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6%로 치솟으면서 더 거세지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불길이 세계 금융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시장은 41년만의 최고치인 3월 물가(8.5%)보다 낮은 숫자를 예상했지만,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고 “인플레이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22년만의 기준금리 ‘빅스텝(0.5%포인트 인상)’까지 단행했지만, 물가 상승을 꺾기가 쉽지 않아지면서 연준이 더 강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되고 있다. 결국, 28년만의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까지 등장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실물 경기가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동반하는 경기침체)이 현실로 닥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세계 금융 시장에 퍼지고 있는 중이다.
◇28년간 없었던 ′자이언트 스텝’ 공포 확산
시장의 우려는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시장에 충격을 가져오면서 경기 둔화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는 데 모아진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6~9일 경제학자 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 중 70%가 내년에 미국이 경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앞서 지난주 CNBC가 미국 주요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 22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도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다’고 응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CNN 인터뷰에서 “물가가 빨리 내릴 가능성은 없다”며 “내년에는 확실히 경기 침체의 위험이 있다”고 했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은 신흥국의 자본유출을 가속화시켜 코로나 사태에서 회복중인 세계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주 세계은행은 4.1%에서 2.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5%에서 3%로 큰 폭으로 하향 조정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식량·에너지 공급난, 중국의 봉쇄 정책으로 비틀대는 세계 경제가 연준발 금리 인상 후폭풍으로 고꾸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준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유럽중앙은행(ECB)도 오는 7월에 11년만에 금리를 인상하고 9월에는 상황에 따라 ‘빅 스텝’을 선택하겠다고 지난 9일 발표해 태풍을 예고했다.
응고지 오콘조 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12일(현지 시각) “세계가 전례 없는 동시다발적 다중위기(polycrisis)를 겪고 있다”며 “국가간 연대로만 해결이 가능하다”고 했다.
◇”미국 물가 9% 될 수도”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핌코의 최고경영자였던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인플레이션이 9%에 달할 수 있고, 경기 침체가 뒤따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빨리 제압해야 한다는 압력이 거세기 때문에 오는 14~15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스텝’을 넘어 ‘자이언트 스텝’이 결정될 가능성도 생겼다. 마지막 ‘자이언트 스텝’은 1994년 11월이었다.
지난달 ‘빅 스텝’에 이어 이번 달과 다음 달에 ‘빅 스텝’과 ‘자이언트 스텝’이 한 번씩 등장한다고 가정하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불과 3개월 새 1.75%포인트 급등해 연 2~2.25%가 된다. 이런 상황인데도 헤지펀드업계의 거물 데이비드 아인혼은 “연준이 아이스크림을 푸는 숟가락(스쿱)으로 눈 덮인 진입로를 치우고 있다”고 했다. 더 과감한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잠재워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의 관심은 연준이 최종 목표로 삼는 기준금리가 어느 선이냐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연준이 인플레가 결정적으로 하락하는 징후가 나타날 때까지 빅스텝을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연준의 금리 변화 확률을 측정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툴’은 연말에 미국 기준금리가 연 3.25~3.5%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고 예상했다. 연 3.25~3.5%가 된다는 건 올해 남은 5번의 FOMC에서 전부 한번씩 ‘빅 스텝’이 나온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 금리가 연말에는 적어도 연 2.75% 이상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워낙 침체 공포에 짓눌려 있고 경보음이 충분히 울렸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의 정점만 통과하면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은 덜어낼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짐 폴슨 로이트홀드그룹 수석 투자전략가는 “물가 상승률이 정점만 찍으면 주가가 크게 오를 수도 있다”며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정점 이후 1년가량은 매번 주가가 올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