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아이스크림, 고기, 우유, 치즈 등 대체식품 사진을 올렸다. 최 회장은 “이 중 1등은 단연 발효 단백질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고 했다. 이 아이스크림은 미국 발효 단백질 스타트업 퍼펙트데이의 제품으로, SK는 작년 이 회사에 540억원을 투자했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도 최근 대체육으로 만든 치즈버거를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고 “식물성 패티로 치즈버거를 만들어 먹으니 진짜 치즈버거와 구분이 어렵다”며 호주 대체식품 브랜드 V2food를 소개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신세계푸드 계열 프랜차이즈 ‘노브랜드 버거’를 통해 치킨 없는 치킨버거와 고기 없는 햄버거를 내놓았다.
대기업 회장들이 ‘대체식품’에 빠졌다. 콩이나 버섯에서 추출한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고기, 우유, 치즈 같은 대체식품이 미래 먹을거리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의 대체식품 시장 진출·투자 역시 활발하다. 푸드테크 전문 벤처캐피털 미국 에그펀더에 따르면 글로벌 대체식품 관련 투자는 2016년 1300억원에서 작년 2조6000억원으로 성장했다.
◇대체식품에 투자하는 기업들
롯데 신동빈 회장은 2019년부터 대체식품 신기술 등 ‘푸드테크’에 집중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회장이 2019년 이스라엘의 기초과학 연구소인 와이즈만연구소를 방문한 이후 대체식품 등 푸드테크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롯데는 신 회장의 지시에 따라 식품 관련 스타트업 15곳에 투자했다. 작년 12월 설립한 152억원 규모의 롯데농식품테크펀드의 첫 투자처도 대체식품 스타트업 ‘더플랜잇’이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신세계푸드를 통해 대체육 브랜드 ‘베러미트’를 내놓고 대체식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마트는 채식주의 전문 코너를 마련해 식물성 원재료를 사용한 채식 너겟, 만두, 볶음밥 등을 판매 중이고, 최근엔 대체육을 연구하는 미국 농업테크 기업 밴슨힐에 2차 투자도 단행했다.
농심 신동원 회장도 올해 주요 신사업으로 ‘대체육’을 꼽았다. 농심은 지난 1월 대체육 브랜드 ‘베지가든’을 내놓고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떡갈비, 너비아니 구이, 사골 맛 분말과 카레 등 양념류를 판매하고 있다.
SK는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대체식품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국 대체 단백질 개발사 네이처스 파인드에 290억원을 투자한데 이어 중국 식음료 기업인 조이비오 그룹과 함께 1000억원 규모의 대체식품 투자 펀드를 조성 중이다.
◇ESG 강화·선점 효과 노려
대기업 오너들이 직접 나서 대체식품을 챙기는 것은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경영과 관련이 깊다. 대체식품은 가축을 키우며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여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 회장들이 친환경 경영의 한 부분으로 대체식품을 직접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식품은 비건(채식주의)이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은 MZ세대와 대기업 회장들이 소통하는 수단이기도 한다. 한상린 한양대 교수는 “기업 오너가 대체식품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만으로 미래 소비자인 MZ세대에 해당 기업이 도덕적이고 친환경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대체식품은 신사업으로서도 매력적이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글로벌 대체육 시장이 2019년 5조2500억원에서 2023년 6조70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