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을 관세 정책 실패의 희생양으로 몰아가자, 미국 주식·국채·달러가 모두 약세를 보이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미스터 투 레이트(Mr. Too Late·의사 결정이 매번 늦어진다는 뜻으로 파월 의장을 의미)’이자, 중대 실패자(a major loser)가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경기 둔화가 있을 수 있다”는 글을 썼다. 앞서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그(파월 의장)에게 (사임을) 요구하면 그는 매우 빠르게 물러날 것”이라고 압박하는 등 ‘파월 때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파월 때리기가 향후 경기 침체가 올 경우 자신의 관세 정책 때문이 아니라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주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셀 아메리카’ 현상 심화
트럼프 대통령의 파월 때리기에 미국 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은 투자자들은 ‘셀 아메리카’에 나섰다. 주식, 채권 값, 달러 가치가 모두 하락한 것이다. 뉴욕 주식시장에서 하루 사이 다우 평균은 2.48%, S&P500는 2.36%, 나스닥 지수는 2.55% 하락했다. 뉴욕 3대 지수는 올해 고점 대비 15~20%쯤 떨어졌다. 미국 주식에서 자금도 빠져나가고 있다. 금융 정보 업체 EPFR에 따르면, 10~16일 일주일간 미국 주식형 펀드에서 약 57억달러(약 8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자 이와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가격은 급락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이날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0.09%포인트 오른 연 4.42%까지 올랐다. 이달 초 연 4.01%와 비교하면 보름 만에 0.4%포인트 급등한 것이다.
달러 가치는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유로화, 엔화 등 세계 주요 여섯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장중 97.9까지 하락해 2022년 3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스위스프랑 대비 달러 가치는 0.804달러로 2015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안전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는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이날 금 현물 가격은 장중 3430달러 선을 넘어섰고, 뉴욕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도 3425.3달러를 기록해 종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고토 유지로 노무라증권 외환 전략가는 “미국 같은 주요 기축통화국에서 국채 매도와 통화 가치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는 건 이례적”이라면서 “미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와 미국 자산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 “파월 해임 시 시장 반발”
뉴욕타임스(NYT)는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해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NYT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은 그에게 파월 의장을 해임하면 불확실성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크게 침체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현재로선 그러한 조언을 납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파월 의장을 압박하는 이유에 대해 프란체스코 비앙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사람들이 연준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믿게 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면서 “경기 침체가 올 경우 사람들은 연준이 금리를 인하했어야 한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파월 압박이 투자 심리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크리슈나 구하 에버코어ISI 글로벌정책전략가는 CNBC 인터뷰에서 “연준 의장을 해임하려는 시도는 채권 금리 급등, 달러 가치 하락, 주식시장 투매 등 심각한 시장 반발을 가져올 것”이라며 “연준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 오히려 금리 인하 여력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오스턴 굴즈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면 위기 시 금리 인상 같은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진다”며 “이는 결국 높은 인플레이션, 낮은 성장, 높은 실업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