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도심의 한 특급호텔 객실 예약과 사무실에서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하루 종일 들려왔다. 직원 6명이 똑같이 전화기를 얼굴에 갖다댄 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24일)에 호텔 객실을 잡은 예약 손님에게 취소 통보 전화를 돌리는 중이다. 가장 늦게 예약한 손님부터 순서대로 전화가 간다. 어떤 직원은 한 번에 20분 넘도록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한 상태로 통사정했다. 하얀 마스크 위 얼굴이 벌개졌다. 이따금 수화기 너머로 분노한 손님들의 고성(高聲)이 흘러나왔다. 직원 이모(31)씨는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려니 속이 울렁거리고 소화가 안 되더라”고 했다.
전날 정부는 ‘연말연시 특별방역 강화대책’을 통해 전국 호텔·리조트 등 숙박 시설 객실 이용률을 24일부터 ’50% 이내'로 제한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별개로 수도권에서는 23일부터 ‘5명 이상 실내·외 개인적 모임’을 모두 금지하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호텔 체크인까지 48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각에 취소 통보를 받은 예약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화풀이의 대상은 애먼 호텔들이다. “호텔이 과태료를 물더라도 손님과의 약속은 이행하라” “대체 장소를 구해내라” “무료 숙박권이나 식사권이라도 내놔라” 등의 요구가 주로 들어온다고 호텔업계는 전했다.
호텔들도 난감하다. 서울 강남권 A호텔 관계자는 “연말연시 특급 호텔 예약 손님 상당수가 프러포즈 등 ‘빅 이벤트’를 준비한 사람들이라 설득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일부 호텔은 ‘추후 이용 시 할인’ 등 혜택을 약속하고 고객을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우리도 형편이 어려워 말로만 설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도심권 B호텔 관계자는 “코로나가 터진 후 1년 가까이 예약률 30% 넘기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가뭄의 단비 같은 손님들에게 ‘오지 마시라’ 통보하려니 죽을 맛”이라고 했다.
오피스타운 식당가에서는 5인 식사 금지령에 따른 진풍경이 벌어진다. 같은 날 오전 11시 40분쯤 서울 종로 한 김치찌개 식당 입구에서는 함께 걸어오던 5명 일행이 갑자기 3인, 2인으로 1m 떨어지더니 5초 간격으로 입장했다. 물론 방역 지침은 이런 ‘꼼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인원을 쪼개더라도 5인 이상의 일행이 한 장소에서 식사할 수 없으며, 위반하면 점주 300만원, 손님은 10만원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시간 차 입장’을 매장 유리벽 너머로 빤히 지켜본 식당 주인은 태연히 손님들 체온을 재고, QR코드를 찍으라고 하더니 “편하신 데 앉으세요”라고 했다. 두 팀으로 쪼개진 일행은 한 뼘쯤 떨어진 테이블에 나란히 붙어 앉고는 똑같은 안주와 식사를 주문해 먹고 갔다. 두 테이블 간에는 이따금 대화도 오갔다. 가게 주인은 “따로 들어오는 손님에게 ‘일행 아니시냐’ ‘사원증 좀 봅시다'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위반하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면서 방역 책임을 점주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강남구 역삼동 식당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오전 11시 45분쯤 둘러본 강남파이낸스센터 지하 식당가 매장 20여 곳 중 단체 손님을 제한하는 식당은 눈에 띄지 않았다. 만석(滿席)인 한 일식당 앞에는 각각 5명, 7명 단위 일행이 줄을 서 있었다. 식당 측은 아무런 제지 없이 이들을 들여보냈다. 점주는 “재택근무가 늘어 매출도 반 토막 났는데, 오는 손님까지 막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음식 주문을 무인(無人) 기기가 받는 매장은 속수무책이었다. 한 멕시코 음식 프랜차이즈 점포를 들른 5명의 남성은 기기에서 주문한 뒤, 각각 50㎝씩 떨어진 2인용 테이블 세 개에 나란히 앉아 타코를 먹었다. 직장인 황모(36)씨는 “어차피 밥 먹고 다시 만나서 같이 커피 마시고, 일도 같이할 텐데 밥 먹을 때만 떨어져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방 따로 상견례’를 하는 장면도 펼쳐진다. 광화문 중식당 루이키친의 백진영(43) 매니저는 “이번 주말에 8명으로 예약한 상견례 단체 손님이 있는데, 두 개의 방에 가족이 4명씩 들어가기로 했다”며 “방역 지침에 따라 식사 도중 방끼리 교류가 없도록 최대한 조심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