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UPI 연합뉴스

달러의 가치가 다른 통화들을 압도하는 ‘킹(king) 달러’의 시대. 달러는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자국 통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경기 침체를 각오하면서까지 금리를 인상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달러 가치 상승으로 미국 경제는 수입 물가를 낮출 수 있고, 미국인들의 구매력은 월등하게 높아지고 있다. 미국인들의 해외여행이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 같은 달러 독주가 단기적으로는 미국 경제에 순풍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달러 강세가 오래 지속될 때 다른 나라들이 갖가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런 부정적인 파장이 부메랑처럼 경제 규모 세계 1위 국가인 미국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달러를 사고파는 거래는 전 세계 외환 거래의 90%를 차지한다. 달러 거래량은 전 세계에서 하루 6조달러(약 8245조원·코로나 사태 이전 기준)에 이른다.

◇역대급 달러 강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 시각) 미국 내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기록적인 달러 강세 덕분에 미국인들의 구매력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뜻하는 달러 인덱스는 이날 2002년 6월 이후 20년 만에 110을 넘었다. 달러 가치는 파운드화에 대해서는 37년, 엔화에 대해서는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유로화에 대해서도 20년 만에 가장 강하다. 작년만 하더라도 1유로가 1.2달러 정도였지만 요즘은 유로와 달러가 등가로 교환된다. 유로화 가치가 1년 사이 20%쯤 하락했다는 의미다.

미국인들은 달러 강세로 미국 내 수입품 가격이 하락해 소비 생활에 도움을 받고 있다. 또 환율이 유리해지면서 유럽 여행을 다니고, 런던·파리·리스본 등에서 전보다 낮은 비용으로 부동산을 사들인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다.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킹달러

미국 경제는 양호한 고용 지표가 이어지며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달러만 강세인 통화 불균형으로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수입품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 일정 부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요즘 미국 외 국가들은 수입품 가격이 크게 오르는 고난을 겪고 있다. 달러 강세에 의해 미국산 제품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고, 원유나 원자재도 달러를 주고 들여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쉽게 해소되기 어렵고, 세계 수요도 감소하게 된다. 세계 경제 회복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 WSJ는 “미국 수출업자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미국 기업들이 해외 생산 및 영업 활동으로 일군 매출을 달러로 환산한 액수가 감소하게 된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와 나이키는 최근 이익이 감소했다”며 “미국 이외 지역에서 매출의 60%를 창출하는 애플과 다른 미국 ‘빅 테크’ 기업들도 강달러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국적 투자 기업 이토로의 글로벌 시장 전략가 벤 라이들러는 “달러 가치 상승이 올해 S&P500 기업들의 매출 증가율을 5% 깎아내릴 것”이라고 했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인 핌코의 최고경영자였던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블룸버그 기고문을 통해 “강달러가 (미국에) 만병 통치약이 아니다”라며 “달러 가치가 더 오래, 더 높이 치솟을수록 글로벌 인플레이션 장기화, 개발도상국 달러 외채 상환 어려움, 세계 각지의 지정학적 갈등 등을 초래해 세계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미국에도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고 했다.

◇강달러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

달러 강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달러 독주는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연방준비제도가 미국 내 물가를 안정시킬 때까지 금리 인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에도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고물가에 시달리는 유럽이 금리 인상을 본격화하면 달러 강세를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중앙은행(ECB)은 8일 기준금리를 인상할 예정이며, ‘자이언트 스텝’을 선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