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포트 녹스(Fort Knox)에 갈 겁니다. 금(金)이 거기 있는지 확실히 해 둬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9일 전용기 에어포스원 안에서 한 말이다. 기자들은 “국방부도 인력 감축 대상인가”라고 물었는데, 트럼프는 동문서답하듯 ‘포트 녹스 감사론’을 꺼낸 것이다.

그래픽=박상훈

트럼프는 “포트 녹스의 모든 것이 무사하길 바라지만 그곳에 금이 없다면 매우 화가 날 것”이라고 했다. 포트 녹스는 미국 켄터키주에 있는 육군 기지의 이름이다. 이 기지 옆에 미 재무부가 관리하는 금 보유고가 있는데, 이 시설 역시 포트 녹스로 불린다. 미국 보유 금괴의 절반 이상을 보관하고 있는 미국 중부 시골이 최근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역사적인 금값 상승 때문이다.

◇620조원어치 금 보관

포트 녹스 금 보유고는 1936년 조성됐다. 뉴욕·필라델피아 같은 대서양 연안 도시에 보관되어 있던 금을 외적의 침입이 닿기 힘든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가려진 내륙 깊숙한 곳으로 옮길 목적이었다. 화강암 건물 안 지하 금고의 문 무게만 22톤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2차 대전 때에는 미국 헌법, 독립선언서 원문 등 미국의 각종 보물들도 보관했다.

미 재무부는 현재 포트 녹스에 4583톤의 금이 저장되어 있다고 공시하고 있다. 지금 가치로 4340억달러(약 620조원)에 달하며, 현재 전량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한국의 금 보유량(104.4톤)의 44배 정도다.

그래픽=박상훈

길이 18 ㎝, 폭 9㎝, 두께 4.5㎝, 무게 12㎏짜리 금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포트 녹스의 금고는 많은 이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은 1959년 포트 녹스의 금고를 배경으로 ‘골드핑거’를 썼다. 악당 골드핑거가 자신이 가진 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포트 녹스의 금을 오염시키려다 요원 007에게 저지된다는 소설은 1964년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가 됐다.

포트 녹스는 ‘정부가 금을 이미 빼돌렸다’는 음모론의 산실이기도 하다. 금고가 비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미 재무부는 1974년 의회 대표단과 기자들에게 시설을 개방했다. 이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2017년 스티븐 므누신 당시 재무부 장관이 켄터키 주지사, 의회 대표단과 함께 포트 녹스를 찾아 “금을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89년 역사상 단 두 차례만 개방된 탓에 음모론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7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는 “포트 녹스의 금이 도난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누가 장담하나. 그 금은 미국인들의 재산으로, 아직 그곳에 있기를 희망한다”는 게시물을 SNS에 올려 관심을 증폭했다.

◇금값, 1년 만에 47% 상승

포트 녹스의 인지도 상승은 최근 금값 상승과 무관치 않다. 20일 뉴욕거래소에서 금은 온스(31.1g)당 2954달러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1년 전보다 47% 올랐다.

월가에서 최근 제기되고 있는 ‘미국 금 재평가론’도 포트 녹스에 대한 관심을 부채질한다. 포트 녹스를 포함해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 8133톤은 1973년 이후 장부상 가치가 온스당 42.22달러로 고정되어 있다. 이를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전체 가치가 장부상 가치보다 70배 수직 상승한 7800억달러가 된다. 미국의 만성적인 정부 부채 해소에 이를 사용하자는 것이 금 재평가론이다.

이달 초 트럼프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에게 국부 펀드를 만들라고 지시했고, 베선트는 “우리는 미국 국민을 위해 미국 대차대조표의 자산을 화폐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차대조표에 저평가되어 있는 금 가치를 올려 매각해 재정 적자를 메울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금 재평가론이 월가에서 급부상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한 해 적자만 1조8000억달러이기 때문에 금을 재평가해봐야 효과가 미미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금을 판 돈으로 비트코인을 사들여 전략 비축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는 등 금은 앞으로 트럼프 정부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건물 보증금 대신 골드바를 받고, 자신의 건물을 금빛으로 도배하는 트럼프의 유별난 금 사랑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포트 녹스 쇼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