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여성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케냐의 페레스 쳅치르치르 선수가 아디다스 런닝화를 들고 있다. /아디다스

불공정한 ‘기술 도핑’인가, 런닝화의 진화인가. 스니커즈 업계의 양대산맥,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이른바 ‘기술 도핑 슈즈’로 불리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운동화 전쟁에 돌입했다.

엔진 개발(운동능력 향상) 대신, ‘치트키(cheat key·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속임수)’ 장비를 들여야할지 고민 중인 마라토너들을 유혹하듯, 두 업체가 최근 ‘하이테크 런닝화’ 신제품을 일제히 출시했다.

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 빈 프라터파크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 마라톤 1인자 엘리우드 킵초게의 발(왼쪽). 지난 5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여성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페레스 쳅치르치르 선수의 발(오른쪽). /로이터·아디다스

◇스프링 달고 뛴다…나이키, 전쟁의 시작

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 빈 프라터파크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 마라톤 1인자’인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가 인류 최초로 42.195㎞ 코스를 1시간59분40초만에 주파했다. 7명의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린 ‘비공인 기록‘이지만 2시간 벽을 깬 것이다.

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 빈 프라터파크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 마라톤 1인자 엘리우드 킵초게(케냐)가 나이키가 특수 제작한 런닝화 ‘에어줌 알파플라이 NEXT%’를 신고 뛰고 있다. /로이터

그는 이 대회에서 나이키가 특수 제작한 런닝화 ‘에어줌 알파플라이 NEXT%’를 신었다. 밑창 중간에 탄소섬유로 만든 판이 스프링 효과를 내는 운동화로, 뛰는 힘을 10% 이상 크게 높여준다고 한다. 당시 킵초게가 이 운동화를 신지 않았다면 역사적인 기록을 세우기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면서 육상계에서는 ‘기술 도핑’ 논란이 불거졌다.

①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가 지난해 마라톤 풀코스 세계 신기록을 달성할 때 신었던 나이키 운동화를 들고 웃고 있다. ②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 빈 프라터파크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킵초게 선수가 달리고 있다. ③나이키가 세계육상연맹 규정에 맞춰 올 여름 출시한 ‘에어줌 알파플라이 넥스트%’ /나이키·로이터

◇혁신에도 규제가 필요하다…육상연맹의 제동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운동화만 인정한다.”

‘기술 도핑 슈즈' 논란이 계속되자, 세계육상연맹(WA)은 올해 2월 ‘엘리트 선수의 신발 규정’을 고쳤다. WA는 “특정 선수만을 위해 특별 제작한 운동화는 공식대회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상 나이키 런닝화를 겨냥한 방침이었다.

에티오피아의 전설적인 마라톤 선수 아베베 비킬라(1932~1973)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맨발로 달려 2시간15분16초2로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조선일보DB

WA는 “올해 4월 30일 이후 대회부터 신발 밑창 두께는 40mm 이하여야 하고, 탄소 섬유판은 1장만 허용한다”고 명시했다. 결국 앞으로는 공식 대회에서 탄소 섬유판을 3장이나 붙인 킵초게 신발은 더이상 신을 수 없게 됐다.

나이키는 이에 WA 규정에 맞춰 새롭게 제작한 ‘에어줌 알파플라이 넥스트%’를 지난 7월 시판했다. 밑창 두께는 39.5㎜이며, 탄소 섬유판은 1장만 들어갔다. 통상 런닝화 뒷쪽에 달리는 ‘에어줌‘은 발 앞부분에 2개가 부착돼있다. 운동화 가격은 31만9000원이다.

◇발가락 뼈모양 탄소 막대…아디다스 맞불

지난 5일 프라하 체코에서 열린 여자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케냐 선수 페레스 쳅치르치르가 21.0975㎞ 코스를 1시간5분34초만에 주파하며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종전 세계 신기록보다 무려 37초가 더 빠른 기록이다.

아디다스의 하이테크 런닝화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페레스 선수는 이 대회에서 아디다스가 제작한 런닝화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를 신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는 밑창 중간에 초경량 쿠션이 있다. 길쭉한 탄소 섬유 혼합 막대 5개는 발가락 뼈 모양대로 밑창에 세로로 배치돼있다. 나이키 런닝화 기술의 핵심인 탄소 섬유판은 뒤꿈치 부분에만 일부 들어갔다.

아디제로 시리즈는 2008년 독일 베를린 대회에서 에티오피아 선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착용하고, 2시간4초 장벽을 최초로 깨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후 10년 간 4개의 신기록을 수립했다. 하지만 지난해 나이키가 ‘킵초게 운동화’를 계기로 큰 주목을 받자, 아디제로 역시 또 한번의 기술 진화에 나섰다.

①케냐의 페레스 쳅치르치르 선수가 지난 5일 여성 하프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달성할 때 신었던 아디다스 운동화를 들고 웃고 있다. ②아디다스가 최근 유럽 시장에 출시한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③지난 5일 프라하 체코에서 열린 여자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쳅치르치르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아디다스

아디다스는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를 지난 6월 30일부터 유럽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175.42유로(약 24만6000원)로 국내 시장에는 내년 1월 출시된다.

지난해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 우승자 역시 기술력이 결집된 첨단 런닝화를 신고 달렸다. /조선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