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밤 8시 30분 모바일 라이브 퀴즈쇼 인기 진행자인 ‘리코’가 셔터가 내려진 서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들어섰다. ‘한도를 알 수 없는 카드를 갖고 백화점 전층을 돌며 쇼핑한다’는 콘셉트의 원맨쇼가 시작됐다. 네이버 ‘쇼핑 라이브’를 통해 생방송된 그 모습을 누적 29만명이 지켜봤다. 오후 10시쯤 동시 접속자 수는 22만명이었다. 진행자가 상품을 집어들 때마다 채팅창에 “옷을 걸쳐보라” “뒤태를 보여달라” 등 주문이 쏟아졌다. ‘라이브 커머스’(Live Commerce)의 장면들이다.
인터넷 동영상 생방송을 통해 물건을 파는 라이브 커머스가 코로나 사태로 집에 틀어박히게 된 젊은 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다. ‘라방’(라이브 방송)이라고도 불리는 이 새로운 상거래 방식은 본질적으로 TV홈쇼핑과 닮았으면서도 고유의 장점이 많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고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최적화됐다. 정부 규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유형의 콘텐츠를 선보인다는 점까지 앞세워 소비자를 급속도로 끌어모으고 있다. ‘3년 만(2017~2020년)에 시장 규모 50배 성장’이라는 중국 라이브 커머스 대확산이 국내에서도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네이버·카카오·신세계·롯데쇼핑 등 IT와 유통업계 강자들이 올 들어 이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었고 최근엔 쿠팡도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2023년 시장 규모 10조원 전망
라이브 커머스의 위력은 국내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됐다. 한국에서 정식 출시되지도 않았던 프랑스산 ‘라꽁비에트 버터’가 올해 유행한 배경에도 라이브 커머스가 있다. 올 초 한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유명인)가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이 버터를 팔았다. 450g짜리 한 상자에 5만원이라는 고가(高價)였지만 첫 방송에서 1000상자가 팔렸고 세 번의 추가 방송에서 품절됐다. 그러자 이마트와 현대백화점 등이 경쟁적으로 이 버터를 매장에 들였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라이브 커머스는 올해가 사실상 본격화 원년이지만 시장 규모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성장세라면 2023년 시장 규모는 8조~1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그래도 최근 3년간 중국에서 벌어진 ‘폭풍 성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둥베이증권이 분석한 중국 라이브 커머스 시장 규모는 2017년 190억위안(약 3조2000억원)에서 올해 9610억위안(191조원)이 됐다.
◇소비자가 참여하는 홈쇼핑
라이브 커머스의 폭발적인 흥행 요인은 ‘시청자 참여’다. 방송 중 시청자들이 채팅창을 통해 질문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음식을 먹어보라’거나 ‘옷을 입어보라’고 시키고, 출연자가 입은 옷의 사이즈를 묻기도 한다. 공개 채팅창에는 시청자들의 생생한 반응이 시시각각 업데이트된다.
라이브 커머스는 또 정부 규제를 받지 않고 채널 개수에 제약도 없어 자유롭다. 전문 쇼핑 호스트가 진행하는 홈쇼핑과 달리 인플루언서나 연예인, 심지어 일반인까지 판매자로 나선다. 쿠팡 관계자는 “일반인 판매자는 ‘더 솔직하고 공정한 상품 리뷰를 듣는다’는 느낌을 준다”고 했다.
◇IT·유통기업 속속 진출… 홈쇼핑엔 암운
이런 시장을 기업들이 놓칠 리 없다. 지난 7월 네이버가 ‘쇼핑 라이브’를, 지난 10월 카카오가 ‘카카오쇼핑라이브’를 시작했다. SSG, 롯데온 등 이커머스 사업자는 물론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도 올해 라이브 커머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다음 달엔 ‘쿠팡 라이브’도 나온다.
기존 TV 홈쇼핑업계는 표정이 어둡다. 정기적으로 정부 재승인을 받는 규제 산업인 홈쇼핑과 달리 라이브 커머스는 다양한 시도로 소비자를 유인해가고 있다. 송출 수수료도 내지 않는다. TV홈쇼핑 회사들은 매출(제품을 팔아주고 받은 수수료 총액)의 30~50%를 송출 수수료로 IPTV(인터넷TV) 회사에 지불한다. 홈쇼핑 관계자는 “TV홈쇼핑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