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입명품은 한국이 더 비싼가
직장인 권소진(32)씨는 지난달 말 남편 생일 선물로 톰 브라운 카디건을 미국에서 직구로 구입했다. 국내 공식몰에서 파는 제품 가격은 195만원이었지만 미국 공식 홈페이지에선 950달러(113만5700원)로 우리 돈으로 무려 80만원이 넘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직구할 때 부과되는 관세와 부가세는 27만원. 여기에 배송료까지 추가로 내도 미국 현지 가격이 28% 더 저렴했다. 권씨는 “국내 대기업이 수입하는 제품도 여전히 국내 가격과 현지 가격이 너무 차이 나서 매번 현지 가격을 일일이 검색해보고 사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141억6500만달러(약 17조원)로 전년보다 4.6% 성장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내 명품 소비가 더욱 증가하면서 작년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국내 백화점만 11곳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국 소비자들은 ‘봉’ 신세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수입 의류 가격은 여전히 외국 현지보다 적게는 10~20%, 심한 경우에는 30~40%까지 비싸기 때문이다. 중소 병행 수입 업체가 판매하는 의류뿐 아니라 삼성물산 패션 부문, 신세계인터내셔날, LF, 코오롱 같은 국내 대기업이 수입해 오는 의류 가격도 현지 가격과 상당한 격차가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최근 라코스테·메종키츠네·아미·스톤아일랜드 같은 유명 브랜드 8개 제품을 분석해보니 현지 배송료와 국제배송료, 관·부가세를 모두 더해도 해외 직구 평균 가격이 국내에 비해 최대 18.3%까지 저렴했다”면서 “최근 20~30대가 많이 찾는다는 소위 ‘준(準)명품’일수록 가격 격차가 심했다”고 말했다.
“900만원은 돼야 명품백”… 일부러 ‘천장가격’ 맞추기도
17일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의 ‘플랜씨’ 매장. 국내 대기업이 수입하는 이 브랜드의 조끼 한 벌은 73만원이다. 최근 할인해서 51만1000원에 팔고 있다. 이탈리아 공식 홈페이지를 뒤져보니 현지에선 같은 상품을 235유로(약 31만7000원)에 팔고 있었다. 무려 19만원 넘게 차이가 났다. 직구를 하면 관·부가세 8만원에 20유로(약 2만7000원) 정도의 배송비까지 내도 국내 할인 가격보다 9만원 정도 저렴했다.
같은 날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 미국 브랜드 ‘슈프림’의 의류와 액세서리를 임시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파는 티셔츠는 한 장에 109만원이다. 최근 국내 커뮤니티에서 계속 “너무 비싸게 받더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네티즌은 “최근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물건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애초 출고 가격은 200달러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 심하게 비싸다”고 썼다. 왜 이렇게 계속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일까.
◇”소비자가 봉”… 앓느니 직구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골프 의류는 가격 차이가 더욱 심하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마크앤로나’의 남성 조끼는 국내 백화점에서 한 장당 89만8000원에 팔린다. 반면 현지 가격은 6만500엔으로 62만원 정도다. 관·부가세와 배송비를 감안해도 12%가량 차이 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하는 제이린드버그에서 판매하는 한 골프 재킷 가격은 31만원 정도. 같은 제품의 현지 가격은 17만5000원이다. 현지 가격이 거의 절반 정도다. PXG가 국내에서 판매하는 민소매 원피스의 가격은 53만9000원. 현지 가격은 반면 210달러로 25만원이 조금 넘었다.
국내 가격과 현지 가격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니 소비자는 결국 직접 구매라는 선택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번거롭고 배송 기간이 길어도 직구를 선택하는 이가 계속 가파르게 늘어나는 이유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작년 온라인 해외 직구 거래액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5조원을 넘어섰다. 전년보다 26.4%나 성장했다. 이 중에서 ‘의류 및 패션 상품군’을 직구하는 금액은 2조원 정도로 전체 온라인 직구 금액의 39%를 차지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작년 말 소비자 조사를 해보니, 국내 소비자들은 해외 직구를 하면 국내 가격보다 평균 25% 정도 저렴하다고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수입 의류 가격에 대해 그만큼 많이 불만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코트는 최소 400만원은 돼야”… ‘천장 가격’ 맞추기도
업체들은 반면 관·부가세와 배송료, 국내 백화점 매장에 입점시켰을 때 내야 하는 수수료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마진 폭을 더 줄이면 수입해서 판매해도 이익이 거의 없다는 주장이다. 한 국내 대기업 의류 담당자는 “한국 백화점에 20~30%씩 수수료를 내는 데다, 광고비에 매장 인테리어 비용까지 감당하면 남는 게 사실 많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의류 병행수입업자들은 “최근 국내 명품 소비가 크게 늘면서 국내 패션업체는 물론이고 백화점까지 앞다퉈 외국 브랜드를 모셔오려고 과도한 경쟁을 벌인 것이 가격 인상의 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의류를 수입할 때 최소 수입 물량이나 광고 계약을 불리하게 해서라도 브랜드 확보를 위해 경쟁하다 보니, 홍콩에선 원가의 2배가량만 붙여도 이익이 남는 상품도 국내에선 원가의 3~4배는 붙여야 이익이 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명품 소비가 크게 늘면서 ‘천장 가격’을 맞추기 위한 경쟁을 벌이는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된다. 한 외국 명품업체의 국내 법인을 운영하는 지사장은 “한국과 중국에선 요즘 비쌀수록 물건이 잘 팔리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면서 “가령 이제 가방은 900만원, 코트는 400만원 정도는 돼야 명품 소리를 듣는다. ‘천장 가격’이 이렇게 형성되다 보니 아래에 있는 브랜드 가격도 오른다”고 말했다.