이로써 중국의 신흥 전기차 회사의 경쟁은 기존의 샤오펑·니오·리오토 3사에서 5사 구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들 5사가 전부 성공하진 못하겠지만, 이 중 한두곳이 끝까지 살아남고 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중국판 테슬라의 탄생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중국의 전기차 산업의 경쟁력은 아래와 위 양쪽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아래쪽이라 하면, 상하이우링처럼 내연기관 경차만 만들던 회사가 최근 홍광미니EV처럼 500만원짜리 저가 미니 전기차로 중국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며 전기차의 양산·원가경쟁력을 축적해나가고 있다는 것일 테고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위쪽, 즉 프리미엄 전기차, 전기 SDV 시장입니다. 여기에 맞는 전기차를 중국의 신흥업체들이 만들어내고 있고, 하나둘씩 양산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죠. 세계적으로 전기차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대량생산에 성공한 기업은 테슬라 말고는 중국 업체들이 유일합니다. 그것도 월 1만대씩 파는 신흥기업이 5개나 되죠. 그리고 이것은 자동차산업의 전환, 특히 서플라이 체인의 변화·혁신·성장의 관점에서 매우 큰 장점을 가집니다.

중국의 전략이 무서운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전기차·모빌리티 산업의 내재화가 자연스럽게 완성돼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내연기관차 중심의 기존 외자계 파워가 줄어들겠죠. 올해 중국의 전기차 예상 판매량이 500만대나 된다는 것도 놀랍지만, 전기차는 외자계가 아니라 중국 토종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BYD처럼 내연기관차로 시작해 전기차회사로 완전히 변신해나가는 회사도 있고요. 특히 샤오펑 같은 신흥 전기차회사는 올 3월 판매가 전년 동월보다 202%, 전월보다 148% 증가한 1만 5414대였는데요. 특히 스포츠세단 ‘P7′이 9183대로 처음으로 월별 판매 9000대를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작년 9월에 발매한 보급형 세단 ‘P5′가 4398대가 팔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샤오펑의 차량이 테슬라처럼 전기차인 동시에 OTA(Over The Air·무선업데이트)를 통해 차량의 거의 모든 기능을 개선할 수 있는 본격 SDV(Software Defined Vehicle)라는 것입니다. 현대·기아의 최신 전기차도 일부 기능을 OTA로 개선할 수 있다고 하지만, 차량의 전기/전자(E/E) 아키텍처나 OTA 수준을 보면 샤오펑이 훨씬 앞서 있습니다. P7·P5는 그야말로 테슬라 모델S·모델3의 중국판이라고 할 수 있죠.

캘리포니아, 상하이, 베를린에 이어 테슬라의 4번째 조립공장인 텍사스 공장에 설치 중인 특수 알루미늄 주조기계. 이탈리아의 주조기계 회사인 아이드라(Idra)에서 공급한다. /테슬라 유튜브 캡처

◇2. 한국에도 테슬라·샤오펑 같은 신흥업체가 꼭 나와야 하는 이유: 자동차 서플라이 체인의 근간이 변화... 테슬라가 부품업체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 살펴보면, 한국판 테슬라·샤오펑의 필요성 이해할 수 있어

앞서 자동차산업의 현재 상황과 전망을 지역별로 정리해 봤는데요. 이것을 서플라이 체인의 관점으로 다시 한번 설명해보겠습니다.

우선 테슬라가 부품업체를 상대하는 방식이 기존 자동차업체와 얼마나 다른지를 통해, 자동차 부품산업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큰 변화를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기존 자동차회사들은 개별 기술을 가진 작은 업체를 직접 상대하지 않습니다. 업계 용어로 ‘티어원(tier 1)’이라 부르는 1차 협력업체를 통해 부품을 공급받죠. 축하연 등에 쓰이는 3단 케이크를 영어로 ‘쓰리 티어 케이크(3 tier cake)’라고 하는데요. 케이크 위에 완성차회사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3단 케이크의 맨 윗단에 있는 부품회사를 티어1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자동차회사가 전기차 전환이나 SDV 즉 소프트웨어로 모든 것이 제어되는 차량을 개발한다고 할 때, 개발과 부품 공급의 상당 부분을 맡기는 상대가 바로 티어1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좀 더 특수해서 외부 티어1 뿐 아니라 특수관계에 있는 현대차 계열사를 통해 개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모기업(완성차회사)으로 가는 관문(부품회사가 현대차로 납품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통행세를 받기도 하죠)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가 있고요. 그 외에 많은 그룹 내 특수관계의 별도 부품회사들이 티어1 혹은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현대차는 SDV 개발을 위한 양대 핵심인 OS 소프트웨어와 전기/전자(E/E) 아키텍처 개발을 현대차 연구소 이외에 현대오토에버 등에도 일부 맡기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필요한 반도체 개발은 역시 연구소와 함께 현대모비스가 맡고 있다고 하죠. 특히 현대차 계열사의 경우, 그룹 내 입지와 생존, 권력암투, 특수관계에도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고달프죠. 또 이들의 SDV 개발능력이 외부보다 뛰어난지도 알길이 없습니다.

물론 현대차는 이런 특수관계의 내부 회사 이외에, 보쉬·콘티넨털 혹은 인피니언 같은 외국 대형 부품사와도 많이 일합니다만, 현대차 내부에서조차 관계가 얽혀 있고, 또 현대차는 현대차 대로 티어1은 티어1 대로 일·이익의 주도권에 대한 속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협업이 빠르게 진행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모든 자동차회사를 상대하는 글로벌 티어1, 예를 들어 보쉬·콘티넨털 같은 업체는 전기 SDV 전환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는 있지만, 이들 스스로도 내연기관 중심의 자산·인력을 구조조정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고요. 또 테슬라처럼 전기SDV로 간다는 것은 자동차 부가가치의 핵심이 될 소프트웨어OS 를 완성차회사가 장악하려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보쉬·콘티넨털은 고객사(자동차회사)를 도우면서도 자기 살 방법을 챙겨놔야 하는 상황입니다. 자동차회사가 소프트웨어 OS를 장악하게 되면, 기존의 대형 부품업체가 챙기던 반도체·소프트웨어 등의 부가가치가 자동차회사로 넘어갈 수 있는데, 그건 부품업체 입장에서 이익이 줄어드는 일일 수 있거든요.

즉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 구조로 가는 과정에서, 완성차회사와 티어1 사이에 이권 다툼이 계속되고, 이것이 기존 완성차회사의 전기 SDV 전환을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테슬라처럼 아예 스스로 다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죠. 하지만 완성차 회사가 이제와서 스스로 다하기엔 내부 역량이 충분치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폴크스바겐·벤츠·도요타·GM 정도가 자체 개발중인데, 전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거든요. R&D투자비가 도요타·폴크스바겐의 3분의1, 4분의 1수준인 현대차로서는 더욱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한편, 테슬라가 부품업체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테슬라는 기존업체와 달리 글로벌 티어1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전기 SDV 전환에서 기존업체와 테슬라 같은 신흥 업체 사이에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예가 테슬라의 ‘기가 프레스(Giga Press)’ 기술입니다. 특수 알루미늄을 녹인 액을 틀에 부어 거대한 부품을 통째로 주조(鑄造)하는 것이죠. 테슬라는 자사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 Y’의 리어 섀시(Chassis·차량의 뼈대)를 이렇게 만드는데요.(곧 프론트 섀시도 이 방식으로 바꿉니다) 80개 패널을 용접해 만들던 것을 하나의 주조품으로 대체했습니다. 자동차 제조가 장난감차 찍어내듯 바뀌는 셈입니다.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들던 용접 공정을 없애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빨리 더 많은 차를 찍어낼 수 있도록 해주죠. 이 기술을 구현하려면 수천톤 규모의 거대한 압출력을 가진 알루미늄 주조기계가 필요한데요. 테슬라는 이를 위해 알루미늄 주조기계 회사인 이탈리아 아이드라(Idra)에 직접 의뢰했습니다. 중간에 자동차 생산공정 전문의 티어1을 일절 거치지 않은 겁니다.

테슬라 내부에는 알루미늄 합금 주조에 깊은 지식을 가진 재료과학(material science)팀이 있고요. 테슬라 생산기술팀에는 혼다·도요타·폴크스바겐 출신의 베테랑 엔지니어가 즐비합니다. 이런 엔지니어들이 ‘친정’에 있을 때는 관계나 정치 문제로 실행하지 못했던, 자기 머릿 속에서만 있던 혁신 기술을 테슬라에 와서 머스크라는 혁신가의 우산 아래에서 마음껏 내보이고 있는지도 모르죠.

기존 업체 출신의 최고의 생산기술 엔지니어, 스페이스X에서부터 축적된 기술을 보유한 테슬라 재료과학팀이 머리를 맞대 생산전략을 짜내서, 이를테면 기가 프레스를 실행하기 위한 거대한 주조기계를 이탈리아 아이드라에 직접 의뢰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드라 엔지니어들과 다시 머리를 맞대고 또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겠죠. 여기에 기존 자동차 업계 티어1이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아이드라는 기존 자동차업계의 서플라이체인 주류에 속해 있는 기업도 아닙니다.

결국 테슬라는 기존 자동차업계의 공급망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줄 새로운 부품업체를 찾아 자신들만의 새로운 공급망을 만들어왔다는 겁니다. 기존 자동차업계 공급망이 일부 무너지더라도, 테슬라의 생산이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이드라 사례 뿐이 아닙니다. 테슬라는 차량 통합제어용 OS를 자체 보유하고 있고, 차량의 거의 모든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제어할 수 있는 핵심 두뇌(프로세서)와 중앙통합제어형 E/E(전기/전자) 아키텍처를 스스로 개발했습니다. 핵심기술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티어1 전장업체에 의존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기존 업체는 테슬라 같은 전기 SDV를 만들기 위해 보쉬·컨티넨널 같은 메가서플라이어 혹은 자동차반도체 티어1 혹은 엔비디아·퀄컴 같은 실리콘밸리 반도체기업에 일부 혹은 상당부분을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개발과 관련한 협업·소통에 속도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럼 테슬라가 규모가 작은 전장부품 업체에까지 어떻게 접근해 오는지 설명드려볼게요. 테슬라가 어떤 센서를 공급해줄 업체를 찾는다고 생각해보죠. 테슬라는 사내외 최고 전문가들을 동원해 내가 원하는 기술을 구현해줄 서플라이어가 어디에 있는지를 지구본을 돌려가며 찾습니다. 그리고 후보기업을 찾으면, 테슬라의 기술담당자가 곧바로 그 업체에 연락합니다. 그 업체가 한국의 경기도 어느곳에 있든, 일본 사이타마, 중국 선전 어느 구석에 있든, 어떻게든 찾아내 온라인으로 직접 연락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고, 그것을 당신들이 해줄 수 있는지 묻습니다. 묻고 대답하는 과정이 지속되고 이를 통해 테슬라는 해당 업체와 일할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전장 뿐 아니라 섀시(차량의 기본 뼈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테슬라엔 소프트웨어·전장 고급인력만 많은게 아니라 자동차가 ‘달리고 돌고 서는데’ 중요한 섀시 기술의 베테랑도 많습니다. 섀시 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테슬라에서 연락이 와 미팅을 해보면, 혼다·도요타·폴크스바겐 출신, 특히 머리가 허연 일본인 엔지니어가 테슬라 명함을 들고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테슬라로 스카우트되기 이전의 회사에서 수십년간 관련 기술을 담당했던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두가지 종류 엔지니어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나이가 들수록 퇴보하는, 새로운 것을 공부하지 않고, ‘무엇을 할까’보다 ‘무엇(어떤 보직)이 될까’에만 관심을 갖는 엔지니어입니다. 두번째는 경험이 쌓여가는 만큼 새롭게 펼쳐지는 기술 세계를 끊임없이 공부하는 엔지니어입니다. 이런 엔지니어는 나이가 들수록 기술의 안보이던 부분까지 볼 수 있죠. 숫자는 적지만 유럽·일본에 이런 류의 엔지니어가 꽤 있습니다. 이런 엔지니어들은 기존 회사에서 퇴직하고도 기술자문 역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70대(代)까지 일하기도 합니다. 머스크가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요. “반드시 업계에서 세계 최고만 뽑아야 한다”는 겁니다. 아마도 테슬라 소속으로 나타났다던, 머리 허연 일본인 엔지니어도 이런 부류에 속할지 모르겠습니다.

테슬라가 최적의 서플라이어를 직접 발굴하는 것은, 링크드인과 인터넷 정보망으로 연결된 오늘날의 사회에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고 싶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것을 하기 위해 부품업체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완성차회사 스스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테슬라 담당자와 부품업체 담당자는 서로 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내공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진짜 전문가는 상대가 던지는 질문 몇 개만으로도 실력을 평가할 수 있죠. 가짜 전문가는 질문을 잘 안합니다. 질문을 잘못하면 실력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죠.

테슬라와 일해본 업계 사람 대부분의 얘기가 “테슬라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전장부품뿐 아니라 새시·생산기술 모두 그렇습니다. 즉 기존 자동차회사는 전기차로 전환할 때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양쪽에서 충분히 모르고 들어가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테슬라는 양쪽을 알고 들어오기 때문에, 테슬라와 일하려는 업체 입장에서 내 실력을 과장하기도 어렵습니다. 테슬라와 함께 일하면서 서로 배우고, 부품회사 자신도 몰랐던 능력까지 쏟아내게 된다는 것이죠.

테슬라는 자사 차량의 소프트·하드웨어 핵심기술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부품회사끼리의 연결에도 능합니다. 어떤 회사가 기술은 좋은데 양산능력이 없다면 테슬라가 자신들이 새로 짠 공급망의 정보에 따라 기술이 좋은 회사와 양산능력이 있는 회사를 연결해줄 수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아무리 기술이 좋은 회사라 해도, 테슬라에 아주 비싼 값에 기술을 팔거나 배짱을 튕기기 어렵습니다. 가격·조건이 안맞으면 테슬라가 자체 개발·생산으로 돌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존 자동차 업계의 2원화 전략, 즉 납품업체를 여럿 두고 서로 가격경쟁을 시켜 납품단가를 떨어뜨리는 전략에 비해 불안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전기차처럼 만들어 나가면서 기술을 계속 실시간으로 혁신해야 하는 분야에선 오히려 단가 인하나 개발 스피드를 높이는데 적합합니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충분히 활용 못하고 있던 부품업체 입장에서는, 테슬라가 제안해오면 솔깃하겠죠. 기술을 가진 업체라도 기존 자동차업체 판로를 뚫으려면, 일단 자동차회사와 직거래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티어1을 찾아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복잡해지고 속도가 늦어지기 일쑤죠.

그런데 테슬라는 이런거 제끼고 바로 연락해 온다는 겁니다. 물론 기술을 가진 업체 입장에서 부담도 됩니다. 테슬라는 처음부터 이렇게 얘기한다고 합니다. “당신들과 오래 일하고 싶기는 한데, 조건·상황이 달라지면 우리가 대체 기술로 만들고 납품을 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는 겁니다. ‘무슨 날강도 같은 말이냐’고 테슬라를 비난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기에서 테슬라의 미덕을 굳이 찾아보자면, 어떤 자동차회사처럼 겉으로는 기술 쓰는 척하고 부품업체 불러다가 설명만 잘 들은 뒤, 다른 업체시켜 싸게 만들어보라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솔직하다는 겁니다.

테슬라의 메시지는 이런거죠. “우리랑 일하면 당신들도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거야. 단, 당신들이 계속해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줘야 우리랑 계속 일할 수 있어. 나중에 우리가 직접 만드는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줘”입니다.

그래도 테슬라의 제안이 매력적인 것은, 테슬라에 납품한다는 것 자체가 해당 부품업체로선 최고의 경력이 될 것이고, 테슬라와 일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단련함으로써, 나중에 다른 업체의 판로를 쉽게 뚫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존 업체가 해당 지역 공급망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선 이런 새로운 공급망 구축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현대차가 공급망을 새롭게 구축하는게 쉽지는 않겠죠. 일단 현대차가 테슬라처럼 혁신기술을 가진 부품업체가 어디에 있든 찾아내 협업할 역량을 가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 내연기관 위주 공급망을 수십년간 구축해온 기업이 기존 공급망을 쉽게 끊어낼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됩니다.

반대로, 완성차가 아니라 한국 부품업체 입장에서 생각해보죠. 어떤 부품업체가 ‘자체적으로 전기차를 수탁 생산해보겠다’고 한다거나, 현대차에 납품하면서 다른 전기차회사(예를 들면 중국 신흥 전기차 업체)를 주요고객으로 뚫는 작업에도 열심이라고 해보죠. 현대차가 당장 응징에 들어갈 것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현대차의 주요 경쟁력 중 하나는 산하 부품업체를 강력하게 지배함으로써 납품단가를 억제하는 겁니다. “물량은 확보해줄게, 하지만 이익은 죽지 않을만큼만 내는거야?’인거죠.

하지만 현대차의 이런 어쩔 수 없는 자세는 장기적으로 한국 자동차 부품산업을 고사(枯死)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기존 부품업체들은 내연기관차 중심이죠. 현대차에 납품하기 때문에 매출은 나오지만, 전기차용 고부가가치 기술을 개발할 여력은 적습니다. 현대차의 가격경쟁력을 위해 끝까지 박리로 납품해야 하지만, 그 길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암담합니다.

반면 현대차가 전기 SDV를 개발하려면, 테슬라와 달리 글로벌 전장기업과 협업하고 그들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 부품사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부품만 납품하다가 고사되고, 현대차에 들어가는 전기차·SDV용 첨단 부품은 외국의 대형 서플라이어, 국내라 해도 기존 자동차 부품사가 아니라 전자 대기업과 전자 대기업 산하 부품사 쪽으로 이익이 돌아갈 수도 있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도 테슬라처럼 부품산업 생태계를 업그레이드시켜줄 신흥 전기차업체가 나와줘야 한다는 겁니다.

전기 SDV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가진 국내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테슬라의 경우, 어떻게 알았는지 테슬라 담당자가 직접 연락해와 초스피드·실시간으로 협의가 진척되고, 테슬라의 해당 기술담당한테 메일을 보내면 바로 답을 받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현대차에 납품하려면, 일단 어디를 찾아야 할지 모를 수 있습니다. 현대차는 티어1과 거래하니, 티어1을 찾아가야 할텐데, 티어1은 그들대로 생각이 있으니, 현대차에 빠르게 연결해줄지도 모를 일이고요. ‘당신들 기술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납품 실적부터 가져오라’고 할 수도 있죠. 테슬라처럼 본인들이 기술을 장악하고 있는 회사는 타사 납품 실적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검토할 수 있지만, 다른 완성차 회사는 상대 기술을 검증하는 것부터 어려우니 도입을 주저하는게 당연합니다. 테슬라처럼 부품업체에 직접적으로 빠르게 반응하는 신흥 전기 SDV 업체가 한국에 나와준다면, 이런 문제도 일부 해결될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차만 탓할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일이 해외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테슬라를 빨리 따라간다는 폴크스바겐, 아시아 최강의 자동차회사인 도요타 내부 사정도 완전히 다르진 않습니다. 폴크스바겐은 자사의 전기 SDV 개발의 상당부분을 컨티넨털과 협업하고 있죠. 자체적으로도 대대적인 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티어1에도 크게 의존한다는 뜻입니다. 도요타도 계열 부품사와 관계 정립, 도요타계가 아닌 일본내 부품사의 독립·약진에 대한 견제, 전기차 전환을 둘러싼 도요타 내부의 권력 암투, 젊은 사원들의 불만 등이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혼다가 소니와 전기차 합작회사를 만든 것도 기존의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예 새로운 조직, 새로운 공급망을 만들어 접근하는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봤다는 거죠.

테슬라 텍사스 공장에서 생산될 신형 '모델Y'의 하부 섀시(차량의 뼈대) 구조. 리어 섀시와 프론트 섀시를 각각 하나의 특수 알루미늄합금 주조물로 찍어낸다. 중앙에는 기존의 원통형 배터리보다 더 큰 배터리(4680)를 연결해 배터리 패키지 자체가 차량의 구조물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신형 모델Y의 섀시는 프론트, 리어, 배터리 패키지의 단 3개 구조물로 만들어진다. 수백개의 패널을 용접으로 이어붙이는 기존 방식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테슬라 유튜브 캡처

◇3. ‘한국판 테슬라·샤오펑’의 탄생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지금부터의 얘기를 위해 1·2번에서 장황하게 설명드렸습니다만, 특히 2번, 테슬라가 만들어낸 새 공급망, 부품산업 생태계가 가져올 자동차 산업의 대변화에 대해서는 꼭 주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한국판 테슬라, 한국판 샤오펑이 나와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대차가 잘 살아남아 더 잘 될 가능성도 있고, 또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미국·중국 자동차산업 구도에서 설명드렸듯이 새로운 공급망 구축이 큰 이슈입니다. 미국은 테슬라만의 고유 공급망이 점점 확대되고 있고, 중국은 연간 500만대라는 엄청난 규모의 전기차 공급망, 특히 샤오펑·리오토 등 신흥 전기차 업체를 중심으로, 기존 자동차업계와는 다른 형태의 부품산업 생태계가 갖춰지고 또 그 실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국판 테슬라 3총사 혹은 5총사 가운데 한두곳만 테슬라처럼 성장해도, 중국의 전기차산업의 미래는 밝을 겁니다. 이미 중국 전기차 신흥업체 중 5곳이나 월 1만대 판매체제를 구축했다는 것이 한국 자동차산업에 주는 공포를 더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한국의 자동차·부품산업 전체가 계속해서 혁신·성장하려면, 한국에도 테슬라·사오펑처럼 새로운 전기차 전문업체, 혹은 소니·혼다처럼 기존 자동차회사와 플랫폼·소프트웨어 능력을 갖춘 IT회사의 합작을 통한 신회사의 출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현대차가 나름 전기차 전환을 잘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의 자동차·모빌리티산업 미래가 불안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닐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만약에 현대차의 전기차 전환이 예상만큼 성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한국에 전기 SDV를 만드는 새로운 기업이 나와줘야 한다는 겁니다. 테슬라·샤오펑을 모델로 하는 회사가 있어야 한국의 자동차·부품산업 전체에 자극과 활력과 혁신이 더 빨리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전기 SDV를 만드는 한국판 테슬라, 한국판 샤오펑이 나와준다면, 시장과 산업 전체에 편익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는 현대차에도 자극을 줘 그들의 혁신에도 도움이 되고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의 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자동차산업 지원책이 개별 사업·서비스 등 작은 부분에 쪼개서 지원하는 것 위주라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자동차산업의 신규 분야에 지원하는 정부·기관의 지원검토 인력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자동차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아직 못하는 분이 대부분이라는 것에 놀라실 겁니다. 레거시코스트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경험하기 위해 업계를 살펴볼 필요도 없습니다. 한국 자동차 정책과 지원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만 봐도 알 수 있죠. 세금이 어떤 식으로 낭비되고 있는지, 미래 산업과 고용을 위한 돈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최근 자동차산업 정책과 관련해 쌍용자동차의 새 주인을 찾는 것이 주요 안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아마 불가능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쌍용차 해법은 간단합니다. 쌍용차는 그냥 청산하는게 낫습니다. 지금의 쌍용차엔 어떤 미래차 핵심기술도 기업가 정신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청산을 한 뒤에 쌍용차 부지에 초대형 주상복합건물을 지어 1조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합니다.(그게 가능한 얘기냐고 추궁은 말아주세요) 그리고 그 돈을 시드머니로 한국판 테슬라·샤오펑을 빨리 추진합니다. 기업가정신에 맡겨야 하겠지만, 중국의 샤오펑처럼 빠른 기간 내에 월 1만대 정도 양산체제를 갖출 수 있도록 국가도 지원합니다. 여기에 기존 쌍용차 조직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합니다. 100% 그린필드에서 필요 자금만 확보한 뒤, 나이·출신·지역 불문하고 한국판 테슬라·샤오펑을 만들기 위한 최고의 인재들만 뽑아야 합니다. 여기에 온갖 절차문제, 특혜시비와 형평성, 흑색선전이 난무하겠지만, 어떻게든 난관을 극복하고 한국판 테슬라·샤오펑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아니면, 정부가 자동차산업 지원에 쓰는 돈을 몇억·몇십억·몇백억원씩 쪼갤게 아니라. 미래 자동차산업 재편을 위한 국부펀드 형태로 만들어 ‘한국판 테슬라’의 탄생을 부추기고, 한국에 숨어 있는 기업가 정신을 연결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미래를 만들어가려고 노력은 해봐야 할 겁니다. 자동차 업계가 어떻게 바뀌는지 이해했다면, 완전히 시기를 놓치기 전에 행동에 옮겨야 하지 않을까요? 끝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가 현재 세대를 이렇게 원망할지 모릅니다. “당신들의 아버지·할아버지 세대는 아무 것도 없던 대한민국에 자동차·반도체·전자 산업을 만들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풍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했나요?”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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