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현지 시각) “미·중 양국이 어떻게든지 협상해서 빨리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풍’에 대해 전 세계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이 이와 같이 우려했다는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인근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워싱턴특파원단

이 총재는 이날 미 워싱턴 DC에서 한국 특파원단과 간담회를 갖고, 자신이 이번 주 참석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 총회에서 오갔던 논의에 대해 이같이 전했다. 그는 “미국·중국 간 협상이 안 되면 다른 나라에 대한 상호 관세 유예가 더 연기되더라도 경제적 비용은 굉장히 크다”고 했다.

이 총재는 “중국이 오랫동안 전 세계의 공장으로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중국을 거치지 않고 무역을 할 수 있는 물건이 많지 않다는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고 무역을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 세계가 중국과 많이 연관돼 있다”고 했다.

이어 “회의에서 여러 시나리오가 논의됐는데, 중국 외 나머지 국가에 대한 상호 관세가 90일 뒤에 없어진 시나리오와 그렇지 않고 관세 부과가 계속된 시나리오 사이의 성장률 차이는 거의 없었다”며 “중국에 대한 관세가 훨씬 높아졌고 이에 대해 중국이 보복에 나선 상황에선 나머지 국가에 대한 관세가 면제되더라도 효과가 상쇄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미·중 협상 전망에 대해선 “어쨌든 미·중 간 어떻게든 합의가 돼야 전 세계가 편안해지지 않겠느냐”며 “전망이라기보다는 바람이 크다”고 했다.

이 총재는 이번 회의의 키워드는 ‘불확실성’이라고 요약했다. 그는 “미국 관세 정책의 방향과 최근 금융시장 상황, 특히 미국 국고채 시장에서 변동이 심했던 상황, 또 달러의 움직임 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미국의 국가별 협상이 잘 진행되면 미 금융시장이 다시 안정될 것인지, 이게 일시적인지 장기적인지 등 각종 불확실성에 대한 의견이 제일 많았다”고 전했다. 또 “일본 중앙은행 총재도 자기들 베이스라인 시나리오를 어떻게 잡을지도 모를 정도로 불확실성이 심해 경제 예측이 어렵다더라. 하여간 불확실성이란 단어가 일주일 내내 따라다녔다”며 “다만 미 국채 가격이나 환율 등은 매우 크게 변했는데 시장의 기능은 잘 작동돼 다행이라는 견해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상황을 바라보는 외국의 견해에 대해선 “무역 전쟁 탓에 한국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하면서도, 한국 기업들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민첩하고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고 했다.

이 총재는 트럼프발 관세 드라이브에 대한 각국의 대응 가운데 유럽연합(EU)의 대응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꼽았다. EU에서 이번 위기를 통해 그간 미뤄왔던 구조조정을 하자는 일치된 의견이 나온다는 이유다. 이 총재는 “반미 정서가 올라가면서 그런 공감대가 굉장히 많이 형성돼서 은행시장 통합, 자본시장 통합을 빨리 진행하자, 달러화 변동성이 심하니 유로화가 안전 자산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자 등의 논의가 많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 총재는 전날 열린 ‘한미 2+2 통상 협의’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환율 정책을 양국 재무 당국이 별도로 논의하자고 한 배경을 묻는 질문에 “원인을 안 보면 한국의 환율이 왜 이렇게 많이 절하됐느냐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며 “미 재무부와 우리 기재부가 직접 얘기하기로 한 것은 정치 또는 무역 관점에서만 논의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했다.

한국의 계엄 및 대통령 탄핵 등에 따른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선 “지금 정치적 리스크는 많이 개선됐지만 불확실성이 계엄 전 상황으로 100% 돌아온 건 아니다”며 “그래서 6월 3일 대선이 끝나고 나서 완전히 안정됐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